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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성에서/오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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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6회 작성일 11-05-0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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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성에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오형곤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후세에 전해주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시민행동21 문화지킴이에 참여하여 조그만 일이나마 돕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위봉사와 위봉산성에 대한 해설을 부탁받았다. 여러 사람 앞에서 해설을 해야 하니 걱정이었다. 몇 차례 가보기는 했으나 해설을 할 만큼 아는 것이 없었다. 별수 없이 사전 답사를 하고 문헌을 찾아보았다. 동국여지승람에 위봉산성은 유사시 태조 어진을 피난시키기 위해 숙종 때 쌓은 성인데 전주부성의 동쪽 40리에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돌로 쌓은 성으로서 둘레는 5097파(把=줌), 높이는 8자, 여첩(女堞) 2437, 포루(砲樓) 11, 초문(哨門) 6804, 성문 4, 암문(暗門) 8개가 있으며, 성안에 우물 45개, 작은 연못(池塘) 9개, 염산(鹽山) 1개가 있다고 했다. 완산지의 위봉진 사례를 보면 성문은 서문, 동문, 북문으로 되어 있다. 전주방면의 통로인 서문은 3칸의 초루가 있는 홍예문(虹霓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진박물관 내용에는 위봉사(威鳳寺)는 동학혁명 당시 전주성이 동학군에 점령되자 조경묘의 신주와 함께 어진을 위봉산성 내 행궁으로 피난시켰다. 그러나 비가 새는 곳이 많아 산성 안에 있는 위봉사 대웅전에 임시로 봉안하였다가 경기전으로 환원하였다. 위봉사는 경기전에 속한 사찰로 경기전 운용에 필요한 여러 물자를 공급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봉사 주지스님의 의견은 달랐다. 위봉사는 서기 604년 백제 무왕 5년에 서암(瑞岩)대사께서 산문(山門)을 열었다. 이어 신라 말 최용각이라는 사람이 봉황의 자취를 보고 위봉사를 중창하였다. 동학혁명 당시 위봉사는 재정이 넉넉하여 자진하여 경기전에 필요한 물자를 보내주었다고 하며 잘못된 기록이라 했다. 4월 9일 오전 10시에 위봉산성 서문에서 모였다. 지금까지 답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진지한 모습으로 메모를 하며 들었다.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보람을 느꼈다. 서문을 자세히 살폈다. 홍예로 되어 있는 문이 아름다웠다. 거의 허물어진 것을 복원하여 이런 모습을 갖추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어 태조암까지 본존활동을 하면서 가다가 제일 암문 부근에서 현장설명을 했다. 암문은 적의 눈에 띄지 않는 문이다. 안에서 밖으로만 나갈 수 있는 문으로 잘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태조암을 둘러보고 위봉사로 옮겨가 대웅전 등 답사를 마쳤다. 다시 서문에 모여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오늘 답사를 마무리했다. 우리고장의 문화재는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알려진 문화재는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를 찾아 연구하여 그 역사와 내력을 밝혀내고 후세들에게 넘겨주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문화지킴이 회원들과 동참한 회원 가족들에게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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