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 둘레길을 거닐며/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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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산 둘레길을 거닐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창밖의 아침 햇살 틈새로 하루가 스민다. 어스름한 시각부터 쓰다만 글 보따리를 내려놓고 보니 봄 동아리 채비에 시간이 촉박하다. 서둘러 조경단으로 자전거를 몰아 약속시간에 도착하여 한숨을 돌렸다. 몇몇 동아리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오늘을 연다.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속에 안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역시 즐거운 일이다. 한적한 산길을 더듬으며 오솔길 따라 오송재 입구에서 일행들과 산 내음을 맡기 시작했다. 비비추, 수호초들을 벗 삼아 새싹들을 대하니 상큼한 봄기운이 온 몸을 휘두른다.
뒤따르던 아낙네 회원들이 내 곁을 스치며 앞장선다. 뒤에서 보는 그녀들의 머리 매무새들이 갑자기 내 시선을 끈다. 남쪽하늘님의 매끈한 머릿결, 전형적인 중년미를 그리는 동글새님, 동아리 살림살이 준비에 바빠 미처 신경 쓰지 못해 푸석푸석한 소나무님의 머릿결들이 나란히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나부낀다.
단풍나무 군락지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오른다. 곁에서 신행근 회원이 건지산을 할아버지 산 그리고 모악산을 할머니 산이라며 해학을 늘어놓는다. 재미를 풍기는 익살이 건강에도 좋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운동기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고목나무의 돌출된 뿌리들이 발목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 앞장선 울긋불긋한 회원들의 옷차림이 문학캠프의 즐거움과 어울리며 봄나들이 춤을 춘다. 정상에 서니 ‘김인자 시인’의 봄소식 매화그림이 나를 반긴다.
“향기가 없는 나무/꽃이 없는 풀이 있으랴/……/기꺼이 보듬으면/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숲과 꽃밭을 이룰지니…….”
메모에 정신을 쏟다보니 맨 뒤꽁무니만 물고 다닌다. 그러다 일행을 놓쳐 버렸다. 어디로 갔나? 여기 저기 두리번거린다. 서두른 발걸음에 저 멀리 혜안님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혜안을 따라 소안이 걷는다. 반갑다.
노송리 복숭아과수원길. 복사꽃이 봄맞이를 한다.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따라 내려가는데 하얀 자두나무 꽃이 보고 가라고 윙크를 한다.
머리에 오토바이 화이버를 쓴 허수아비도 만나고 참빗살나무로 머리를 빗으며 오송 연못의 둘레길을 걷는다. 물오른 매자나무 가지에 매달린 꽃망울과 자연생활유치원생들이 재잘거리며 봄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저수지를 가로 지르는 건널목에서 이희정 형님의 카메라 모델도 섰다. 나란히 늘어선 회원들의 표정을 훑어보더니 카메라맨의 말귀도 못 알아듣는다고 핀잔을 준다. 수련, 부들, 물억새, 갯버들이 물속에서 말라비틀어진 갈대와 함께 봄을 기다리는 모습도 눈팅했다.
새들의 포식에 놀란 복숭아 과수원이 철망을 뒤집어쓰고 ‘날 잡아봐라’하고 까마귀에게 약을 올린다.
대지마을로 들어섰다. 옛날 척추디스크로 이 마을을 다니며 침을 맞고 치료를 받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한쪽 골짜기를 뒤덮고 있는 이화가 나를 반겼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 대하는 멋진 구경거리였다. 앞서 가던 일행들도 탄성을 지른다. “이화에 월백하고”란 시구가 절로 떠오른다. 그 옛날의 선비도 이토록 멋진 시를 지었는데 나는 무엇인가. 이 멋진 장관을 표현도 못하다니 참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편백나무 숲에 이르렀다. 피톤치드 향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무겁고 피곤한 다리를 주물러 준다. 한 시간 삼십분 정도 걸었나 보다. 내리막길에서 파릇파릇 새잎이 돋아나고 있는 키 큰 단풍나무를 지나쳤다.
단풍나무 표피를 보는 순간, 오랜 풍상에 시달려온 고목나무 껍질이 갑자기 헌 누더기로 보였다. 다 헤어진 종이처럼 너덜거리며 덕지덕지 매달려있는 불쌍한 옷들이다. 바람만 불고 건들기만 해도 떨어지는 낡아빠진 껍질들. 그러나 나무는 태연스럽게 웃는다. 훌훌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2011. 04. 20일 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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