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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의 1주기를 맞으며/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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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0회 작성일 11-04-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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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의 1주기를 맞으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창영 형수님께서는 범실노 씨 문중에서 태어나 19세 때 시부모님과 시조부모님을 모시는 오산마을 김 씨 문중으로 시집을 오셨다. 마을 뒤편은 노령산맥의 지맥이 뻗어있고 앞 들이 꽤 넓으며 마을 앞에는 철길이 나 있어 가끔 열차가 지날 때마다 한가한 시골마을의 정적을 깨드리는 곳이다. 시골마을로서는 입지가 좋은 편이었다.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몸채, 사랑채, 외양간, 돼지막, 닭장 등이 있었다. 앞마당에는 단감나무와 배나무가 있고, 뒤란에는 은행나무와 감나무, 가죽나무가 있어서 봄철에는 가죽나무 새순을 따서 가죽자반을 만들어 여름철 밥상에 올려놓았다. 그 가죽자반은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머슴을 두 명이나 두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식구가 모두 13명이나 되었다. 소와 돼지, 개, 닭까지 키웠다. 소죽은 머슴이 끓인다지만 돼지와 개, 닭은 형수님 몫이었다. 신혼 살이가 바늘방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형님께서 병이 나시어 2남 2녀를 두시고 30대에 요절하셨으니 그 슬픔이 어떠했겠는가? 그 뒤 48년을 혼자 사시다 82세 때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님께서는 마치 형수님이 잘못하여 형님이 돌아가신 것으로 여기시고 형수님을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으셨으나 시어미니에 대한 공경심은 한결같았다. 아마 죽지 못해 사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감에 따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 형수님은 아들딸들을 객지로 내보내고 혼자서 농사를 지으셨다. 농약은 놉을 얻어서 한다지만 뙤약볕 아래서 김매기, 콩밭 매기, 고추밭 매기를 하느라 얼마나 고되셨을까? 살다보면 가까운 가족끼리 갈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며느리와의 갈등은 도를 넘었다. 그런데 한 번도 며느리를 엄하게 다스린 적이 없이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여기셨다. 그 많은 종교 하나 없지만 마음은 부처님이었다. 가을이면 들깨와 콩, 토란 등을 아들딸들에게 나누어주고, 손아래 시숙까지 나누어주셨다. 명절 때나 가끔 들를 때 용돈을 조금 드리면 하나도 쓰지 않고 저축해두셨다. 죽음이 휴식이라면 죽음만큼 편안한 휴식이 있을까? 형수님은 연탄을 쌓아놓고서도 아궁이를 막고 차게 사셨다. 형수님은 늘 겸손하고 스스로 낮은 자리를 취하며 살아오셨다. 우리가 손수 벌초를 할 때면 꼭 참석하시어 뒷바라지를 하신 형수님, 자식들에게 무엇 하나 요구한 일이 없으신 형수님, 그런 형수님이 떠나신 뒤 우리는 형수님의 인품을 새롭게 발견한다. 돌아가신 날도 뒷집 손아래동서와 함께 고추장을 담고 아들딸들에게 나누어 줄 그릇을 챙기다 쓰러지셨다. 119에 실려 남원의료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병원에 갈 때 숨진 상태여서 수속이 복잡하여 밤늦게 장례식장으로 모시게 되었다. 평소 후덕하신 인품이어서인지 의외로 조문객이 많아서 돌아가시면서도 자녀들을 도와주고 가셨다. 한 사람의 죽음, 특히 우리들과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절감이다. 죽음의 의미는 산 사람에게만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한 사람의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100년이 넘은 집이지만 이제 지킬 사람이 없으니 철거해야 한다. 집이 헐려 빈터만 남을 걸 생각하면 허전하기 짝이 없다. 이제 고향에 가도 형수님의 깍두기 김치나 메주가루로 담근 찌검장도 맛볼 수 없다. 고향에 가도 찾아볼 어른조차 없게 되었다. 형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깨닫지 못한 일이다. 형수님은 우리 집안의 큰 언덕이셨던 것이다. 형수님의 1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명복을 빈다. (201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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