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 몸속에 남자의 피가/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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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몸속에 남자의 피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지난해보다 병원가는 날이 잦아진 걸 보니, 건강에 비상등이 켜진 것 같아 단월드를 찾았다. 어쩜 내 인생에 마지막 운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다행히 근육강화에 기공체조와 뇌호흡법도 있어 선뜻 입회원서에 서명을 하였다. 오랜만에 도복을 입으니, 지난날들이 달음박질로 달려온다.
‘내가 먼저야, 아니야 내가 먼저랑깨’ 택견복과 검도복, 그리고 목검과 진검까지 기세등등하게 폼을 잡고 다가섰다. 운동을 처음 시작한 건 사십대 후반이었다. 택견을 배우던 남편의 손목에 이상이 생기자 그 바톤이 내게 넘겨졌다.
“하필이면 남자들 틈에서 어떡해?”
입을 쭉 내밀고 도리질을 하였지만, 나약한 심신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며 등을 떠미는 남편 덕에, 홍일점으로 택견복을 입게 되었다. 처음엔 제자리에서 원풍으로 하는 연습을 거쳐, 손질과 발질을 연결시키는 동작을 배워나갔다. 건강은 그저 얻어지는게 아니란 걸 알 것만 같다. 매일같이 문틀에 다리를 올려놓고, 한 칸, 또 한 칸, 벽돌을 쌓아가면서 다리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익크, 익크” 덩실덩실 오금을 굼실거리며 흐느적거리면서도, 내면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넘어뜨려야 했다. 마주메기와 마주치기로 넘기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멍이 들어도 억척이 어머니란 별명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땀이 밴 도복을 낚아채고 실랑이를 벌일 때면 눈초리는 독수리를 닮아갔다. 어느 날 2단발차기와 마주메기로 여드름투성이 대학생을 한판승으로 넘기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도장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 이 통쾌감, 어느새 난 선머슴애가 되어 버렸다. 매사에 소원했던 일들이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어갈 무렵 이사(移徙)라는 단어 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무술인 태극권에 입문하였다. 중국어 공부를 하던 중이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태극권은 머리가 맑아지고,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무술 겸 체조 같아 매력적이었다. 부드러우면서 기(氣)의 흐름을 중시하고, 느릿느릿하지만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운동이었다. 주 3일 태극기공을 익히면서, 검술을 배우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검을 하늘 높이 세웠다가 허공을 자르는 반복된 동작이 이어지자, 검 끝에서 ‘휙, 휙’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번쩍, 번쩍’ 겨루고, 베고, 찌르고, 중국 무술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면, 정면의 거울 속에서 야무진 낭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때론 강하게, 때론 무희가 춤을 추듯 몸 전체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 하였다. 태극권과의 만남이 무르익어갈 즈음, 중국어 강사로 나가게 되어 아쉬움을 접어야만 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계절은 바뀌고 또 돌아왔다. 어느 날, 도복을 입은 초등학생의 뒤를 따라 나도 모르게 검도장에 들어갔다.
하나. 나를 알기 위함이다.
둘. 나를 이기기 위함이다.
셋. 나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벽면에 부착된 수련목적에 눈이 마주치자 발길이 머물렀다. 까만 검도복에 목검을 허리에 차니, 오랜만에 고향집에 온 것 같았다. “얏, 얏” 30여명의 꼬마들과 함께, 정면, 좌, 우, 삼단 내리베기 등이 펼쳐졌다. 쉬는 시간은 벽면에 부착된 빙벽을 타며 팔 힘을 길러주고, 검으로 글씨를 쓰는 光자베기는 순발력을 길러주었다. 주 5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잠못 이루던 밤은 가고, 운동의 고마움에 푹 빠져 들었다. 검도는 검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이면서도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에 도움을 주었다.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검정 띠를 따고 입이 함박만해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대여! 나 검정 띠 땄어, 자기도 검도 배우면 어때?”
“싫어! 난 주방에서의 칼질도 그만두고 싶은데, 여자가 무슨 검도야?”
친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혹시, 내 몸속에 남자의 피가 역류하고 있는건 아닐까?
혹시, 내 몸속에 남자의 피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영
지난해보다 병원가는 날이 잦아진 걸 보니, 건강에 비상등이 켜진 것 같아 단월드를 찾았다. 어쩜 내 인생에 마지막 운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다행히 근육강화에 기공체조와 뇌호흡법도 있어 선뜻 입회원서에 서명을 하였다. 오랜만에 도복을 입으니, 지난날들이 달음박질로 달려온다.
‘내가 먼저야, 아니야 내가 먼저랑깨’ 택견복과 검도복, 그리고 목검과 진검까지 기세등등하게 폼을 잡고 다가섰다. 운동을 처음 시작한 건 사십대 후반이었다. 택견을 배우던 남편의 손목에 이상이 생기자 그 바톤이 내게 넘겨졌다.
“하필이면 남자들 틈에서 어떡해?”
입을 쭉 내밀고 도리질을 하였지만, 나약한 심신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며 등을 떠미는 남편 덕에, 홍일점으로 택견복을 입게 되었다. 처음엔 제자리에서 원풍으로 하는 연습을 거쳐, 손질과 발질을 연결시키는 동작을 배워나갔다. 건강은 그저 얻어지는게 아니란 걸 알 것만 같다. 매일같이 문틀에 다리를 올려놓고, 한 칸, 또 한 칸, 벽돌을 쌓아가면서 다리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익크, 익크” 덩실덩실 오금을 굼실거리며 흐느적거리면서도, 내면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넘어뜨려야 했다. 마주메기와 마주치기로 넘기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멍이 들어도 억척이 어머니란 별명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땀이 밴 도복을 낚아채고 실랑이를 벌일 때면 눈초리는 독수리를 닮아갔다. 어느 날 2단발차기와 마주메기로 여드름투성이 대학생을 한판승으로 넘기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도장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 이 통쾌감, 어느새 난 선머슴애가 되어 버렸다. 매사에 소원했던 일들이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어갈 무렵 이사(移徙)라는 단어 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무술인 태극권에 입문하였다. 중국어 공부를 하던 중이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태극권은 머리가 맑아지고,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무술 겸 체조 같아 매력적이었다. 부드러우면서 기(氣)의 흐름을 중시하고, 느릿느릿하지만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운동이었다. 주 3일 태극기공을 익히면서, 검술을 배우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검을 하늘 높이 세웠다가 허공을 자르는 반복된 동작이 이어지자, 검 끝에서 ‘휙, 휙’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번쩍, 번쩍’ 겨루고, 베고, 찌르고, 중국 무술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면, 정면의 거울 속에서 야무진 낭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때론 강하게, 때론 무희가 춤을 추듯 몸 전체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 하였다. 태극권과의 만남이 무르익어갈 즈음, 중국어 강사로 나가게 되어 아쉬움을 접어야만 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계절은 바뀌고 또 돌아왔다. 어느 날, 도복을 입은 초등학생의 뒤를 따라 나도 모르게 검도장에 들어갔다.
하나. 나를 알기 위함이다.
둘. 나를 이기기 위함이다.
셋. 나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벽면에 부착된 수련목적에 눈이 마주치자 발길이 머물렀다. 까만 검도복에 목검을 허리에 차니, 오랜만에 고향집에 온 것 같았다. “얏, 얏” 30여명의 꼬마들과 함께, 정면, 좌, 우, 삼단 내리베기 등이 펼쳐졌다. 쉬는 시간은 벽면에 부착된 빙벽을 타며 팔 힘을 길러주고, 검으로 글씨를 쓰는 光자베기는 순발력을 길러주었다. 주 5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잠못 이루던 밤은 가고, 운동의 고마움에 푹 빠져 들었다. 검도는 검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이면서도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에 도움을 주었다.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검정 띠를 따고 입이 함박만해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대여! 나 검정 띠 땄어, 자기도 검도 배우면 어때?”
“싫어! 난 주방에서의 칼질도 그만두고 싶은데, 여자가 무슨 검도야?”
친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혹시, 내 몸속에 남자의 피가 역류하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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