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caria/Hanil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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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우카리아(Araucaria)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나는 가끔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별로 해놓은 게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특히 어떤 이별을 접하거나 삶에 지쳐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더욱 그렇다.
언젠가 내 생일 때였다. 그날따라 왠지 마음이 울적해서 식물원으로 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꽃들과 나무들로 가득한 화원을 한 바퀴 돌다가 열대식물인 ‘파키라’와 ‘아라우카리아’를 사서 돌아왔다. 남미가 원산지인 파키라의 풍성한 잎과, 숲 속의 소나무처럼 부드러운 바늘잎을 달고 있는 ‘아라우카리아’의 매력적인 모습이 집안을 금세 이국적인 분위기로 바꿔놓았다.
어쩌다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할 때 거실을 거닐다 보면 푸른 생명이 내 지친 삶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더욱이 한쪽 구석에 자리한 ‘아라우카리아’가 눈길을 끌면 나는 그만 그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는 상록성 침엽수로 피라미드와 같은 수형을 이루며 큰 가지가 수평으로 자라는 모습이 세계 3대 미수(美樹)로 꼽힐 만큼 조형미를 갖추었기 때문일까? 그의 큰 키와 균형 잡힌 몸매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주고 마치 집안의 큰 어른 같아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다.
겨울이 되어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을 모두 거실로 들여놓으면서 유독 키다리 ‘아라우카리아’는 베란다에 그대로 두었다. 추위에 강하니까 괜찮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키가 너무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들수록 설 자리가 줄어들지 않던가. 나도 퇴직 후를 대비해서 자격증을 몇 개 취득해 놓았지만 내가 들어설 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4월이 되자 거실에 들여놓았던 싱싱한 화초들을 모두 베란다로 옮겨 놓았다. 하지만 겨우내 혼자서 베란다를 지키던 ‘아라우카리아’는 어깨가 축 처진 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봄이 되었으니 부드러워야 할 나뭇잎들이 마치 내게 항의라도 하듯 사나운 바늘 침으로 변해 내 손이 닿는 대로 콕콕 찔러대니 말이다. 하기야 지난겨울 얼마나 추웠던가.
‘아라우카리아’는 그 춥고 긴 겨울 동안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거실에 있는 화초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외로움과 추위에 떨며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까. 나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모처럼 양지쪽으로 옮겨 며칠간 정성을 쏟아 보았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다. 이러다간 정말로 죽이겠다 싶어 다급해진 나는 극단의 처방을 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쭉 뽑아서 우리 아파트 앞 공지에다 꾹꾹 심어놓았다.
아파트에 돌아오자마자 심어놓은 나무를 내려다보았더니 아뿔싸! 벌써 바람을 못 이겨 반쯤 드러누워 있는 게 아닌가. 땅을 깊이 파지 않고 대충 심어 놓은 탓이리라. 두 번 죽이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부리나케 내려가 바닥을 더 깊이 파고 준비해간 버팀목을 세워주었더니 이제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의 품이야말로 뭇 생명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유일한 길이 아니던가.
새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고,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치면서 살아야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잘 살 수 있고,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삶이 즐거울 것이다. 봄이 되어 들판에 수많은 꽃이 각기 다른 색상이어도 시기하거나 싸우지 않고 서로 어울려 사는 것처럼 말이다.
10여 년 가까이 아파트 안에서 잘 자라던 ‘아라우카리아’가 지금은 밖에서 홀로 서 있으니 너무나도 작고 초라해 보인다. 마치 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나도 건강할 때는 별로 두려운 게 없더니 작년 여름에 잠깐 실수로 팔목을 다쳤을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던가. 생물은 건강할 때의 활기찬 모습이 그 본연의 자태이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인가 보다.
오늘도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저 ‘아라우카리아’를 내려다보며 빈 화분을 들여다본다. 서툰 나의 이기적인 삶을 새삼 깨달으며 하루 속히 '아라우카리아'가 회생하여 자연 속의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20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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