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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꿈/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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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7회 작성일 11-03-2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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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꿈은 이루어진다!’ 이 구호는 2002 한일월드컵축구 때 커다란 현수막에 씌어져 선수들을 격려激勵하고, 관중들의 응원을 독려督勵하며, 온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표어다. 이러한 표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과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우리나라가 4강신화神話를 창조創造하여 한국인의 자긍심自矜心을 높여주지 않았던가. 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최초이니 아주 작은 나라지만 우리 민족의 저력底力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쾌거였다. 나는 퇴직을 하기 전에‘퇴직 후의 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많은 고민을 했다. 퇴직 후 한두 달을 놀면서도 선뜻 정하지 못하고 헤매었다. 그러던 중 전주안골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을 접接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다양하였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러다보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아 수필과 한문서예를 신청하였다. 프로그램 신청하는 날 새벽 4시에 나가서 두 프로그램을 접수하여 배우고 있다. 한문서예는 희망자가 많아 이렇게 일찍 나가지 않으면 접수할 수 없다는 정보를 듣고 그렇게 한 것이다. 한문서예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한글서예는 4년간 공부를 한 적이 있어 한문서예에 도전挑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자식들이 살고 있는 가정에 애비가 써 준 가훈家訓이라도 한 점씩 걸어주고 싶은 소박素朴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한문서체 중 해서楷書를 공부하고 있다. 해서에도 여러 사람의 서체가 있는데 장맹룡비張孟龍碑를 공부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서예도 하나의 기능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는 쉽게 써질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분들의 면면面面을 보니 많게는 84세의 원로元老 어르신과 75세 전후의 고령高齡 어르신들이 3분의 2정도이고 내가 막내였다. 또한 그분들의 필력筆歷도 10년 이상 쓰신 분들이고 도전道展 초대작가招待作家도 계셨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라도 장난삼아 쓰는 것이 아니라 노구老軀의 혼魂을 다하여 쓰시는 열정을 볼 때 존경스러우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수요일이던가? 아내가 둘째딸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여보. 은정이가 미용샵을 오픈한대요.” “응? 언제? “다음 주 수요일이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에게 주어진 좋은 계기인데, 내 실력으로 여러 사람에게 보여줄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랴. 한문서예에 대한 애비의 부족한 실력을 자식들이 알고 있으니까 정성精誠만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둘째딸이 학창시절에 부모의 애간장을 녹인 것을 생각하면 정이 천리나 떨어질 일이지만, 지금은 심성이 고운 신랑을 잘 만나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며, 제 자식을 알뜰살뜰 잘 기르는 것을 보면 언제 부모 속을 썩였는가 싶을 정도다. 또 제 부모 알기를 하늘 같이 알고 매일 제 어미와 통화하지 않는 날이 없다. 그리고 저희 형제들과 우애하려고 애를 쓰며, 가족분위기를 띄우는데 일등공신이어서 이제는 아무 걱정 않고 사랑스럽고 믿음이 간다. 그래서 그날부터 아내에게, “글씨나 한 점 써줘야겠네. 그런데 글씨가 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요. 붓 잡은 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당신 뜻대로 하세요.” 하며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곧바로 어떤 글을 써 주어야할지 인터넷에 물어보았다. 이곳저곳을 넘나들다가 마음에 쏙 드는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있었다. 옛날 어린이들을 서당에서 제일 먼저 읽게 하는‘추구推句’라는 책에 나오는‘일근천하 무난사一勤天下 無難事'라는 구절이었다. 뜻을 풀이하면‘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지런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라는 말이다. 항상 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조한 대목이었으니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시간만 나면 연습하고, 연습한 후에는 화선지 2절지에다 7~8회나 써보았다. 못 쓰는 글씨지만 주제主題가 마음에 들면 낙관落款이 마음에 안 들고, 낙관이 마음에 들면 어느 한 글자의 획이 비뚤어져 전체의 조화가 안 되었다. 그러면서 다행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더해가면서 조금씩 글씨가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기뻤다. 최초의 서예가들도 물론 스승이 없었으니 독학으로 꾸준히 쓰고, 연구하여 후학들이 존경하는 스승이 되었으리라. 서예 체본을 받아서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어서, 내가 그간에 배운 것을 뒤적거리고 또 컴퓨터에 한글로 제재를 치고 한자로 변환變換시킨 글자를 보면서 쓰니 더디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아내는 옆에서 구경하면서 심사審査를 맡았다. 제일 마지막에 쓴 작품이 그래도 그중 나은 것 같아 아내에게 벽지 남은 것을 찾아달라고 해서 두루마리를 만들었다. 옆에서 구경만 하던 아내도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글씨가 문제는 아니고 애비의 정성이 보였던지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썩 괜찮았다. 마침 초등학교 은사님께서 내게 승진기념으로 문인화를 선물로 주실 때 받은 두루마리 케이스를 찾아 넣으니 안성맞춤이었다.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니 이때까지 무거웠던 어깨가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꿈을 이룬 것이다. 이것을 들고 가는 아내의 발걸음도 가벼워보였다. 딸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에게 애비가 혼신의 노력으로 썼다는 말을 덧붙이며 딸에게 건네주었다, 딸과 사위의 눈에 눈물이 핑 돌며 감동하는 것을 보니 실력도 부족하면서 힘은 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다. 바로 내가 바랐던 모습이다.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좋겠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교감交感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나는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도 늙음을 한탄하지 않고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옆에서 보던 아들 내외도 감탄사感歎詞를 뿜어내면서, “아니, 언제 이렇게 발전하셨어요?” “와! 정말 잘 쓰셨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의 어깨가 뒤로 약간 넘어가는 듯 보였다. 내가 퇴직 후의 생활 중 서예를 선택한 것을 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서예를 하면서 심신의 건강을 찾을 수 있고, 삶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걸 보는 게 나의 소박한 꿈이고 희망이다. 그러면서 떨어져 따로 살지만 마음은 서로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창조는 규모로 보아 아주 작은 나라지만 선수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장점을 결집시켜 자신감과 의지를 심어준 지도자와 그를 따른 선수들이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던 일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말고 한결같이 부지런히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게으른 삶이 성공하는 삶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작은 시작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살아갈 때 한걸음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꿈을 이루는데 작은 밀알이 되고 그늘이 되고 싶다. (201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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