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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진돗개/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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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47회 작성일 11-03-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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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진돗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진도 하면 진돗개가 떠오른다. 96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도 한풀 꺾여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우리 향촌 탐사 팀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전라남도 진도를 찾았다. 혹독한 한파를 넘긴 배추가 겉잎은 시든 채 밭에 남아 있어 그래도 남쪽이라는 실감이 났다. 서당교육을 위한 학계(學契)조직을 기록한 철비와 남도석성, 삼별초의 배중손 장군 동상과 둘레가 6m를 넘는 비자나무도 반가웠고, 모세의 기적을 닮은 바닷길이 열린다는 모도(茅島) 등, 가는 곳마다 볼 것이 많았다. 의신면 돈지리에 자리 잡은 돌아온 백구공원을 찾아갔다. 뒤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이 트인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공원 건너 들녘이 넓어서 먹고 살기에는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7개월 만에 주인집으로 돌아온 진돗개를 기려서 공원을 만들었단다. 백구(白狗)가 할머니에게 안긴 모습의 석상이 있고, 그 개의 무덤이 고인돌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옆에는 백구를 소재로 한 시비도 세워 놓았다. 공원 옆에 사는 박복란 할머니는 진돗개를 키우다 1988년에 새끼를 얻었다. 그 새끼 진돗개가 유명한 돌아온 백구였다. 5살 되던 1993년에 대전에 사는 애견가에게 팔았는데 7달 만에 진도로 돌아온 것이다. 분명 차로 싣고 갔는데 천리나 되는 먼 길을 어떻게 찾아왔을까? 그 당시 TV에서 이 뉴스를 보고 흥미로워서 오랫동안 잊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진돗개는 몸높이가 수컷은 45~58cm이고 암컷은 43~53cm이며 무게는 10~20kg정도다. 털은 황갈색이나 흰색인데 용맹스럽고 주인에게 충직하며 귀소본능이 뛰어나다. 수렵능력이 우수해서 엽총 없이도 토끼와 노루를 사냥한다고 한다. 언제부터 전해왔는지 기록된 것은 없으나 남송 때 무역선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개와 같이 상륙하지 않았을까 하는 설과, 몽고가 침략했을 때 삼별초군을 토벌하러 데리고 왔던 군견이 남아 전했을 거라는 설이 있다. 개는 청각이 뛰어나고 후각이 다른 동물의 300배나 발달해서 먼 길을 갈 때는 오줌을 자주 깔긴다. 냄새를 남겼다가 돌아올 때 잃지 않으려는 본능이다. 냄새로 길을 찾는다지만 차를 타고 대전까지 팔려간 개가 어떻게 찾아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은 개에게 물어보아야 알겠는데 말이 통해야지……. 대전으로 팔려간 백구는 고향집이 그리웠다. 보살펴 주신 박복란 할머니와 가족들의 따뜻한 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매어놓은 줄을 물어뜯어 끊고 뛰쳐나와 고향 진도로 향했다. 낮에는 해님이 방향을 인도하고 밤에는 북두칠성이 안내를 했을까. 배가 고프면 쥐도 잡아먹고 남의 집 닭을 훔쳐 먹기도 했을 게다. 도시를 지날 때는 음식물통을 뒤지고 들녘에서는 냇물을 마시기도 했으리라. 오다가 지치면 대전으로 돌아가기는 쉬웠을 게다. 여기저기 영역을 표시했으니 찾아가기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 먹은 마음을 변치 않고 할머니를 향한 길을 택했다. 그 끈기는 진돗개가 아니면 가질 수 없다. 산이 가로막고 강이 걸음을 멈추게 해도 진도로진도로 줄달음을 쳤으리라. 찾아오면서 전주도 거치고 광주도 지났을 게다. 해남으로 돌아 진도로 건너왔다는데 그것을 어떻게 추측했는지 모르지만 비석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쉴 곳도 마땅치 않아 돌아왔을 때는 몹시 야위었다고 한다. 돌아온 백구는 할머니 품에 안겨 어쩔 줄을 몰랐을 게다. 다시 찾은 행복을 누리며 7년을 더 살다가 2000년 2월에 죽으니 13세 때였다. 너무 안타까워 인근에 묻었으나 백구공원이 조성될 때 묘를 옮겨 고인돌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다. 임실 오수의 의견비와 김제 순동리의 의견비처럼 개를 잊지 않으려 한 것이다. 돌아온 백구의 무덤 옆에 시비(詩碑)도 세워 천세만세까지 남기려 했다. 진도의 대명사이자 영웅호걸과 충신의 영혼이라 찬양했다. 너 없는 보배로운 땅 생각을 말자/ 보배로운 땅 없이/ 너의 존재를 뉘 말할 소냐/ 그 정 못 잊어 찾아온 고향/ 천리더냐 만리더냐/ 아! 난세에 영웅호걸/ 충신반열에 못 오르고/ 한 맺힌 귀양살이 비운의 영혼들/ 충견으로 환생했더냐/ 제 몸 사르는 생명의 은인이여/ 신이 주신 고귀한 선물이여/ 보배로운 이 땅 세세 연연 지켜주렴 좋지 않은 비유를 할 때에는 개를 들먹인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다.’ ‘개짓는 소리 하네.’ 등 여러 가지다. 그런데 이번 진돗개를 보고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고 싶었다. 얼마나 주인을 못 잊어 했으면 천릿길을 찾아 왔을까. 백구는 박 할머니를,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을 섬기 듯하고 불자들이 부처님을 받들듯이 존경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7개월 동안 성지순례 하듯이 그렇게 찾아 올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제 맘에 맞지 않으면 배신을 밥 먹듯이 한다. 충직한 진돗개를 대하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오히려 부끄럽다. 그래서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하고 한국진도견보호육성법을 정해 보호하는가 보다. 돌아온 백구는 광고모델이 되었고, “돌아온 진돗개 백구”라는 동화도 나왔으며 “하얀 마음 백구”라는 만화도 제작되었다 한다. 공원 근처의 박복란 할머니 집을 찾았으나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조촐한 3칸 집이나 깨끗하였고 정원수와 담장, 대문이 정결하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자손들이 산다고 했다. 개 한 마리를 잘 키워 유명해진 할머니, 저승에서도 백구와 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겠지? ( 2011. 2.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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