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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성/이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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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19회 작성일 11-03-0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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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버둥거리던 어려운 세상살이도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우리 어머니들은 강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데는 남을해치거나 사기를 치지 않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노력했었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라 우리 동네 농협 네거리에 장이 섰다. 물건이라야 무 서너 개, 소박이 배추 두어 폭, 시금치, 대파, 상추, 말린 고사리, 시래기, 고구마줄기, 호박꼬지, 무말랭이 따위가 있고, 참기름도 소주 병에 담겨 나란히 서있다. 장을 벌인 분들은 중년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할머니들은 오가는 사람들 얼굴을 살피며 나물을 사가시어 보름을 잘 쇠라고 권했다. 어떤 할머니는 도라지를 작은 소쿠리에 담아놓고 껍질을 벗기면서 잘게 찢어 나누어 놓으며 손으로 연신 하얀 도라지를 매만지고 있었다. 다 팔아야 만 원어치도 안될 성싶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먹고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 손자들 과자값이라도 하려고 장사를 한다고 한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옛날 자유당 때에는 불쌍한 노점상들에게서 자릿세라고 하여 돈을 받아가는 깡패들도 있었다. 그때는 자릿세를 내지 않으면 좌판 물건을 엎어버리고 행패를 부렸다. 그뿐인가, 교통정리를 한답시고 교통순경들에게도 쫓겨 다니면서 노점상을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그 시절, 우리 어머니도 아침 일찍 남원쪽 상관으로 나가시어 이른 봄부터 달래와 냉이, 씀바귀, 쑥 등 봄나물을 캐어 머리에 이고 남부시장 노점에서 팔아 보리쌀 두어 되를 팔아 집으로 돌아 오셨다. 그 보리쌀을 확독에 갈아 죽을 쑤어 여덟 식구가 저녁 식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노점상이었다. 사과나 배를 과수원에서 떼어다가 길가에서 팔았고, 양말과 메리야스 등 옷가지도 도매상에서 떼어다 팔아 먹고 살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는 절대 깎지마라고 했다. 그것은 그만큼 가난한 노점상이었기 때문이리라. 내일이 밥 아홉 그릇 먹고 나무 아홉 짐을 하라는 정월 대보름 명절이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농협 네거리 노점상들에게는 대목장이다. 정월 대보름은 달집을 태우는 망월도 있다. 뒷동산에 청솔가지와 대나무로 달집을 지어놓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집에 불을 붙여 훨훨 타오르면 큰소리로 다함께 '망월'이라고 외치면서 한복 저고리 동정을 뜯어 달집에 던지면서 가족들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문득 옛날 정월대보름의 추억과 함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내 나이도 잊고 눈시울이 촉촉히 젖는다. (20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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