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어이할거나, 이 괴질을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어이할거나, 이 괴질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3회 작성일 11-02-27 14:25

본문

어이할거나, 이 괴질을 -구제역으로 죽어간 가축들의 명복을 빌며- 김 학 묻힌 그대들이여 아직 언 땅 찍어낸 흙구덩이 속에서 다 죽지 못하고 마지막 헛발질을 하고 있습니까 혹은 남은 한마디 울부짖음 꽉 막혀 꿈틀대다 말고 있습니까 묻힌 그대들의 새끼 하나하나 살려고 태어나 살지 못하고 살지 못하고 어이어이없이 따라 묻힌 송아지들이여 아직 어미 젖꼭지를 외우고 있습니까 움메라는 말 한마디 어디다 놔두고 말았습니까 <고은 詩 : '명복' 서두에서> 너의 육신은 찢어진 저금통이 아니다 구덩이에 던지면 그만인 고장 난 냉장고가 아닌 줄 너를 자식으로 기른 농부가 어찌 모르겠느냐 너희의 황망한 목숨 우리들의 허망한 애욕의 끝이 어찌 닿지 않겠느냐 목숨과 목숨의 경계가 어찌 다르겠느냐 <윤고방 詩 : '착한 눈망울을 애도함' 중에서> 구제역(口蹄疫)이란 괴질이 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어 우리를 슬픔에 젖게 한다. 온 나라가 눈물바다다. 이 나라의 소와 돼지 등 가축의 씨를 말리려는 듯 그 괴질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구제역 때문에 목숨을 잃은 소와 돼지들이 벌써 3백 2십여만 마리가 넘는다. 죽어간 가축들이 모두 그 몹쓸 병에 걸려서 죽은 건 아니다. 구제역에 걸린 짐승과 같은 지역에 산다는 죄로 진단이나 재판도 받지 않고 사형집행을 당한 것이다. 일종의 연좌제이니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그들은 두드려서 억울함을 호소할 신문고(申聞鼓)조차도 없다. 그 비참한 죽음을 누구에게 어떻게 하소연이라도 한단 말인가? 농부들뿐 아니다. 살처분에 참여하는 공무원과 수의사, 군인들까지 심리적 고통이 크다고 한다. 그들은 쉬지도 못하고 혹한 속에서 울부짖는 소와 돼지들의 몸짓과 소리를 보고 들으며 생매장하자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수백 마리씩 살아있는 가축들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여 살처분 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한 때는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토종 한우를 우대하고 선호하였지만 요즈음은 수입육이 오히려 우대를 받고 있다. 구제역은 바이러스로 전염되어 한두 마리가 양성반응이 나오면 다른 소도 살처분된다. 처음에는 살처분되는 소를 생매장하였다. 동물학대로 여론이 확대되자 안락사 시킨 뒤 매장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학살과 동물의 학살은 무엇이 다른가? 카틴 숲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1940년 러시아가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폴란드 장교 2만 명을 카틴(katyn) 숲에서 학살하여 매장한 사건이다. 마치 동물을 살처분 하듯 인간을 학살하였다. 2차 대전 때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들이 유태인을 6백만 명이나 학살했다. 지금 동물들을 생매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역사적 사건들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세명 수필 : '소, 그리고 구제역' 중에서> 오호, 통재라!  소와 돼지, 개와 닭은 농민들에겐 피를 나눈 식구나 다름없는 가축들이다. 이들이 아프면 농민들은 수의사를 불러 치료를 하고 단방약을 구해 먹이며 가슴 아파 했었다. 이들 가축들은 조상 대대로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하여 헌신봉사한 죄밖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런 가축들이 마구 죽어가는 데도 지금까지 은혜를 입은 이 나라 백성들은 가장 손쉬운 살처분(殺處分)으로 땜질처방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축산농민들은 한숨과 피눈물을 흘리지만 누구 한 사람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에 유능한 수의사도 많고 선진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은 수의학 박사들도 많을 텐데 왜들 손을 놓고 있는 것일까? 이들 괴질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건만 왜 지금까지 예방약이나 치료약을 개발하지 못한 것일까? <김학 수필 : '소와 돼지, 닭과 오리들의 죽음을 애도함' 중에서> 시인들은 시로, 수필가들은 수필로 조우송 조돈송(弔牛訟 弔豚訟)을 읊지만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이 구제역을 예방하고 가축의 살처분에 동원된 사람들 중에서도 과로와 심리적 괴로움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가? 왜 이런 재앙이 찾아왔단 말인가?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이 나라의 문인이라면 어찌 이런 상황을 모르쇠 할 수 있겠는가?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蛙君)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潭)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가 담 꼬리에 부유(浮遊)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겨울의 비상한 혹한(酷寒)에 작은 담수(潭水)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凍死)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닌다.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 <김교신 수필 : '조와(弔蛙)' 결미에서> 파리야, 날아와서 음식상에 모여라. 수북이 담은 쌀밥에 국도 간맞춰 끓여 놓았고, 술도 잘 익어 향기롭고, 국수와 만두도 곁들였으니, 어서 와서 너희들의 마른 목구멍을 적시고 너희들의 주린 창자를 채우라. 파리야,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희 부모와 처자식 모두 데리고 와서, 이제 한 번 실컷 포식하여 굶주렸던 한을 풀도록 하여라. 너희가 살던 옛집을 보니 쑥밭이 되어 추녀도 내려앉고 벽도 허물어지고 문짝도 기울었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너희가 갈던 옛 밭을 보니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다. <정약용 수필 : '조승문(弔繩文)' 중에서> 옛날 우리의 선인들은 개구리의 죽음을 보고 애도하는 글을 남겼고, 파리가 죽는 것을 보고도 조문하는 글을 남겼다. 옛날 선인들은 그처럼 휴매니스트였던 것이다. 더구나 개구리나 파리가 어찌 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과 대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글을 쓰는 문인들이 만여 명이 넘는데 3백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죽었는데도 침묵을 지켜서야 되겠는가? 애절한 이 심정을 제문으로 지어 비명횡사한 가축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아니 마땅히 제사라도 지내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면 하늘도 감동하여 다시는 이 땅에 그런 괴질이 나타나지 않게 막아주지 않겠는가? 오호통재(嗚呼痛哉)요 오호애재(嗚呼哀哉)로다! 비명에 횡사한 가축들이시여,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2011. 2. 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