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칠순/윤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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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칠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 석 조
조용하던 우리 집에 아들과 딸네 가족들이 들이닥치자 그때서야 사람 사는 집 같이 시끌벅적하였다. 만류하던 아내의 칠순(七旬)을 그냥 넘길 수 없다하여, 가족들끼리만 전주 효자동 '수라간'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음식점의 별실에 들어서니 앞 벽면에 걸린 '나윤자 여사님 칠순'이란 현수막이 축하해 주고 있었다. 막내딸이 오고 있는 중이어서 우선 전주 사람들만 먼저 점심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생에 잔치 상(床)을 보통 세 번 받는다고 한다. 돌과 결혼, 회갑 때다. 돌과 결혼 때 받는 상은 부모님으로부터 밭는 상이고, 회갑은 자식들로부터 받는 상이다. 모두 개인 사정이기에 남의 일에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수 있는 일은 아니나, 친척이나 이웃 모두가 함께 축하해 주어야 할 날들이다.
옛날사람들은 일제(日帝)의 수탈로 가난해져서 못 먹고, 병원조차 갈 수 없어 회갑 때까지 살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이 살아 계셔도 회갑잔치를 하는 이가 아주 드물었다. 내 어릴 적에만 해도 회갑잔치가 있는 날에는 온동네 사람들이 잔치음식을 얻어먹는 날이고, 그 동네는 물론 온 고을(面)이 시끌벅적하였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한 살 차라 아버님 회갑 때, 형제들이 합심하여 부모님께 회갑 상을 차려드리며 일가친척들을 모시고 동네잔치를 벌였었다. 부모님과 형제들도 좋아하여, 장남인 내 마음은 흐뭇했었다.
나도 자식들이 회갑 상을 차려주려는 눈치가 보여 극구 반대하였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그냥 말 수 없으니 제주도(濟州道)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효도관광 여행권’ 두 장을 주어 호화스럽고 고맙게 제주 관광을 다녀왔었다. 개인위생(個人衛生)관리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져 요즘에는 회갑보다 칠순 잔치를 가족끼리 조촐하게 베푸는 게 사회적 흐름인 것 같다.
어느 날 문인으로 변신하여 주기적으로 만나는 제자들에게, 졸작이 실려 있는 문예지와 수필 동인지들을 나눠 주었더니 모두들 놀라며 축하해 주어 흐뭇했었다. 늦은 나이에 등단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시집이나 수필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작품을 발표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강태공처럼 살면서 세월타령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글을 쓰며 살고 있었다.
고희(古稀) 때 수필집을 만들어 달라는 제자들의 권고를 받고 그냥 웃어 넘겼다.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어느새 둥둥 뜨고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원고를 만들기 위해 무덥던 그 여름날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작품을 썼던 일이 엊그제 같다. 제자들(전라고 12회3-3반 반장 김치헌)의 봉정으로 수필집 《노을 빛 사랑》이 만들어 지고, 고희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6년 전 3월 27일 전주 코아호텔에서 가졌었다. 분에 넘친 대접을 받아 염치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 자랑스럽고 흐뭇하여 그 제자들을 잊을 수가 없다.
자식들이 아내의 칠순 잔치 겸 우리 부부의 해외여행(유럽)을 준비하는 것을 알았다. 막내딸이 여권 사용 기간을 물었을 때, 우리부부의 여권은 시효(時效)가 이미 지나 쓸모가 없었다. 1992년 일본교육시찰연수를 갈 때 생전 처음 만든 여권이었고, 퇴직 후에 시효기간을 연장하여 두 번이나 중국 관광여행을 다녀왔었다. 북경과 만리장성 주변의 관광, 고구려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만주 길림성 백두산 천지를 보고 온 뒤 시효가 만료된 그 여권은 서랍 속에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여행사로 여권 사본을 전송(電送)해 달라는 독촉이 몇 차례 왔는데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옛날 유럽 여러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자연환경을 본다는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유럽행 비행기 속에서 육지와 바다를 굽어보는 것을 상상하며 아내의 생일을 기다렸다.
뜬금없이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로 검은 연기가 유럽의 하늘을 뒤덮고, 여객기의 이착륙이 어려워 여행객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는 뉴스가 연일 계속되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자식들이 만들어준 유럽 여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올해에 못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칠순을 준비하여 조금씩 만들어 놓은 비밀 자금이 있기에, 이웃 일본 관광을 알아보고 있었다.
막내딸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유럽 여행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여름방학 때 저도 함께 유럽여행을 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부모가 유럽 여행을 꼭 다녀오도록 하고 싶은 막내딸의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유럽여행을 가려는 내 마음이 들떠 있는데 출발을 앞두고 막내딸이 집에 내려왔다. 일주일 동안 돌아다니며 여행준비물을 잘 챙겨주어서 우리 부부는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드디어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유럽 다섯 나라(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독일)를 다녀왔다. 역사의 현장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오면서 ‘사실에서 사실이 나온다는 것을 역사가로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란 연세대 조의설 교수의 멋진 말씀이 생각났다. 여러 곳의 관광지와 성당, 박물관과 유적지들을 돌아보았다. 우리나라에만 있을 것 같던 무궁화와 소나무, 목을 숙인 벼도 보고, 강과 들, 산을 지나며 그곳 자연에 빠져 보았다. 자연과 사람 사는 것들을 보고나니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實感)났다.
아내의 칠순을 맞아 건강한 몸으로 처음으로 서유럽을 여행하며 새로운 세계를 돌아본 것은, 우리 부부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자 기쁨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글도 쓰고 문인들과 어울리며, 항상 챙겨주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기에 늘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다.
(201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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