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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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午報)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옵보 불면 밥 먹자.”는 옛날 동요를 생각게 하는 말이다. 뚜 우 우! ~ 은은하고 들릴락말락한 소리! 옵보란? 오보(午報:Noon Siren)의 발음을 잘못 표현한 것이다. 시계가 없었던 옛날에는 정한 시각(정오, 자정)이 되면 고동, 종, 총포. 등으로 시각을 알렸다.
고시조(古時調)에 자정을 야월삼경(夜月三更)이라 했다. 경(更)이란 밤을 해진 뒤 다시 오경(五更)으로 나누어 초경(술시:7~9시), 이경(해시:9~11시), 삼경(자시:11~1시), 사경(축시:1~3시), 오경(인시:3~5시)이라 했다. 흔히들 사주팔자(四柱八字)는 타고난 운명으로 네 기둥 즉, 연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로 간지(干支)여덟 자, 출생시각까지 가리킨다. 근대화되면서는 정오에 오보라고 해서 대표적으로 사이렌을 울려 시각을 알린 것이 보편화되었다.
내 어릴 적 멀리 순창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옵보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들녘에서 농부들이 일을 하다가도 매듭을 지어가며 점심 먹을 채비를 했고, 아녀자들은 식사준비를 서둘렀다. 경험 없는 세대들은 “옵보 불면 밥 먹자.”는 뜻도 모를 것이고 아주 생소한 말일 것이다. 정적(靜寂)을 깨고 은은히 들려오는 사이렌 시보가 시국(時局)의 변화에 따라 변했다.
이 땅이 이념갈등에 따라 공비활동이 심해지자 오보가 폐지되고 한 때나마 치안유지상 통행금지 시보로 활용했다. 인권보다 우선한 치안, 통행금지령은 많은 사연과 일화를 남겼다. 생활의 불편은 물론 잠깐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료강제숙박소인 경찰서 신세를 면치 못했었다.
시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며 민주화가 되면서 통행금지령이 해제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남북대립은 또다시 경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리로 변했었다. 아무리 훈련경보라지만 나이 많은 분들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다. 더구나 앞으로는 재난경보로도 사이렌소리를 쓰겠다한다. 제발 다시는 그 사이렌소리를 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사연을 가진 사이렌이 경계와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리로 변한지 이미 수십 년! 이제 이 소리도 주도권을 잃었다. 소리의 한계를 넘어 전파에 압도당했다할까? 더욱 시계가 한 때의 귀중품 중의 왕좌 자리를 잃어가고 가질 필요가 없는 물건이 되고 있다. 모든 운동경기에서 10분의 1초를 다투는 세상이 되어 전자시계와 영상이 아니면 정확한 판정을 내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보통생활은 시시각각 방송되는 방송매체와 핸드폰이 시계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만다. 구차하게 핸드폰과 시계가 짐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시계란 이제 기상청이나 방송국, 경기장, 통신의 필수장비이지 개개인의 휴대품에서 제외되어 간다.
아! 세월이 무상하다. 시계라고 하면 필요에 따라 괘종, 탁상, 회중, 손목시계 등 다양했다. 20대 초반에 교단에 섰을 때만 해도 손목시계 하나 없이 근무했었다. 그렇게 귀하던 고가의 시계,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었고 재산목록 제1호로 장만한 시계가 이제 쓸모없는 골동품신세가 되었다. 비단 시계뿐이겠는가? 모든 것이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라더니…….
내가 태어난 지 한 세기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하지만 강산뿐이겠는가? 문명과 문화, 정신과 세시풍습, 생태와 생활양식 그 모든 것이 바뀌어간다. 은은히 들려오는 옵보(오보)소리를 듣고 점심을 먹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지만 이제는 찾을 길이 없다. 그 시절의 농촌풍경을 그리노라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하지만 그때는 생명력을 잃은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를 가나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세상이랄까? (2011.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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