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한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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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오늘은 문득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황 선생님이 떠올랐다. 여선생님이었던 그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두꺼운 돋보기안경 너머로 눈을 치켜뜨면 무서웠었다. 그 기억이 초가집 굴뚝의 흰 연기처럼 피어난다.
그 시절, 우리 선생님은 교내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했다. 겁이 많은 나는 개인적으로 크게 혼난 일은 없지만, 칠판글씨가 잘 안 보여 필기를 할 때면 으레 교단 앞으로 나가서 써야만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학교를 다녀오시기라도 하면 내 자리가 앞자리로 바뀌어 한동안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시력이 0.4, 0.6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곳에선 키대로 자리를 앉으니까 별 어려움을 몰랐다. 어쩌다 등수대로 자리를 앉아 창가라도 앉게 되면 틈틈이 창밖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과 정원의 소나무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차츰 시력이 좋아져서 공부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40이 넘은 늦깎이 대학시절에는 맨 뒤에 앉아도 칠판글씨가 환하게 잘 보였다. 어쩌다 법전의 깨알 같은 글씨와 마주할 때면 누군가 옆에서 신기한 듯 ‘글씨가 보이느냐고 물었다. 잘 보인다고 대답하면 어쩌면 그럴까 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안경 쓴 사람이 멋있게 보여 부럽던 때였다.
어느 날이었다. 공중전화를 하려고 수첩을 펼치니 먹구름이 없는 화창한 날씨인데도 수첩의 까만 글씨가 나와 숨바꼭질을 했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해결했지만, 기분이 씁쓸했다. ‘내가 어느새 돋보기를 써야 할 나이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 황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서글펐다.
그뿐 아니다. 찬바람이 불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한 번은 헤어진 지 10여 년 만에 길에서 우연히 아는 언니를 만났는데 보자마자 눈물이 주책없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런 나를 언니는 반가워서 그런 줄 알고 웬 눈물까지 흘리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때를 모르는 눈물 때문에 안과를 찾았다. 의사선생님은 눈물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노안(老眼)이라면서 보안용 안경을 권했다. 언젠가는 써보고 싶었던 안경이었지만 노안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호기심이 생겨 써보았더니 몹시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답답하고, 흘러내리고, 밖에 있다가 안에 들어오면 성에가 끼어 원근(遠近)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못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편하게 살아온 데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수십 년씩 안경을 쓰고 사는 사람들의 고충을 다소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은 조선 선조 때 문신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의 안경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 나설 때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예의였으며, 자신보다 신분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는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안경을 쓰기가 무척 까다로웠던 모양이다. 그런데다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싸서 집안 살림을 모두 팔아야 살 수 있을 정도였다니 안경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은 어떤가. 요즈음은 누군가만 쓰는 줄 알았던 안경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나 쓸 수 있다. 사용자의 취향이나 주머니 사정에 맞게 선택하여 시력보정뿐 아니라 멋을 내기 위해서 쓰는 사람도 있다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안경을 쓴 인구가 불과 20~3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47%로 약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2008년 대한안경사협회 조사)
나는 안경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외출할 때 쓰는 보안용과 책을 읽을 때 쓰는 돋보기안경이 방마다 있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걸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다초점 안경도 벌써 세 번째 맞추었다. 그동안 적응을 못해서 가방 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썼는데 엊그제 E안경점에서 맞춘 안경은 그게 아니었다. 의외로 눈이 아주 편했다. 안경점을 잘 선택해서인지,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인지 이제는 안경 하나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했던가. 이제 새로 맞춘 안경 하나로 세상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의 먼 장래도 이렇게 환하게 미리 내다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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