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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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蠅]
김 학
창밖은 영하 13도, 펑펑 눈은 내려도 칼날같이 매섭고 아린 추위가 꽁꽁 얼어붙게 하는 날씨다. 일요일, 모처럼 외출을 삼가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있는데 어디서 날아들어 왔는지 파리 한 마리가 천장에서 배회하고 있다.
5분, 10분. 만연히 쳐다보고 있노라니 그 파리는 항상 그 근처에서만 맴돌 뿐 더 이상 활동범위를 넓히려 들지 않는다. 어지럼병이 날법도 하건만 도무지 멈출 기색이 없어 보인다. 파리 목숨 치고는 모진 목숨이요, 지독하게도 불행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 게다가 빙점 이하의 엄동설한에 태어났다는 사실도 그러려니와 하필이면 음식상 나들이가 전혀 없는 나의 침실을 찾아든 것 또한 그렇다. 억세게도 운이 나쁜 놈인 모양이다.
마음씨 좋은 뉴턴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어리석은 파리야, 세상은 저렇게 넓은데 너는 어이하여 내 침실로 찾아와 나를 괴롭히느냐?'라고 꾸짖으면서 훨훨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러나 얼어 죽을 것 같아 그 짓도 차마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먹이를 챙겨 주면서 사육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전염병을 옮기는 못된 놈이라고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처지이지만 모진 겨울에 태어나 고생하는 걸 보니 측은한 느낌이 든다. 겨울 파리는 더없이 불행한 존재다.
지난해 여름, 나는 파리와 싸우느라고 세월 가는 줄도 잊었다. 파리채를 두 개나 망가뜨려야 했고, 살충제를 여러 번 소모할 정도로 격전을 벌여야 했다. 이른 아침 눈뜨기가 무섭게 파리를 때려잡는 게 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제아무리 극성스러운 파리떼일지라도 이젠 얼씬도 않겠지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직장에서 돌아와 보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파리들의 요란한 편대비행이 나를 당혹케 하곤 했다. 아침저녁으로 파리채를 휘두르고 살충제를 뿌리며 용감한 슈퍼맨처럼 그들과 맞서 싸웠지만 결과는 항상 나의 판정패로 끝났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지은 지 몇 해 되지 않은 양옥이다. 집 안팎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모기의 탯자리가 될 만한 곳은 없다. 그런데도 꽹과리 없는 중공군처럼 파리 떼가 밀어닥치니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어느 날 짬을 내어 집 주변을 샅샅이 수색한 결과 마침내 그들의 발진 기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들의 소굴은 바로 우리 앞집 변소였던 것이다. 담장 하나를 사이하고 주저앉을 듯 서있는 재래식 변소에서 산아제한 없이 파리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나의 통치권 밖인 걸 어쩌랴. 그 변소가 현대화되지 않는 한 해가 바뀌어도 파리 떼의 공습을 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삼가라는 교훈을 남기셨거늘 지난여름 파리를 대량 학살한 난 훗날 어떤 업보를 받게 될지 내심 걱정이다.
여름이 가슴을 열면 덩달아 불청객인 파리 떼도 찾아 올 터이니 그때 나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겠는가. 떼거리로 찾아오는 여름파리는 얄미워도 다소곳이 홀로 찾아오는 겨울파리는 청상과부만큼이나 애처롭다. 여름파리에겐 적개심을 지녔던 내가 겨울파리에겐 왜 이다지도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일까? 약자를 돕고 싶어 하는 본성의 발로일까?
허공을 맴돌며 방황하던 파리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녀린 날개를 고이 접은 채 발이 손이 되도록 빌며 오열한다. 지난여름 비명에 간 자기 조상의 원혼을 달래려는 기도일까, 아니면 자기 목숨만 살려달라는 애걸일까?
아직도 우리의 시골은 파리의 낙원이요 천국이다. 음식을 차려 놓으면 으레 저희들이 먼저 달려들어 맛을 본다. 아무 곳에나 배설을 하여 집안이 온통 주근깨투성이가 되어도 으레 그러려니 치부하고 만다. 파리들로서는 그야말로 자유만복이다. 구박받는 모기에 비하면 시골 파리의 삶은 그만큼 행복한 편이다. 파리를 지켜보며 생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유명한 반고(班固)의 글귀가 언뜻 떠오른다.
靑蠅嗜肉汁而忘溺水 衆人貧世利而罪禍 청승기육즙이망익수 중인빈세이이죄화
파리는 고깃국을 좋아하다 물에 빠져 죽을 줄을 모르고,
사람은 이익을 탐내다가 죄에 빠질 줄을 모른다.
불현듯 내 지난날이 돌이켜진다. 앞으로 살아나갈 나의 인생의 방향이 떠오른다. 항상 불편과 피해만 주는 것으로 여겼던 한낱 미물인 파리가 오늘따라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던 나에게 무디어진 양심을 일깨워 주는 성자(성자)처럼 느껴진다.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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