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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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연보랏빛 꽃잎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피어나는 사랑초의 꽃말이다. 남달리 꽃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항상 화원이 따라다닌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도 실내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사철 푸른 소나무와 고무나무, 관음죽을 비롯해서 금사춘, 종려수와 함께 산천보세, 호접란, 철골소심, 옥화, 건난 등 제법 그럴듯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 울밑에서 피어나던 봉선화와 채송화, 접시꽃, 여러 종류의 꽃들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분재와 수석까지 즐기는 편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요, 해박하게 아는 것도 없다. 그저 싱그러운 초록 잎과 화사한 꽃들의 향기에 취하다 보니 오늘도 창가에 조그마한 화원이 만들어져 나를 즐겁게 한다. 화분마다 사랑스럽고 향기가 넘친다. 숨어 있는 전설과 꽃말도 아주 다양하다.
나는 이른 봄날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수선화를 몹시 사랑한다. 연둣빛 잎 사이로 노랗게 피어나는 꽃잎이 나를 사로잡는다. 해마다 봄이 되면 거실이나 안방에서 봄의 서곡을 울려 주는 듯하다. 은은한 향기가 내 영혼을 황홀하게 한다. 자기 미모에 도취되어 옹달샘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신화도 감동을 준다. 여름 내내 푸른 잎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면 그제야 꽃대공이 올라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애틋하게 노래하는 꽃무릇 연정이 안타깝다.
우리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들고 날 때마다 헌 가구와 꽃나무들이 쓰레기장에 버려져서 애처롭게 죽어간다. 나는 이렇게 주인으로부터 배신당한 꽃들을 빈 화분에 옮겨 잘 키워내는 것이 취미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대부분 값싸고 흔한 것들이다. 그러나 정성을 쏟아 기르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어준다.
어느 날 버려진 화분 하나를 옮겨왔다. 이른 아침에 기상하는 ‘사랑초’다. 연보랏빛 여린 꽃잎이 동트는 햇살을 머금어 환하게 피었다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꽃잎도 접혀지면서 잠길에 든다. 사랑초는 서양에서는 옥살리스(Oxalis)라 한다. 열대성, 아열대성 식물이다. 쌍떡잎식물 쥐손이풀과로 관상용으로 재배된다. 사랑초에 얽힌 전설도 의미가 깊다.
팔순 노파가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돌봐 줄 사람이 없어 홀로 생활하였다.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 장독대에 있는 시영풀(시금초)만 먹다가 부모님 무덤가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곳에 토끼풀로 되살아났다. 어느 사이에 마을에서는 토끼풀을 보면 행복해진다는 소문이 퍼졌다. 혹 네 이파리를 발견하면 큰 행운이온다고도 했다. 모든 사람들은 주어진 행복 이상의 행운을 찾으려고 토끼풀을 짓밟고 다녔다. 어느 날 사랑에 목말랐던 이에게 행운이 깃들어 그와 함께 한 토끼풀은 멍이 들어 자줏빛 사랑초가 되었다고 한다. 잎이 사람의 심장을 닮아서 사랑초라고도 한다.
양지 바른 곳에서는 1년 내내 꽃을 피워준다. 여린 듯 강한 식물이다. 죽음보다 강한 힘으로 겨울에도 꽃이 핀다. 해가 흐리거나 어두워지면 반쪽자리 하트모양을 한다. 밤이 되면 살포시 포개져 둘이 하나가 되어 아침을 기다린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려니 싶다. 사랑스러움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보랏빛 사랑초!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아침에 기상하는 사랑초처럼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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