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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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三溪 金 鶴
온 세상이 눈부시도록 하얗다.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설국(雪國)이다. 전주에 무려 20.3센티미터의 눈이 내렸다. 41년만의 폭설이란다.
아파트 단지의 크고 작은 나무들은 저마다 눈을 머리에 이고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나무들이 벌을 서는 것 같다. 새벽기도를 다녀 온 아내는 눈이 발목까지 빠졌다며 호들갑이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전주에 많은 눈이 내렸다. 나는 고희의 문턱에 이른 내 나이를 잊은 채 동심에 빠져들었다.
옛날 내 고향 박사고을 삼계에 살 때는 겨울마다 눈이 자주 내렸다. 겨울이면 눈이 솜이불처럼 지붕을 덮었고, 처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하거나 얼음과자처럼 먹기도 했었다. 눈이 내리면 길이 나서 반들반들해진 고갯길에서 미끄럼을 타고, 얼음이 꽁꽁 언 논에서 썰매를 지치기도 했었다. 눈사람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며, 뒷동산에서 토끼몰이도 했었다. 볼과 귀가 빨갛게 물들어도 추운 줄 모르고 즐겁게 놀았다. 신나게 놀다가 손을 호호 불며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는 나를 아랫목에 앉히고 화로를 쬐게 하셨다. 그 화로에 알밤이나 자잘한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천하별미였다. 아득한 옛날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실타래처럼 솔솔 풀린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란 요즘 아이들은 온돌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단독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아궁이가 사라져 버린 까닭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달구고 따뜻한 아랫목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밤이나 고구마를 먹던 정겨움도 모른다. 아버지가 외출하신 날이면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 상보(床褓)로 덮어놓고, 밥그릇은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두셨다.
또 안방 시렁에는 메주덩이가 매달려 있고, 명절이나 제사가 가까워 오면 아랫목에서 식혜(食醯)를 삭히기도 하였다. 또 가양주(家釀酒)도 아랫목에서 익어갔었다. 온돌방은 다양한 먹을거리의 생산지였던 것이다.
집집마다 있었던 온돌방이 보일러 방으로 바뀌고, 지금은 찜질방이 간신히 그 온돌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인은 정겹고 훈훈한 온돌방의 아랫목문화를 상실한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
아파트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온돌방처럼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가 없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디지털 유목민(遊牧民)으로 살아간다. 앉은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5대양 6대주와 교류하고, 시공을 뛰어넘는 정보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외로움을 탄다. 인정이 메마른 고독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더불어 즐기지 않고 홀로 즐긴다. 이것이 현대인의 비극이다.
방은 같은 방이지만 온돌방과 보일러 방은 확연히 다르다. 온돌방의 아랫목은 따뜻하지만 윗목은 차다. 그러나 보일러 방은 아랫목 윗목 구분 없이 골고루 따뜻하다. 온돌방에서는 어른은 아랫목에, 젊은 사람은 윗목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보일러 방은 골고루 따뜻하니 온돌방처럼 어른과 젊은이가 자리를 가려 앉을 필요가 없다.
처음엔 그게 안방의 민주화처럼 보여서 좋았다. 그러나 온돌방이 사라지면서 안방의 위계질서도 더불어 사라져 버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안방에서 위계질서가 무너지더니 결국 사회의 위계질서도 붕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위아래 구분이 사라진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옛날 겨울이 다가오면 겨우내 먹을 김장과 방을 덥혀줄 연탄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게 이른 바 겨우살이 준비였다. 그 겨우살이 준비만 끝나면 겨울에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리거나 날씨가 추워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우살이 준비란 말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아직 김장을 담그는 집들이 있지만 김치공장에서 김치가 대량생산되는 시대다. 그러니 가정에서도 김치 담그는 일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더구나 요즘 어린이들이 김치를 즐겨 먹지 않는다니 김치의 운명도 시한부가 아닐까 싶다.
농경시대의 정착사회(定着社會)가 정보화시대의 유목사회(遊牧社會)로 바뀌면서 모든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10년이면 변하던 강산이 지금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변화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진 탓이다. 누구나 이 변화에 순응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역행하면 낙오할 수밖에 없으리라. 겨우살이 풍경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이 변했던가?
오늘밤에도 또 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다. 눈이 얼마나 더 내릴지 모르겠다. 오늘밤 눈이 내리면 아내와 함께 길거리 포장마차를 찾아가 소주라도 한 잔 마시며 옛날의 겨울풍경을 회상해 보고 싶다. 참새구이 안주로 따끈한 정종을 마시던 옛날이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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