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지용/이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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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鄭芝溶)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행촌수필 가을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지난 11월 13일 충북 옥천의 정지용문학관과 고 육영수 여사 생가, 중봉 조헌 선생의 후윤당 등을 둘러 보았다. 나는 시인 정지용 문학관과 정지용 시인의 생가에 관심이 많았다.
정지용 시인 문학관은 아담하고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배울 게 많은 문학관이었다. 로비 의자에 정지용 시인의 흉상이 있어 서 나도 그 옆에 앉아 사진을 쵤영하였다. 선생의 모든 자료가 영상화되어 있어 스위치만 누르면 생생하게 떠올라 보기에 편리했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4대독자로 태어나 금년이 탄생 108년이 된다. 12살에 장가를 들고 보통학교를 나오자 고향을 떠나 서울 휘문고를 거쳐 일본 교토 도오시샤 (同志社)대학 영문과를 나왔다. 그 뒤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보시절부터 문학활동을 하던 그는 대학시절과 교직생활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쓰며 향토색 짙은 시어(詩語)의 구사로 현대시의 시어 생산 공장이었던 듯싶다. 요즘은 거의 잊혀져가는 토속어와 순수한 우리말로 고향에 대한 시를 많이 쓰고, 산문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시를 146편 정도 남겼다고 한다.
그는 현대시의 원조로서 천재적인 시어구사에 능했다. 그는 지성적인 감정의 절제로 한국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시인이었다.
해방 후 이화여대 교수를 지냈고, 경향신문 주간을 역임하면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6·25때 행방불명이 되어 정부에서는 월북 작가로 분류 하였다. 그러다 1988년 풀린 뒤 시비가 세워지고, 생가도 복원됐다. 정지용 시인은 어디서 어떻게 몇 살에 돌아가셨는지 모르고 행방불명으로 알려졌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전형적인 시골의 초가집이엇다. 옆으로 실개천이 흘렀고, 물레방아간도 남아있었다. 사립문도 옛날 그대로였다. 지금은 집 옆 실개천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지용 시인이 어릴 때는 실개천에서 물고기도 잡고 미역도 감으며 뛰어놀던 물놀이터였을 성싶었다. 정지용 시인의 천재적인 시 '향수'를 살펴보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위의 시에는 순수한 우리말 시어가 석류알처럼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게 박혀져 있다. '지줄대는', '얼룩배기', '해설피', '잊힐리야', '질화로', '엷은 졸음', '짚 베개' 등 참으로 귀한 시어들이다. 헌데 '뷔인'이란 단어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뷔인'이 '빈'이 아닐까? 100여 년 전에 이런 귀하고 달콤한 시어로 시를 지으신 정지용 시인이 무척 존경스럽다.
이번 행촌수필문학회 문학기행으로 정지용 시인의 문학관과 생가에 다녀온 것은 나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큰 수확이요 배움이었다.
(20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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