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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배가 고프면/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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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0회 작성일 10-12-2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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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배가 고프면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고려 말에 왜구가 침입하여 노략질을 했다. 바닷가는 물론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고 다녔다. 양식을 빼앗아 가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마구 죽이고, 여자를 겁탈하는 등, 행패가 심했다. 언제 어디에서 왜구가 나타날 줄 모르니 나날이 불안했다. 이들은 대마도를 근거지로 하여 우리나라 해안에 출몰했었다. 지난 8월에 그런 대마도를 다녀왔다. 아리아케산을 등산하고 일본 섬사람들의 생활을 살피는데 목적이 있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를 2시간쯤 가니 대마도가 나왔다. 길게 뻗은 섬이 모두 산뿐이었다. 이즈하라항은 꼭 울릉도 도동항과 같은 느낌이었다. 쉴 사이도 없이 조선통신사 기념비를 거쳐 아리아케산에 올랐다. 여름이지만 나무가 울창하여 더운 줄 몰랐다. 나무들은 목재로 쓸 수 있는 편백나무가 많았다. 사이사이에 다른 나무도 섞여있었지만 대부분 쓸모가 있는 나무였다. 1시간 반도 못 걸려 정상에 올랐다. 전망이 좋아 대마도가 모두 보이는 것 같았다. 거의가 산이고 골짜기에도 논밭은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차를 타고 유명한 곳을 구경하였다. 산비탈로 난 길이 아주 좁았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날 정도이고 다른 차와 비키는 곳이 따로 있었다. 쯔쯔자키전망대에서 대마도 번창 기원비도 보고,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계곡에서는 맑은 물에 발을 담기도 했었다. 코모다하마 신전을 찾아 가며 보니 바닷가 계곡에 논이 몇 천 평 있었다. 대마도는 여기에만 논이 있다고 안내원이 귀띔해 주었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시대에 논밭이 적으니 먹을거리가 나올 데가 없었다. 속담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사람 없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남의 것이라도 빼앗아 와야 했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나라의 들녘에서 나는 풍족한 곡식을 넘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배를 타고 여러 곳에 침입하여 식량을 빼앗아 갔다. 몇몇이 오면 힘이 약해서 모두 잡혀 죽을 수 있으니까 떼를 지어 다녔다. 수천수만 명씩 모여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가 노략질을 했다. 그게 왜구였다. 고려 말에 우왕 때만해도 왜구가 14년간 378회의 노략질을 했다 하니 그 폐해를 알 만하다. 1380년에는 500척의 왜적선단이 금강하구의 진포에 침입하여 밧줄로 배를 묶어 놓고 지키며 연안에 올라와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었다. 이에 최무선 장군이 이끄는 배 100여 척이 전투에 참여하여 손수 만든 화포로 왜선을 불사르고 크게 승리했다. 육지로 올라온 왜구의 주력부대는 각지를 돌며 온갖 나쁜 짓을 다했다. 마을을 뒤져 곡식을 빼앗고 집에 불을 질렀으며 부녀자를 겁탈하고 저항하는 사람은 마구 죽이기도 했다. 소와 돼지, 닭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다녔다. 배를 불태운 앙갚음을 한 것이다. 그러다 퇴각하던 왜구들이 남원 운봉의 황산에 이르렀을 때 이성계 장군에게 전멸 당했다. 세종대왕 때는 이종무 장군이 본거지 대만을 정벌하여 여러 마을을 불살라 버려 왜구의 횡포가 끝을 맺었다. 뒤에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고 조공을 받기로 했으며 살길을 열어주기 위해 삼포를 개항하여 평화로운 관계로 전환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는 부족 사이의 분쟁으로 전국에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니 소수 부족으로 나뉘어 다투고 있다. 환경도 좋지 않으니까 먹고 살 길이 없다. 그래서 해적으로 변하여 지나는 배를 납치하고 협상하여 돈을 뜯어낸다. 살아가기 위한 방책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살길이라 여기고 있다. 굶어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식구들이라도 살리려고 해적질을 한다. 우리도 해방 무렵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참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살았으니 도둑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곡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구하기 힘들었고 돈도 벌 곳이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산이나 들로 나가 풋나물이나 뜯어 먹고 허기를 면했다. 이럴 때는 조금만 꼬드겨도 도둑질을 하러 나섰을 것이다. 요즘같이 농업이 발달했더라면 왜구는 없었을 게다. 산비탈에 밭을 일구고 비닐하우스를 지어 사시사철 농사를 지었으면 먹을 것 걱정은 없었을 게 아닌가. 지하수를 올려 물을 주면 흉년 풍년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또 무역을 했다면 다른 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올 수 있어 조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시설과 기계의 힘으로 열악한 환경도 극복하며 살지 않는가. 요즘 선진국 사람들은 넉넉한 음식으로 비만자가 많다. 오히려 살 빼는데 애를 먹고 있다. 배고픈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도 북한과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들도 왜구처럼 될지도 모른다. 우리도 배고프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아끼고 남겨서 그들을 도왔으면 좋겠다. ( 2010. 12.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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