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작품론/김학
페이지 정보

본문
<김재희 작품론>
수필의 길 찾기 그리고 8년
김 학(수필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1. 김재희 수필가의 길 찾기
수필가 김재희! 그녀는 문향 전북이 낳았지만 수필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보배 수필가다. 그녀가 첫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머리말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이제야 갈 길을 찾은 듯합니다. 비록 글 쓰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기는 할지라도 글을 대하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니 이만하면 행복하다는 말을 해도 될 듯합니다. 더 이상 삶에 대해 과분한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글 한 줄에 매달려 고민도 하고 글에 관한 일로 인해서 배움의 길을 찾아 나서고, 그러면서 여생을 보내려 합니다."
수필가 김재희! 그녀는 문학의 숲 속에서 오랜 방황 끝에 수필의 길을 찾았고, 마침내 여생을 수필과 함께 살아가야겠다고 작심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 4강에 오른 한일월드컵축구가 열렸던 2002년, 그녀는 오랜 습작 끝에《수필과 비평》에서 <꽃 보살>이란 작품으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얼굴을 내밀었다. 소녀시절부터 문학에 취해 살았던 김재희는 등단 이후에도 쉼 없이 치열한 창작활동을 하더니 4년 뒤인 2006년에는 전북일보 신춘문예에서 <장승>이란 작품으로 당당히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내공이 쌓인 김재희 수필가의 문재(文才)는 해가 갈수록 빛을 발휘하여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김재희 수필가는 겉보기와는 달리 용기도 있고 집념도 강하다. 그녀는 이 어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가서 국문학을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수필가로서 1인3역을 하면서 살기에도 벅찰 텐데 또 만학도의 고단한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왕 수필에 여생을 맡기기로 한 이상 수필에 대하여 더 깊고 넓게 궁구(窮究)하고 싶어서였으리라.
나는 김재희 첫 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의 발문에서 <불심(佛心)으로 피워낸 수필의 꽃>이라고 제목을 붙인 적이 있다. 그녀의 등단작품은 사월 초파일날 절에서 사용할 꽃꽂이를 하면서 빚어진 에피소드를 화소로 쓴 <꽃 보살>이듯 그녀는 불교에서 자주 글감을 찾아 수필로 빚는다. 그녀의 글에서는 언제나 은은한 향내가 나고, 절간의 적요를 깨는 목탁소리가 난다. 그녀가 빚은 수필은 맑고 깨끗하다. 청아한 울림이 읽는 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귀를 맑게 해 준다.
김재희 수필가는 타고난 문학소녀였다. 어려서부터 혼자 책을 뒤적거리기를 좋아했고, 혼자서 되작되작 놀기를 즐겼다. 그래서 그녀는 유관순 같은 행동하는 여성이 아니라 사임당 같은 생각하는 여성으로 자란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원고지 앞에 앉아 글을 쓰기를 좋아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앞으로도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http://evsmoke.com. ne.kr/kjh.htm
이 홈페이지에는 수필가 김재희의 마음이 수필과 시로 잘 그려져 있다. 이곳에 가면 김재희 수필가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김재희 수필가는 다재다능하다. 문학 외에도 꽃꽂이라든가, 사진 찍기, 드라이브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즐긴다. 그런 활동을 하면서 수필소재를 찾는다.
김재희 수필가는 인간 다람쥐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별별 귀한 자료들을 다 모아두었다. 그 자체가 모두 시요, 수필이며, 음악이요, 미술이다. 그녀는 비밀 곳간에 많은 자료를 모아 두고 있다. 다람쥐가 자기 토굴 속에 겨우살이용 도토리와 알밤 등을 잔뜩 모아두고 긴 삼동(三冬)을 나듯이 말이다.
2006년은 김재희 수필가에게 여러 가지 기쁨을 안겨 준 한 해였다. 가정적으로는 며느리이던 김재희가 시어머니로 승격한 것이 2006년 5월이고, 문학적으로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서 당선의 기쁨을 누린 것이 2006년 1월1일이며, 첫수필집 《그 장승이 갖고 싶다》를 출간한 것도 2006년 12월이었다. 2006년은 수필가 김재희가 기쁨의 3관왕이 된 해였던 것이다. 이 역시 부처님의 가피(加被)가 아닌가 싶다.
김재희 수필가는 불심(佛心)으로 다져진 마음바탕에 수필이란 아름다운 꽃을 피운 작가다. 그녀가 다루는 제재는 대개가 불심과 맛 닿아 있다. 언제나 은은한 향내를 내뿜어 이 세상이 온통 정밀(靜謐)한 법당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인이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은은한 달빛에 취하듯 독자로 하여금 분위기에 젖어들게 만든다.
김재희 수필가의 첫 인상은 묵이나 두부처럼 말랑말랑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다. 외모를 보면 연약하여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강인하다.
혼자서 2박 3일 동안 지리산을 종주했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강건한 남성도 쉽게 시도하지 못할 지리산 종주를 김재희 수필가 그녀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의 머리는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던 게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니 다리 못지않게 머리도 고생을 했으리라.
2. 김재희 수필의 맛보기
김재희 수필가의 눈은 전통적인 것, 토속적인 것, 불교적인 것을 만나면 스파크가 일어난다. 기어코 움켜잡아 한 편의 수필로 빚는다. <장승>이란 작품 역시 그렇다. 이 작품은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수필이니 작가에게 영광과 기쁨 그리고 작가의 출세작인 셈이다.
요즘엔 어디서나 손쉽게 장승과 만날 수 있다. 또 장승의 모습은 그 장승들이 어디에 있건 엇비슷하다. 그러니 장승을 보고 아무리 묘사를 잘 해도 크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김재희는 작가인 자신의 눈으로만 장승을 보지 않고 입장을 바꾸어서 장승이 자기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참신한 시선이고 호기심을 끄는 착상이 아닐 수 없다. 화자 등 구경꾼들은 장승이 되고 장승은 구경꾼으로 역할을 바꾼 것이다. 바로 이런 착상이 있었기에 이 수필이 신춘문예의 당선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필을 일컬어 역지사지의 문학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것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 장승만큼이나 다양하다. 문득, 어쩌면 장승 쪽에서도 드나드는 사람들의 갖가지 표정을 감상하고 잇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장승의 표정보다는 저들이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저들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어떤 걸 느낄까. 환희와 기쁨에 들뜬 표정을 보기도 할 것이고, 찌들고 어두운 표정을 보기도 할 것이다. 더러는 아집과 탐욕으로 얼룩진 표정에 경악을 할지도 모른다.
<장승> 중에서
김재희 수필가는 불심이 깊은 수필가이지만 법명도 없고 신도증도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자신은 '꽃 보살'이라고 불리는 미미한 신도일 뿐이라고 자신을 한껏 낮춘다. 그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겸손의 문학인 수필이 온몸에 꽉 들어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금실 좋은 부부 같기도 하고 다정한 오누이 같기도 한 모습이다. 정 깊은 연인이거나 절친한 친구일 수도 있으리라. 나는 지금껏 부처님들이 그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근엄하고 성스럽기보다는 다정다감함을 느꼈다. 한 눈에 잡히지 않을 큰 키에 감히 옆에 다가설 엄두가 나지 않을 거인. 그럼에도 누가 어떤 투정을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순박한 정이 철철 넘쳤다.
<작은 우주, 운주사> 중에서
김재희 수필가가 운주사를 찾아가 와불(臥佛)을 보고 묘사한 대목이다. 화자는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만 없었으면 어릴 때 아빠 엄마의 사이에 끼어들듯 와불 사이로 들어가 한 숨 푹 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럴 듯한 상상력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千塔)이 많이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듬성듬성 남아 있어서 아쉽다. 석공은 불상을 조각하는 게 아니라 바위 속에 숨어있는 불상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말의 의미를 떠올리며 우리는 불상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재희 수필가의 눈길은 절의 벽화조차 허투루 보지 않는다. 깐깐하고 꼼꼼하다. 《빈두설경(賓頭說經)》에 나오는 <우물 안의 나그네> 이야기를 화소로 한 작품이다. 어떤 사람이 미쳐 날뛰는 코끼리를 피해 도망치다가 등나무 줄기를 붙들고 우물 속으로 피신을 했다. 그런데 우물 속에는 독사가 있고 쥐는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얼굴 위의 벌집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벽화에서는 쥐가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지 않고 벌집이 달린 줄기를 갉아먹는 것으로 그려져 있었단다. 화자는 잘못 그려진 벽화에 의문을 품고 스님에게 물어 보려다 스스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화가는 벽화 내용을 잘 알지만 중생의 생명줄을 갉아먹게 하지 않고 중생을 유혹하는 벌집 줄기를 잘라먹게 하는 게 중생을 구하는 일이라 판단했으리라 짐작하며 생각을 바꾼다. 그럴 듯한 창조적 상상력의 발로다. 그렇게 반전시키니 자연스럽게 의미화가 이루어져 문학성을 확보하게 된다. 매사를 허투루 보지 않는 수필가로서의 관찰력이 찾아낸 작품이라고 하겠다.
종족을 번식시켜야 하는 본능,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경제적 자립, 남보다 잘 나가고 싶은 욕망 등의 울타리 안에 갇혀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 또한 어느 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잇는 삶이다. 우리가 주꾸미의 앞일을 알고 있듯 우리 또한 신이 알고 있는 주어진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이 어느 쪽인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맞이하는 순간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생명이다.
<주꾸미의 반란> 중에서
부안 격포로 주꾸미를 맛보러 갔다가 찾아낸 한 편의 수필이다. 수필가 김재희의 오감(五感)은 모두 수필을 위하여 열려 있다. 오감이란 안테나를 통해 잡히는 글감들을 놓치지 않고 수필로 형상화 한다. 칭찬 받아 마땅한 순발력이다.
3. 김재희 수필가의 미래상 그려보기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다. 오감으로 수필소재를 찾는 김재희 수필가는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소재에서 벗어나 소재 찾기의 영역을 지금보다 더 넓혔으면 좋겠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 독자들의 편식(偏食)을 막아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Leggett는 무엇을 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직관과 사색으로 본 것에서 어떤 의미(意味)를 발견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깊이 음미해 볼 이야기려니 싶다.
김재희 수필가는 이제 중견 수필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의 수필 <마지막 스승의 날>이 중학교 생활국어 교과서에 게재될 정도로 인정받는 수필가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소녀시절의 수줍음에서 벗어나 더 폭넓게 활동범위를 넓혀 나갔으면 좋겠다. 안방에서 사회로 걸어 나오고, 전북에서 한국으로 활동영역을 넓혀야겠다. 그래야 더 많은 독자, 더 다양한 독자와 만날 수 있을 게 아닌가?
김재희 수필가는 병아리가 달걀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듯이 과거와 현재의 품을 벗어나야 후세까지 오래오래 기억되는 수필가로 남을 것이다. 그러면 김재희 수필가의 미래가 더 찬란해질 것이다.
- 이전글아기 손바닥 같은 단풍에 취해/김길남 10.11.23
- 다음글수필공부의 즐거움/황강연 10.11.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