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관광열차에서/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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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관광열차에서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전주역에서 설악산 관광열차 운행 소식을 듣고 기차표 두 장을 예매하였다. 아내는 평소 안하던 짓을 한다며 좋아하였고, 나 또한 기대가 컸다. 밤 9시 40분 출발예정이라 모든 준비를 해가지고 전주역으로 나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열차안 분위기는 가관이었다. 우리 부부 좌석 주변은 계모임에서 온 아주머니들이 술판을 벌려서 밤새워 시끄러웠다.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밤새 열차 속에서 잠을 청 하였지만 덜컹거리는 기차바퀴처럼 내 마음이 요상스러워 눈 한 번 제대로 부치지 못하였다. 밤을 새워 달려 새벽녘에 지급된 아침도시락을 먹고 강릉역에 도착하니 설악산 가는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달렸는데 설악산 입구부터 차가 밀려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설악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인솔자도 없고 '등산한 후에 C주차장으로 오라' 는 운전기사의 간단한 멘트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울산바위를 향하여 군중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보도와는 달리 단풍은 아직 일러서 설악산의 나무는 청록색 그대로였다. 인파에 시달리며 목적지에 도착하여 장엄한 울산바위를 보고 되돌아 왔다. 하산후 김학 교수 내외와 조우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양미리 안주로 조껍데기 막걸리 한 잔씩을 마시니 피로가 풀렸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가족과 사진 몇장을 찍고 주차장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주문진으로 향하였다. 해산물이 풍부한 주문진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다를 보니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다. 물회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강릉역에서 전주행 관광열차를 타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된다. 장거리 기차여행은 한마디로 고역이었다. 최소한의 서비스나 관광분위기는 아니었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컸다. 그래도 젊은 시절 강릉비행장에서 공군으로 군대생활을 하던 추억이 떠올라 열차 속에서 처다 보았다. 그러나 많이 변하여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천고마비의 계절이 단풍과 함께 왔다고 즐길 기분이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었다.
금년은 이상기후 탓으로 농작물도 가을의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아! 가을이 오는구나, 기승을 부리던 나무들도 얇은 빛을 가리지 못하여 싱싱하던 푸새들도 무서리에 한껏 공손하게 고개들을 푹 숙였다. 꺼져 가는 촛불이 마지막에 더 빛나듯 이 산 저 산이 다홍치마로 눈부시게 단장할 것이다. 모든 초록 잎사귀들은 생을 마감하고 들바람에 씻겨 그 잎새를 떨굴 것이다.
먹장구름도 멀리 가고 하늘은 파란 모습 그대로 높음을 뽐낼 것이다. 아침볕은 먼 데 손님처럼 반갑고, 아침보다 낮, 낮보다 저녁, 저녁보다 밤이 그립고 다정하다. 아아! 가을이 왔네, 가을이 왔네. 결실의 계절 국화 꽃은 형형색색 흐드러져 풍요를 노래 한다. 풍년가를 노래하던 농부들의 노랫 소리는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농부들은 걱정이 앞선다.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다 그힘에 부쳐 각국의 농산물이 싼값에 들어와 먹을거리가 남아 돈다. 힘들여 지은 농산물은 처분이 곤란이라 수확의 즐거움도 옛말이다. 영농자금 상환하고 나면 남은 빚걱정에 희망이 없다. 젊은이는 농촌을 떠나고 늙은 부모가 고향을 지키니 농부의 흥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열차관광이라도 하는 나의 처지가 걱정이 없이 호사를 누리는 편이다. 이 가을,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는 농촌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마치 관광열차의 분위기만큼이나 무겁다. 밤 11시 반에 전주 역에 도착하여 택시로 귀가하니 내 집처럼 편한 곳이 없다. 가을 관광열차를 탄 소감은 돌봐주는 이 없는 농촌처럼 무겁고 한심할 뿐이었다. 돌아온 날이 마침 토요일 밤이라 일요일에 못잔 잠을 보충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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