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이애란
페이지 정보

본문
나의 소망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애란
사람들은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산다. 크면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4살짜리 꼬마 아들의 소망부터 명문대학에 가고 싶고 좋은 직장을 얻고 싶다는 둥 많은 소망 을 갖고 산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포부 같은 큰 소망이 아닐지라도 예쁜 글씨를 써보고 싶다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는 둥 수많은 사소한 바람들이 쌓여서 각자의 내일을 만든다. 그러나 존귀하게 죽고 싶다는 소망밖에 없는 시간이 내게 온다면 난 어떤 생각이 들까. 아무리 공감해 보려 해도 가슴만 아플 뿐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버지는 무척 공부하기를 좋아하셨다. 변변한 영어교재 하나 없던 시절에 독학으로 영어공부를 해서 동시통역으로 설교를 하셨을 정도다. 지금은 유학이 필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지만 당시 유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미국유학을 다녀오실 정도로 학구적이셨다. 영어로 된 성경책을 수십 번이나 읽으셨다니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한글 성경조차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게다가 식구들 중 맨 처음 스마트폰을 쓰실 정도로 기계에도 관심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책을 읽으시거나 집에 있는 기계들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익숙하다. 주말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는 걸 좋아하셔서 우리 가족 모두를 조그만 자가용차에 태우고 가까운 계곡으로 나갔다. 더울 때는 계곡에서 발을 담그며 놀고, 좀 날씨가 싸늘해지면 단풍을 구경하며 산책하던 모습들이 내 어린 날의 추억 속에 예쁘게 새겨져 있다.
그런 내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다. 파킨슨 병. 아버지가 걸리기 전에는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율운동을 조절하는 신경이 퇴화되어 운동장애가 일어나는 병이라 한다. 어떤 병이라 해서 고통스럽지 않을까만 자신의 몸이 점점 마비되어 가는 모습을 온전한 정신으로 바라봐야하는 고통은 잔혹하다.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야하는 무서움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나는 치매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을 본 적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치매에 걸리는 게 두려웠다. 자식도 몰라보고 자기 자신도 몰라보며 삶을 이어가는 고통이 무서웠다. 그런데 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치매에 걸리셨다면 그래도 본인은 힘들지 않겠다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병에 걸린 첫 몇 해 동안 아버지의 병명을 말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평생 술과 담배도 좋아하지 않으셨고, 공부와 가정과 교회봉사밖에 하지 않은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 처참한 것 같았다. 일생동안 반듯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대한 보살핌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신에 대한 원망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고통도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려 한다. 사는 동안 고통은 없고 행복하기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 겸손과 인내를 배운다. 곱게 살다 아프지 않고 떠나기를 바라는 게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혹 그렇지 않더라도 절망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생동안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결코 배우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걸 지켜보면서 친구들의 부모님이 아프실 때 나도 같이 가슴 아플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이별해야할 시간이 멀지않다는 걸 느끼면서 친구들이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 나도 같이 울어줄 수 있게 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 그래서 이별이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생명을 가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존귀함을 잃지 않는 이별을 소망하고 각자의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게 살아있는 모두의 의무일 것이다. 아직 아버지와의 시간이 남아있어서 감사하다. 사랑과 정성으로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소망은 죽기 전에 예쁜 세상에 잘 머물다 간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나로 인해 이 세상에 머물게 된 내 아이들에게 내 자녀로 태어나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도 꼭 남기고 싶다.
(2010.11.2.)
- 이전글가장 행복한 나라/이기택 10.11.03
- 다음글가을 관광열차에서/김세명 10.11.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