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선물/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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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선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소영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서 1박 2일간의 짧은 서울 나들이를 했다. 수시 1차 논술시험 때문이었지만 그 시험은 부담 없이 경험을 쌓는 일이었다. 정작 가족과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혼자서 서울에 간다.’는 사실이었다. 이왕이면 KTX도 타고 서울에서 지하철도 타보고 싶다며 같이 가자는 친구들의 요청도 거절했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가는 거라서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남편은 퇴근시간을 앞당겨 익산에서 KTX를 탈 수 있도록 아이를 익산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2학기 첫 중간고사를 대비한 학원수업 때문에 나는 아이가 출발한 뒤에야 남편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데 남편은 아들 녀석이 어느새 자라서 우리의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구나 싶어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교과서 본문을 분석해주고 문법내용을 설명하며 틀린 문제를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내내 내 머릿속은 온통 큰 아이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3시간쯤 지났을까, 계획대로 용산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의 큰 시숙 댁에 잘 들어갔으리라 짐작하고 다시 남편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웬걸, 아이는 여전히 용산역을 헤매고 있다고 했다. 시숙은 영등포역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는데 아이는 역을 빠져나가 영등포로 이어지는 지하철 탑승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아이는 혼자서 끙끙대며 늦은 밤에 지하철 역사를 돌고 있었다. 한편으론 우습고 한심한 일이지만 이번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꾸중하듯 코치하려는 남편에게 잠자코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한참 뒤, 10시가 넘은 시각에 무사히 큰 집에 들어갔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는 2시간 남짓 용산역에서 영등포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보냈으니 이제 지하철 타는 법과 용산역 구조는 훤히 꿰뚫은 셈이다.
금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슈퍼스타 K2는 아이들이 꼭 챙겨보는 화제의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본선에 오른 11명의 우승 후보자들이 주어진 미션에 따라 노래실력을 겨뤄 5명이 탈락하고 남은 6명 중에서 이번 주에 4명이 선택될 예정이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내가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딸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TV앞으로 나와 남편을 초대한다. 온 가족이 즐겨보는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큰 아이도 금요일 저녁만큼은 고3임을 잊고 느긋하게 즐기도록 허락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각자가 응원하는 후보가 달라서 서로 경쟁하듯 점수를 예측하고 탈락하지 않도록 휴대폰으로 대국민 투표에 한 표씩을 보태곤 한다.
금요일 밤이어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다음날 아침 8시 20분까지 논술 시험장에 입실해야하는데 1시가 넘어서야 끝나는 슈퍼스타 K2를 서울에서도 보고 있을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일찍 자야한다고 보낸 문자 메시지에 아이가 응답을 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서로 바라보고 웃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 아이가 잠든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큰댁의 모든 식구들도 그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긴장하고 피곤했을까. 큰아이의 잠든 모습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다음날 논술 시험을 마치고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수업을 받으러 학원에 온 아들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였다. 같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자 아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슬그머니 한마디를 했다. 엄마생각이 많이 났어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대학시절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보다는 먼저 아르바이트를 챙겨야하는 절박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서울은 내게 무척이나 시리고 고달픈 기억의 땅이다. 그 서울에 내 아이가 첫 발을 디뎠다. 대학에 가거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해 주었다. 엄마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듣더니 중학생인 막내가 슬그머니 다가와 손을 잡았다. 큰아이는 어른처럼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큰 아이의 좌충우돌 서울 나들이 덕에 나는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에너지를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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