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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노블웨딩/송입섭 처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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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5회 작성일 10-10-0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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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노블웨딩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 창작반 송 일 섭 신붓감이 없어 장가를 못가는 나이 많은 총각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일을 해보려고 했다. 또 학부모의 권고가 많아 혼인중매업을 창업하기로 했다. 창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에 실패할 것도 참작하여 베트남으로 혼인한 K와 동업을 하였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월세가 적은 상가를 고르기로 하고 광고지를 보면서 여러 곳을 물색한 끝에 옛 도교육청 바로 앞 건물이 임대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건물주에게 전화를 해보니 보증금 3백만 원에 월세 2십만 원이라고 했다. 팔달로 대로변 20평 사무실이 2십만 원이라니 비교적 저렴한 월세인 것 같아 계약했다. 2십 평 사무실에 책상과 소파 등은 중고가구점에서 구입하여 비용을 줄였다. 벽지가 낡아 새로 벽지를 바르고 8십여만 원의 비용을 들여 '미래노블웨딩'이란 어엿한 간판을 달았다. 집기류를 구입하는데 5백만 원 정도가 들었다. 동업하는 K가 3백만 원을 내고, 나머지는 내가 지출하였다. 국제 혼인중매는 생소한 사업이고 베트남, 필리핀 등 혼인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학부형 B의 말을 듣고 가맹비 2백만 원을 주기로 하고 광주에 본사가 있는 N웨딩과 지사 계약을 하였다. 국내혼인사업은 전주시청에, 국제 혼인사업은 도청에 각각 보증보험을 든 뒤 등록하였다. 법적인 문제에 조금이라도 하자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세무서에 신고하고 2008년 9월 드디어 오픈하였다. 개업식을 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아는 분도 적고 주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개업식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번영로에 1년 동안 광고를 하였다. 국내혼인 회원은 대부분 아는 분들이 자녀를 중매해 달라고 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회원이 적기 때문에 내 회원끼리는 전혀 맞선이 이루어질 수 없어 주위의 혼인 중매업자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 인사하고 회원 교류를 하자고 하였는데, 대부분 서로가 회원 교류를 희망하였으나 큰 업체는 교류하지 않겠다며 차 대접도 하지 않았다. 사업이란 이렇게 냉정해야 하는가 보다며 생각해야 했다. 국내혼인중매는 대부분 여자들이었고, 국제 혼인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사무실을 오픈하였으나 오래 가지 않아 같이 동업하던 친구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핸드폰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어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꼴이 되었다. 2008년 10월 어느 날, 번영로 광고를 보고 전화가 걸려왔다. 베트남으로 혼인을 해야겠는데 얼마를 받겠느냐는 것이었다. 중매는 처음이고 우선 이익금이 생겨야겠기에 100만원만 이익금을 붙여서 말하였다. N웨딩 지사만 전주시에 4군데나 있기 때문에 여러 업체를 전화하여 알아 봤다고도 하였다. 신랑과 밀고 당기기를 며칠, 전화를 하다가 드디어 첫 계약을 하였다. 광주 본사에 모든 것을 보고하고 신랑을 의뢰하였는데 본사 사장은 적게 받았다고 핀잔을 주었고, 다른 지사들도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신랑은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재혼남이었는데, 베트남에 5박6일 동안 체류하면서 선을 보고 혼인식과 신혼여행까지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마치고 귀국하였다. 신부는 15년 연하인 베트남 깡촌에 사는 어여쁜 아가씨였다. 신부는 몹시 구차하게 살아왔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예의 바른 처녀였다. 어느 날 홈플러스로 신부 옷을 사주러 갔는데 시어머니 옷을 사기 전에는 자기 옷을 사지 않겠다고 극구 만류하여 신랑이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혼인 중매는 하루 종일 전화로 하는 사업이었다. 주말이 되면 선보는 일이 많아졌지만 옛날처럼 중매쟁이가 나가지 않고 처녀와 총각 당사자들이 서로 전화를 하여 만나곤 하였다. 전주에도 자녀들이 서울이나 경기도에 사는 분이 많기 때문에 서울이나 경기도까지 전화를 하여 선을 보도록 하였다. 회비는 2십만 원에서 5만 원까지 받지만 대부분 회비를 받지 못했다. 회원 교류 중, 아는 분들이 거금을 주고 다른 업소에 가입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하였다. 아무리 열심히 선을 보였지만 혼인까지 골인하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 여자 쪽에서 반대하였지만 여자 쪽에서 좋다고 하면 또 남자 쪽에서 싫다고 하였다. 1년 동안 40여 차례 선을 보고도 성사가 이루어 지지 않는 일은 보통이었다. 혼인에 골인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집세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유명업체일수록 혼인 성사보다는 수익 창출을 위한 회비 받기에 혈안이 되었다. 한 번은 노총각 선생과 노처녀 선생님이 선을 보았는데 서로 좋다고 하면서도 밀고 당기고 힘겨루기를 몇 달간 하였다. 여 선생님은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미인이었는데 학교에서도 인기가 높다는 말을 같이 근무하는 직원한테서 들었다. 사귀는 도중에도 말이 많고 깨지면 나와 함께 일하는 노련한 중매 아줌마가 일으키곤 하였다. 총각 집에서도 혼인 성사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한다고 하였다. 서로 상견례까지 마치고 혼인날짜까지 받았는데도 신혼집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혼인성사비는 전주시내에서 최하가 2백만 원이기 때문에 혼인식 하기 전에 입금하라고 졸랐다. 총각 부모님이 식사라도 하면서 성사비를 주겠다고 하기에 번잡하고 그러니 통장으로 입금하도록 하였다. 사무실 오픈한지 1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혼인을 성사시킨 것이다. 나는 영리 목적보다는 혼기를 놓진 총각들이 좋은 신붓감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싶어 노력할 참이다. 아직 힘이 부족하여 어려움이 많지만 노력해서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20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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