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처럼 착한 여인/김상권
페이지 정보

본문
사마리아인처럼 착한 여인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노래연습을 마치고 현관으로 내려오니 비가 좍좍 쏟아지고 있었다. 난감했다. 내겐 우산이 없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휴게실로 갔다. 혹시 누군가 놓고 간 우산이 없나 해서다.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우산은 없었다. 혹시나 하고 309호실로 갔다. 강의실 구석과 책상 속을 살펴봤지만 우산은 없었다. 현관으로 내려와 서성거리다 다시 휴게실과 그 옆의 화장실 그리고 2, 3, 4층 코너와 309호실을 살펴봤지만 놓고 간 우산은 없었다. 어쩔 도리 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수필의 날’ 행사 때 장기자랑에 참가하려고 우리 행촌수필문학회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장기자랑 팀의 한 일원으로서 노래 연습을 하러 평생교육원에 왔던 것이다. 어제는 13명이 연습을 했는데 오늘은 7명이 참석했다.뱃노래연습이 끝나고 다들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현관으로 나왔는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관의 긴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 한 문우도 가버렸다. 나 혼자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좀 가늘어지자 나는 택시를 잡을 요량으로 정문 안내실로 뛰어갔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한 문우가 승용차문을 열며 방향이 아디냐고 물었다. 나는 효자동이라 했더니 방향이 다르다며 그냥 가 버렸다.
안내실 안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산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안내실에 근무하면서 차량을 통제하고 주차료를 받는 분이다.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그녀를 만나는데 나는 그때마다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내가 먼저 인사하기도 하고 그녀가 먼저 인사하기도 했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칭찬거리를 소개할 때 그녀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나는 의례적인 인사로 잠심식사는 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평상시의 점심은 집에서 싸가지고 온 것을 먹는데 오늘은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택시를 잡으려고 정문 밖 도로에 나가 서 있지 않은가. 여기는 택시가 자주 다니지 않아 차를 잡기가 힘들다며 우산을 받은 채 계속 서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만류했지만 그대로 서 있었다. 한참 뒤 운 좋게도 택시가 왔다. 그녀가 손을 들자 택시가 멈추고 나는 도로로 나가 택시 뒷문을 열었다. 그녀는 내가 비에 맞지 않도록 문 가까이까지 와서 우산을 받쳐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비를 맞지 않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가 몹시 고마웠다.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인사를 했을 뿐인데…….
택시를 타고 오는 중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배려가 없었다면 안내실 처마 밑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을 것이다. 내가 우산이 없어 쩔쩔매고 있는데도 어느 누구 한 사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어 서운했는데 그녀는 달랐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느꼈다. 비로 인해 사람의 속성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것이다. 우산이 없어 쩔쩔매는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어서 괜히 속상했다.
비 내리는 날 오후, 나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을 배려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던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데 나는 남에게 친절을 베푼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비 올 것에 대비해서 우산을 챙겼더라면 아무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서운함이란 상대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며 착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의 내 경우가 그렇다. 내 탓인데도 네 탓이라고 하는 꼴이 된 셈이다.
한 사람이 친절을 베풀면 그 친절을 받은 사람도 또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 친절릴레이가 이어질 것이다. 나도 앞으로 오늘 내가 받은 친절을 이어가리라.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택시를 잡아준 그 여인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닐는지…….
(2010. 7. 17.)
*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해준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가서 돌보아 주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가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이전글시간은 아껴 써야/이의민 10.08.31
- 다음글컴퓨터를 모르면/정장영 10.08.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