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그때는 몰랐다/정장영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그때는 몰랐다/정장영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10-04-01 14:03

본문

그때는 몰랐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새 학년이 시작되고 새봄을 맞아 한 달쯤 지나면 학교마다 봄 소풍을 간다. 학교 위치에 따라 장소선택에 고민이 많다. 현장학습이라지만 순수 현장학습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견학할만한 환경이면 현장학습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소풍(逍風:picnic)이란 운동이나 자연관찰을 겸하여 야외 따위의 먼 길을 걷는 일이고, 소풍(消風)은 답답한 마음을 가볍게 하려고 잠깐 바람을 쐬는 일이다. 내 어릴 적(일제 때)에는 멀리 걷는다 해서 원족(遠足)이라 했지만, 잠깐이 아니고 종일행사이니 앞의 소풍이 맞는 것 같다. 하여튼 소풍은 노소 누구나 마음이 설레 이는 하루다. 아주 옛적 어느 봄날 오사카(大阪)에서 서둘러 설레는 기분을 안고(초등학교 5학년 때:AD1943) 도착한 곳이 나라(奈良)였다. 이곳은 일본의 아주 고도(古都)다. 이미 국사시간에 배운 나라시대의 수도다. 번잡했던 오사카와는 달리 분위기가 매우 판이(判異)했다. 처음 찾은 곳은 도다이사(東大寺). 모셔진 부처가 어린 내가 보기에는 무척 커 보였다. 일본에서 아주 자랑할 수 있는 큰부처라 했다. 당초 크기가 부처님 손바닥이 씨름을 할 정도로 넓었고 콧구멍이 우산을 받고 드나들 수 있었다하니 전체 크기는 각자가 상상하라는 설명이었다. 다음 찾은 곳이 호류사(法隆寺) 목조탑, 금당벽화(사불정토도:四佛淨土圖))였다. 이 벽 그림은 도래인(渡來人)이 그렸으며 동양고대 3대 미술품의 하나라고 자랑했었다. 지금껏 그때 이미지가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 뒤 불에 타 버렸다 한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으니 서운할 따름이다. 더욱 그때 그림을 그린 도래인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도래인이란 단순히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란 뜻이다. 담징은 뒤에 알았지만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로서 학문과 그림솜씨가 뛰어났다한다. 일본의 초청으로 AD 610년경에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 먹, 공예, 채색 등의 기술을 전하였다. 또 일본의 호류사에 머물면서 불법(佛法)과 학문을 가르쳤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라 고국을 떠나온 그의 마음은 매우 착잡하고 혼란스러웠는데, 고구려가 크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 감사와 기쁨으로 호류사의 금당에 벽화(사불정토도)를 그렸다. '금당벽화'로 더 잘 알려진 이 그림은 경주의 석굴암, 중국의 원강석불과 함께 동양의 3대 미술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48년에 불 타 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벽화는 그 후 다시 일본화가가 모사한 그림이란다. 일본에서는 담징(曇徵)을 종이와 먹의 시조로서 오늘날에도 존경하고 있다. 점심은 인근 와카구사산(若草山)에서 먹었다. 이 산은 나지막한 민둥산이었으나 온통 푸른 잔디와 풀로 덮여있어 어린이들이 놀기에 좋았다. 비둘기, 사슴들을 놓아 키우고 있어 사람들을 잘 따랐다. 점심을 먹는데 이들이 좀 귀찮게 했으나 먹이를 주며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전철을 타고 귀가길이 몹시 피곤하고 발길이 매우 무거웠다. 나는 도래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웠겠지만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중(승려: 화가)으로만 설명이 끝나 서운했다. 따라서 역사적 고도를 현장 답사한 기억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으니 원족(소풍)이라기보다 살아있는 현장학습이라 하겠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지만 도래인이라 해서 조선반도에서나 건너온 이름 있는 스님이 아닐까 의심했다. 당시 일제의 교육이 조선을 비하(卑下)하고 일본인들이 동양에서 제일 우수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술책임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선조들도 도래인이 많았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반도나 조선(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란 말을 쓰지도 않았다.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그들의 자존심에서였다. 옛날이었지만 일본에게 문화와 종교 등 문물을 전해준 담징과 더불어 우리 조상님들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2010. 3. 20.) *나라의 도다이사(東大寺) 일본 법상종의 대본산 대불(昆盧舍那佛) AD725. 높이.....15미터. 법당높이.....47미터. 동 ....5백톤. 도금용 금.....0.438톤. 수은.....2.5톤. 소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