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비를 맞고 있어요/송택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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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비를 맞고 있어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송택엽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시상식장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김연아 선수가 감격에 겨워 울고 있었다.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서 수정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면에는 태극기가 높이높이 올라가고 애국가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TV를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은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하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애국가를 따라 부르기도 하며 한 덩어리가 되어 감격하였다. 5천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민족이, 한국의 젊은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세계를 향해 마음껏 기개를 드높이고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던가!
문득 손기정 선수의 일화가 떠오른다. 64년 전 1936년 8월 10일, 독일의 베를린올림픽에서 조국 대한의 태극기가 아닌 일본의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던 손기정 선수의 안타깝고 분한 마음은 어떠했을까? 당시 그 기사를 게재한 동아일보는 너무도 억울해서 손 선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제작 배포해서 ‘일장기 멸실 사건’을 일으킨다. 그로 말미암아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을 당하게 되고 담당기자와 삽화가는 철장신세를 졌다. 그 사건은 우리 현대사에 하나의 암울한 족적으로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는 야만적인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경복궁을 비롯한 종묘사직의 파괴는 물론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역사의 말살시키려 했었다. 창씨개명과 함께 우리민족의 사상까지도 말살시키려고 태극기는 물론, 애국가와 무궁화까지 저주와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동아일보는 신문제호의 무궁화 그림을 바꾸어야 했고, 중앙고보의 교모도 개조케 했으며, 조선 보이스카웃은 그 항건(단복에 매는 스카프)에 태극과 무궁화 문양이 들어있다고 해서 보이스카웃을 해체하여 버렸다. 전국의 무궁화는 ‘눈애피병’을 옮기는 나무라고 해서 일본 관헌들을 총동원하여 전국 방방국곡에서 뽑아 불태워 버렸다.
2010년 3월 26일, 오늘이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 되는 날이란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함께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조국의 태극기와 그 태극기 아래쪽에 새겨진 무궁화도 보인다. 금년에는 안 의사의 출생지인 북한과도 남북합의가 이루어져서 의사께서 순국하신 중국 여순감옥에서 남북공동 100주년 추모행사가 열리게 되었다는 소식이어서 반갑다. 다만 지금까지도 안 의사의 유해는 발견되지 못하고 지금 효창공원에는 가묘만 덩그렇게 서 있다니 어찌 그게 우리의 도리가 되겠는가?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삼국이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라는 당부가 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젊어서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점심을 막 마치고 난 시각, 비교적 한가한 시간에 우리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 아이 몇이서 우리 사무실로 뛰어 들어 오면서 소리를 쳤다.
“태극기가 비를 맞고 있어요!”
무슨 소린가 하고 밖을 내다보니 언제 내리기 시작했는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차, 국기를 걷지 않았구나!”
서무 일을 맡아 보던 나는 허겁지겁 쫒아나가 국기를 내려 보니 이미 국기는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초등학교 어린이들 보기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 그들을 찾았으나 그들은 벌써 가버리고 없었다. 아마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리라, 그리고 비를 맞고 있는 관공서의 태극기를 보는 순간 달려와 알려준 것일 터. 고맙고 미안한 마음 한쪽에 아무런 속박도 없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장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 대합실에 가면 천정에 태극무늬를 중심으로 무궁화 그림이 그려져 있다. 1950년 10월, 광복 후 정부를 수립한 우리는 그렇게도 염원하던 국가의 싱징인 태극기와 무궁화를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서울역 천정에 당당히 그려 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서울역을 드나들지만 천정에 그려진 태극기와 무궁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의 해이자 경술국치 100년의 해인 지금, 우리 민족의 애환을 뒤돌아보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국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젊은이들은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와 무궁화가 이처럼 민족의 이름으로 짓밟혀졌던 애사는 물론 그 속에 묻힌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잘 모르고 있다. 말로만 부르짖는 극일(克日)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일본순사의 총칼에 숨져 가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선열들의 절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오각성하며 극일을 실천해 나갈 때 역사는 비로소 우리의 편에 설 것이라 믿는다.
(20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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