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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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문득문득 아부지 생각이 나서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빛 구름이 바짝 내려앉으며,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것만 같은데, 우리 아부지는 어디메에 계실까? 국방색 당꼬바지에 털 잠바를 입으신 아부지 모습이 떠올라, 그렁그렁 눈물을 담은 채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큰 키에 우람한 체격, 쩡쩡 울리던 목소리에 힘은 장사였던 아부지. 몸이 약한 엄마는 끔찍이도 아껴주시면서, 자식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던 분이셨다. 아부지의 기침소리에 날이 밝고, 헛기침 소리에도 호롱불이 경기를 하곤 했었다.
네 명의 아들보다 다섯 딸들에겐 더 엄하셨던 아부지, 해가 떨어지면 대문밖 출입금지령이 내렸고, 밥 먹을 때는 소리 없이, 안방에서 나갈 때는 뒤돌아 서서 발끝으로 살금살금 나가야 하며, ‘순종’과 ‘인사’ 는 첫째로 꼽았다. 부모님 말씀엔 언제나 “예”라고 대답했을 뿐, “왜요?” 라고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자랐다. 또 아부지가 밤늦게 오시는 날이면 앉은 채로 졸다가, 대문소리가 들리면 우르르 몰려가 인사를 하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땐 우리 아부지보다 높은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없는 줄 알았다.
아부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해방 이후에는 부산에서 농산물유통업을 하셨다. 워낙 철두철미하고 꼿꼿한 성품이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신임을 얻었으며, 그 까다로운 농산물 군납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산지역에만 하다가, 몇 년 후부터는 서울까지 납품을 하게 되어, 물량확보를 위해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까지 다니며, 파종 때부터 밭뙈기를 사들였다. 때론 손해를 볼 때도 있었겠지만, 이익이 많을시 에는 생산자에게 덤으로 배당금을 건네주어 양심가로 통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내려도, 해거름 녘이면 두세 트럭씩 산더미처럼 실어 보내다가. 한 달에 두 번씩 불룩 튀어나온 돈 가마니를 메고 오셨다. 부산에서 집까지 오려면 여섯 시간이 걸렸는데, 버스 뒤 칸에 두면 무우 가마니인 줄 알고 아무도 안 가져간다고 하였다. 돈 가마니가 오는 날이면 온가족이 안방에 모여 문을 잠그고 가마니를 풀어헤치면 돈다발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아~돈이다!” 처음 참여하는 막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소리치자, “누가 들을라. 시잇!”하며 엄마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우린 한밤중까지 돈을 세고 또 세었다. 최종확인은 아부지와 오빠가 하고, 동생들과 나는 열 장씩 가로세로로 놓으면 엄마와 언니는 묶으면서, 헤진 돈은 창호지에 풀칠을 하여 붙였다. 그땐 만 원 묶음에 서너 장 모자라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어떤 다발은 열장이 없는 것도 있어 입을 쭉 내밀며 찌푸렸던 얼굴이, 다른 다발에서 몇 장 더 나오면, 눈동자는 금방 초롱초롱 밤하늘의 별처럼 빤짝거렸다.
돈, 돈에 대한 아부지의 철학은 철저했다. “열심히 벌어, 필요한데 쓰는 게 돈”이라고 하셨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다른 사람을 통해 도움을 주기도하고, 친구가 어렵게 되자 갚을 생각 말고 양식부터 준비하라며 돈다발을 내주었다. 특히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들에게 공부를 마칠 수 있게 도와줄 때, 돈 버는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다. 어느 날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아부지를 찾아와서 큰 절을 올린 뒤, “어르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던 모 세관장, 기업인, 정치인 등 가끔 술을 산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어려울 때 조금 도와준 것뿐인데!” 라며 껄껄 웃으셨다.
대쪽 같은 성정과 빈틈없는 사고를 지니신 당신, 집에서는 항상 호두알만한 주판알을 굴리시던 암산과 주산 왕이신 아부지의 인생관은 미래지향적이셨다. 우리들은 아파트와 자가용이 뭔지도 모를 때, 임대아파트를 지어 엄마와 여생을 편안히 보낼 거라며, 부산 변두리에 땅을 사놓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자가용을 사면 엄마랑 같이 구경 한 번 다니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떠오를 때면 꺼억꺼억 목이 멘다. 조금만 더 기다리셨으면 두 분 모시고 팔도 유람을 다녔을 텐데, 자식들에게 효도할 기회도 주시지 않고, 뭐가 그리 급해 떠나셨나요? 그처럼 아끼던 엄마를 두고 떠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부지 떠나시고 어언 삼십년을 엄마는 우리 곁에서 아부지 빈자리를 메우며 버팀목으로 계시다가, 재작년 아흔을 넘기시고 홀연히 아부지 가신 길을 찾아 떠나셨다.
"아부지! 백발이 된 할멈을 알아보셨나요? 이제 두 분이 만나서 못다 나눈 정을 나누시며, 자식들 걱정일랑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이 딸자식 늦게나마 철이 들었는지, 올 겨울 유난히 아부지가 그립습니다.
아부지! 존경합니다. 어무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경인년 정월 열사흘에 둘째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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