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돈/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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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돈
전주안골노인 복지회관 수필창작반 石河 이 신 구
‘어느 재력가가 삶을 마감할 즈음, 외아들을 불러 “이제 내 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웠나 보다. 이제 내 남은 재산을 물려줄 테니 이제 너도 좋은 여자 골라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해라.”고 했다. 그 아들은 그 많은 재산을 같이 쓰며, 행복을 같이 할 여성을 물색하여 고르고 골라 집에 데리고 와서, 아버지께 인사를 시킨 뒤,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여자는 계모가 되어 있었다’ 는 이야기가 있다. 돈에 의해 신분 관계가 바뀌고 ‘돈을 꾸어주는 사람은 그냥 주는 것이라 생각해야 하며, 금전거래는 바닥없는 바다 같은 것이라 양심도 명예도 빠져서 떠오르지 않는다’ (조지허버트 & B.프랭크린)고 했는데, 한때 친구들의 도움이 오히려 빚이 된 경우도 없지 않다.
1970년대 중반, 가까운 친구들은 맞벌이들이라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건만 나만 집도 없고 어렵게 사는 걸 안탑깝게 생각한 가까운 친구들이 당시 유행했던 100짝(百叺)짜리 쌀계(米契)를 조직하여 제일 먼저 나에게 주어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토록 배려해 주었다. 그 리고 매년 정부미 가격으로 갹출하도록 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쌀값은 매년 치솟고, 이자 부담은 늘어 내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나마 여유가 전혀 없는 처지인 나에게도 빌려다 꾸어주고, 흔적 없이 뜯긴 두 번의 ‘돈 놀이’ 여파가 지금까지 아니 평생동안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남의 돈으로 이자 받아 챙기려는 공짜 심뽀로 인해 빚만 짊어지고, 말년에 와서는 퇴직연금도 일부는 현금으로 지급받아 빚을 갚았기 때문에 전액 받지 못하고 평생 반토막 연금생활을 하고 있다.
원래 돈을 빌려 줄 땐 그 분들도 신용이 있고 누가 봐도 믿을 만하며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한 분은 아내의 여고 동창생으로 평소부터 가까이 지냈으며, 사업수완이 있어 사업을 늘려가고 있었고, 또 한 분은 부부의사로서 저명한 의대교수요, 개업의로 가족의(家族醫)나 다름없이 의지하고 지내던 처지였는데……, 돈을 빌려간 뒤에는 역시 ‘양심도 명예도 버린 채 날 잡아 잡숴!’ 하였고, 아내는 종이쪽지 한 장도 받아 놓지 않았다. 한편 생각하면 그 분들도 남의 돈을 떼먹으려 했겠나, 어떻게 잘 해서 돈 좀 더 벌려다 오히려 돈에게 속아 망신을 당하고 남의 속까지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현재 가치로 계산해 보면 그 액수가 3천만 원은 넘는 것 같다.(당시쌀값과 봉급수준)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박봉의 교사시절(초임: 쌀 3가마 값)부터, 결혼 후 애들 교육비에, 나 또한 배우지 못했던 한을 풀고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12년간을 야간과 계절제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항상 적자생활에 허덕이던 나에게 어려움을 돕겠다고 선배 선생님(이희채)이 무이자로 빌려준 쌀 50가마(당시 봉급 6개월분)를 푼돈 이자라도 받아 살림에 보태겠다고 여고 동창에게 뜯기고, 설상가상으로 이 선배님이 갑자기 고인이 되자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 갚아야 했다. 이를 해결하는 데 12년, 믿을 만한 의사선생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카드 깡을 해서 빌려준 돈 100만원(당시 봉급2-3개월분), 갚느라고 수년, 한 많은 세월을 시달린 것은 정말 운명의 장난이었다.
- 1 -
세상물정 모르고 너무도 순진했던 아내 탓만 하고 짜증을 내며 살아 왔다. 그 분들이 우리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어찌 되었던 부도가 나서, 유치장을 가고, 파산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니 내 복에 이자놀이를 하고 살 팔자가 아니였던 것 같다. 전에 모셨던 이모 교장선생님께서는 ‘이 선생은 여러 복을 타고 났어도 돈복은 없으니 탓하지 말고 있는 복이나 잘 간직하라’고 한 말이 실감난다. 돈이란 것은 내가 보기에 틀림없이 날개 달린 곤충이나 새와 같은 존재였다. 잠자리, 나비, 아니 벌일까? 가까이 있긴 한 데 잡으려 하면 멀리 날아가 버리는 새인 것 같았다. 옛날 김 삿갓은 ‘ 돈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을까?
周遊天下 皆 歡迎 (주유천하 개 환영) : 천하를 돌아다녀도 모두 너를 환영하고
興國 興家 勢不經 (흥국 흥가 세불경) : 나라도 집안도 흥하게 하니 네 세력이 가볍지 않구나
去复 環來 來復去 (거복 환래 래복거) : 갔다가는 다시오고 왔다가는 또 가며
生能 捨死 死能生 (생능 사사 사능생) : 살 자리 죽이기도 하고 죽을 자리 살리기도 하는구나
千里行裝 付一柯 (천리행장 부일가) : 천리 길 행장을 한 단장에 의지하고
餘錢七葉 尙云多 (여전 칠엽 상운다) : 제발 너만은 주머니 속에 깊이 있거라.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고, 세상살이에 돈은 하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지만 돈의 위력은 어김없이 발휘된다. 돈은 만능열쇠이고 도깨비방망이이며 ‘유전 무죄, 무전 유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푸념처럼 들렸지만 원만한 직장생활의 활력소로 3박자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실력, 인간관계, 성실성이 그것이다. 실력을 제외하면 배경과 재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내 처지에서도 깊이 실감한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이 ‘돈이란 우리들 마음이 평온하고 기쁨이 차 있을 때, 하는 일이 즐거울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에너지와 같은 것으로 돈을 수량으로 보지 말고 우주의 흐름,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아야 하며, 돈을 쫓아다니지 말고 돈이 따라 오도록 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돈이란 원래 이기적이고 돈 되는 곳으로 몰려다니며, 특성상 흐르게 되어 있다는데, 그 뜻은 수긍이 가나 당초 감을 잡을 수도 없는 것은 돈을 가까이 할 계기가 없어서 그런지 돈을 쫓아다닌 기억만 남는다.
우리 속담에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리며, 돈 있으면 개도 명 첨지’라고 했다. ‘돈은 훌륭한 하인이자 나쁜 주인’이라는 영국 속담은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돈의 위상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인간이 돈(액수)에 대한 심리적 갈등과 집착을 생각해 볼 이야기가 있다. ‘당신이 하수구 옆을 지나다가 하수구에 500원, 1,000원, 10,000원, 50,000원, 10만 원, 100만 원을 빠뜨렸다면 각각 돈 액수에 따라 당신의 마음은 갈팡질팡, 수수방관, 우왕좌왕, 이판사판, 자포자기, 사생결단 중 어떻게 할 것인지 짝을 지어 보셨나요?’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는 돈을 초월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보다.
어렸을 적에 돈 자랑 이야기만 나오면 "야,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돈이라면 징그럽단다. 왜냐하면 우리 집 상대 할아버지께서 아주 부자셨는데 동전을 모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주무시다가 어느 날 그게 하필 머리에 떨어져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그 후 우리 집에서는 돈이 원수라 하여 가까이 하지 않아 가난한 거래." 하는 친구가 있었다. 또 "옛날 부자로 살던 선조들이 적선을 할 줄 몰라 지금 후손이 가난하게 산다."고도 하였다. 정말 우리 선조가 돈벼락 아니면, 적선이 부족하여 내가 이 고생일까?
말로는 돈의 노예로 살지 말고 짐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했는데, 정승이 돈을 어떻게 쓰던가가 문제다. 좀 나누어 갖자고 하면 과연(?) 어떻게 말할까? 요즘 세상엔 매관매직, 남의 눈물을 쥐어짜거나, 투기로 번 더러운 돈도 죽을 때 관속에 넣고 가겠다는 정승들이 많은 것 같다. 요즘 나는 나의 인생과 돈, 그리고 돈에 대한 생리를 가끔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마냥 좋아하는 게 돈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돈에 쫓기지 않고 사는 요즘의 나의 삶이 우리 가족에게 평화를 주고 있어 다행이다.
(2009. 12. 12.)
삶과 돈
전주안골노인 복지회관 수필창작반 石河 이 신 구
‘어느 재력가가 삶을 마감할 즈음, 외아들을 불러 “이제 내 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웠나 보다. 이제 내 남은 재산을 물려줄 테니 이제 너도 좋은 여자 골라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해라.”고 했다. 그 아들은 그 많은 재산을 같이 쓰며, 행복을 같이 할 여성을 물색하여 고르고 골라 집에 데리고 와서, 아버지께 인사를 시킨 뒤,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여자는 계모가 되어 있었다’ 는 이야기가 있다. 돈에 의해 신분 관계가 바뀌고 ‘돈을 꾸어주는 사람은 그냥 주는 것이라 생각해야 하며, 금전거래는 바닥없는 바다 같은 것이라 양심도 명예도 빠져서 떠오르지 않는다’ (조지허버트 & B.프랭크린)고 했는데, 한때 친구들의 도움이 오히려 빚이 된 경우도 없지 않다.
1970년대 중반, 가까운 친구들은 맞벌이들이라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건만 나만 집도 없고 어렵게 사는 걸 안탑깝게 생각한 가까운 친구들이 당시 유행했던 100짝(百叺)짜리 쌀계(米契)를 조직하여 제일 먼저 나에게 주어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토록 배려해 주었다. 그 리고 매년 정부미 가격으로 갹출하도록 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쌀값은 매년 치솟고, 이자 부담은 늘어 내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나마 여유가 전혀 없는 처지인 나에게도 빌려다 꾸어주고, 흔적 없이 뜯긴 두 번의 ‘돈 놀이’ 여파가 지금까지 아니 평생동안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남의 돈으로 이자 받아 챙기려는 공짜 심뽀로 인해 빚만 짊어지고, 말년에 와서는 퇴직연금도 일부는 현금으로 지급받아 빚을 갚았기 때문에 전액 받지 못하고 평생 반토막 연금생활을 하고 있다.
원래 돈을 빌려 줄 땐 그 분들도 신용이 있고 누가 봐도 믿을 만하며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한 분은 아내의 여고 동창생으로 평소부터 가까이 지냈으며, 사업수완이 있어 사업을 늘려가고 있었고, 또 한 분은 부부의사로서 저명한 의대교수요, 개업의로 가족의(家族醫)나 다름없이 의지하고 지내던 처지였는데……, 돈을 빌려간 뒤에는 역시 ‘양심도 명예도 버린 채 날 잡아 잡숴!’ 하였고, 아내는 종이쪽지 한 장도 받아 놓지 않았다. 한편 생각하면 그 분들도 남의 돈을 떼먹으려 했겠나, 어떻게 잘 해서 돈 좀 더 벌려다 오히려 돈에게 속아 망신을 당하고 남의 속까지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현재 가치로 계산해 보면 그 액수가 3천만 원은 넘는 것 같다.(당시쌀값과 봉급수준)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박봉의 교사시절(초임: 쌀 3가마 값)부터, 결혼 후 애들 교육비에, 나 또한 배우지 못했던 한을 풀고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12년간을 야간과 계절제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항상 적자생활에 허덕이던 나에게 어려움을 돕겠다고 선배 선생님(이희채)이 무이자로 빌려준 쌀 50가마(당시 봉급 6개월분)를 푼돈 이자라도 받아 살림에 보태겠다고 여고 동창에게 뜯기고, 설상가상으로 이 선배님이 갑자기 고인이 되자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 갚아야 했다. 이를 해결하는 데 12년, 믿을 만한 의사선생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카드 깡을 해서 빌려준 돈 100만원(당시 봉급2-3개월분), 갚느라고 수년, 한 많은 세월을 시달린 것은 정말 운명의 장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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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 모르고 너무도 순진했던 아내 탓만 하고 짜증을 내며 살아 왔다. 그 분들이 우리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어찌 되었던 부도가 나서, 유치장을 가고, 파산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니 내 복에 이자놀이를 하고 살 팔자가 아니였던 것 같다. 전에 모셨던 이모 교장선생님께서는 ‘이 선생은 여러 복을 타고 났어도 돈복은 없으니 탓하지 말고 있는 복이나 잘 간직하라’고 한 말이 실감난다. 돈이란 것은 내가 보기에 틀림없이 날개 달린 곤충이나 새와 같은 존재였다. 잠자리, 나비, 아니 벌일까? 가까이 있긴 한 데 잡으려 하면 멀리 날아가 버리는 새인 것 같았다. 옛날 김 삿갓은 ‘ 돈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을까?
周遊天下 皆 歡迎 (주유천하 개 환영) : 천하를 돌아다녀도 모두 너를 환영하고
興國 興家 勢不經 (흥국 흥가 세불경) : 나라도 집안도 흥하게 하니 네 세력이 가볍지 않구나
去复 環來 來復去 (거복 환래 래복거) : 갔다가는 다시오고 왔다가는 또 가며
生能 捨死 死能生 (생능 사사 사능생) : 살 자리 죽이기도 하고 죽을 자리 살리기도 하는구나
千里行裝 付一柯 (천리행장 부일가) : 천리 길 행장을 한 단장에 의지하고
餘錢七葉 尙云多 (여전 칠엽 상운다) : 제발 너만은 주머니 속에 깊이 있거라.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고, 세상살이에 돈은 하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지만 돈의 위력은 어김없이 발휘된다. 돈은 만능열쇠이고 도깨비방망이이며 ‘유전 무죄, 무전 유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푸념처럼 들렸지만 원만한 직장생활의 활력소로 3박자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실력, 인간관계, 성실성이 그것이다. 실력을 제외하면 배경과 재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내 처지에서도 깊이 실감한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이 ‘돈이란 우리들 마음이 평온하고 기쁨이 차 있을 때, 하는 일이 즐거울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에너지와 같은 것으로 돈을 수량으로 보지 말고 우주의 흐름,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아야 하며, 돈을 쫓아다니지 말고 돈이 따라 오도록 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돈이란 원래 이기적이고 돈 되는 곳으로 몰려다니며, 특성상 흐르게 되어 있다는데, 그 뜻은 수긍이 가나 당초 감을 잡을 수도 없는 것은 돈을 가까이 할 계기가 없어서 그런지 돈을 쫓아다닌 기억만 남는다.
우리 속담에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리며, 돈 있으면 개도 명 첨지’라고 했다. ‘돈은 훌륭한 하인이자 나쁜 주인’이라는 영국 속담은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돈의 위상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인간이 돈(액수)에 대한 심리적 갈등과 집착을 생각해 볼 이야기가 있다. ‘당신이 하수구 옆을 지나다가 하수구에 500원, 1,000원, 10,000원, 50,000원, 10만 원, 100만 원을 빠뜨렸다면 각각 돈 액수에 따라 당신의 마음은 갈팡질팡, 수수방관, 우왕좌왕, 이판사판, 자포자기, 사생결단 중 어떻게 할 것인지 짝을 지어 보셨나요?’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는 돈을 초월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보다.
어렸을 적에 돈 자랑 이야기만 나오면 "야, 우리 집은 조상 대대로 돈이라면 징그럽단다. 왜냐하면 우리 집 상대 할아버지께서 아주 부자셨는데 동전을 모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주무시다가 어느 날 그게 하필 머리에 떨어져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그 후 우리 집에서는 돈이 원수라 하여 가까이 하지 않아 가난한 거래." 하는 친구가 있었다. 또 "옛날 부자로 살던 선조들이 적선을 할 줄 몰라 지금 후손이 가난하게 산다."고도 하였다. 정말 우리 선조가 돈벼락 아니면, 적선이 부족하여 내가 이 고생일까?
말로는 돈의 노예로 살지 말고 짐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했는데, 정승이 돈을 어떻게 쓰던가가 문제다. 좀 나누어 갖자고 하면 과연(?) 어떻게 말할까? 요즘 세상엔 매관매직, 남의 눈물을 쥐어짜거나, 투기로 번 더러운 돈도 죽을 때 관속에 넣고 가겠다는 정승들이 많은 것 같다. 요즘 나는 나의 인생과 돈, 그리고 돈에 대한 생리를 가끔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마냥 좋아하는 게 돈이다. 풍족하진 않지만 돈에 쫓기지 않고 사는 요즘의 나의 삶이 우리 가족에게 평화를 주고 있어 다행이다.
(2009.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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