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 받침대/이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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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받침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금영
또 식탁에서 수저받침대가 돌고 있다.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진 한 쌍의 수저받침대 중 하나는 식탁에 착 붙어있는데 또 하나는 수저를 올려놓으면 뱅그르르 돌아간다. 나는 늘 돌아가는 이 수저 받침대가 불만이다. 이것을 볼 때마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이 떠오른다.
아무리 작은 소품일지라도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요리조리 눈여겨보고 손으로 쓰다듬어보고 수저를 올려놓고 돌려 보았더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이렇게 불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기는 물건을 살 때 신중하게 살펴보고 골라서 사왔어야 하는데 물건을 집어 주는 대로 들고 왔으니 내게도 잘못은 있다.
저녁을 먹고 바람을 쏘이고 들어오다가 새로 지은 상가에 꽤나 이름이 있는 생활용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호기심에 들어가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었다. 작고 예쁜 수저받침대가 반짝였다. 값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비쌌다.
소품으로 만든 기획 상품이라면서 물푸레나무를 손으로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튼튼하면서도 옷칠을 잘하여 고급스럽고, 가격도 저렴하여 인기 상품이라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사왔던 도자기오리 수저 받침대가 있었는데 수저를 올려놓으면 뒤뚱거려 불편하던 참에 옷칠을 한 물푸레나무 받침대가 마음에 들어 사왔다. 처음은 잘 몰랐는데 사용하다보니 또 뱅그르르 잘도 돌아갔다. 그때 바로 바꿔올 것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쓰기로 했다. 자꾸만 불평하는 남편 앞에는 놓지 못하고 내 앞에다 놓는데, 나도 사실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수저받침은 이번이 세 번째다. 수저받침과 우리는 인연이 안 맞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버리기는 좀 아깝고 그냥 쓰자니 저것이 또 뱅그르르 돌아가려니 싶다. 다른 집에 가 보면 식탁에 수저를 놓고 밥을 먹는데 유난하게 남편은 수저받침을 찾는다.
오늘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내 앞에 있는 받침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니 역시 돌아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읽어 보았다. 그 수필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은 방망이 주문을 받아 손으로 직접 깎으면서 대충 해달라는 손님의 재촉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돌려보고 매만지며 기다리는 손님을 차까지 놓치게 한다. 심사숙고하며 마음에 꼭 들 때 내어준다.
우리 집 수저받침은 재촉도 받지 않았을 터인데 출고할 때 검사만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불량품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또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해서 대충 마무리한 게 문제점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그 작은 소품 하나가 마음에 꼭 들었더라면 다른 주방용품도 사러 갔을 것이다.
가령 식염수를 만드는 죽염이 두 번 구은 것인지, 다섯 번 구은 것인지 소비자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작업과정을 직접보고 구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입할 때 사용 설명서를 보고 믿고 구입할 뿐이다. 죽염은 값이 조금이라도 비싼 것이 공정을 여러 번 거쳤기 때문에 신용으로 조금 비싸더라도 안심하고 구입한다. 물푸레 수저받침도 공정을 한 번만 더 거쳤더라면 식탁에 착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좋은 상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한 십년 가까이 되다보니 그릇들이 많이 낡았다. 낡아 보이는 것은 그릇 만이 아니고, 주방에 서있는 사람까지 낡아 보일까 겁난다.
우울할 때는 내 마음을 닦아내듯이 깨끗이 반짝반짝 닦았다. 이 그릇들을 장만했을 때 행복한 마음이 충만했었고 평생을 쓰려니 싶었다. 그릇과 사람은 같이 나이를 먹는다는데, 오늘따라 그릇보다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수저받침과 낡은 그릇들을 새것으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도 해 보았다. 꽃이라도 한 송이 꽂아 놓으면 환해지려나?
잠시 눈을 돌려 베란다를 바라본다. 따스한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나에게 환한 미소를 보낸다. 이 혹한에도 제라늄은 햇볕을 받아 빨간 꽃을 피웠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 한다. 아직은 그렇게 낡을 때가 아니라고…….
윤오영의 수필에서처럼, 물건을 만드는 장인은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에만 열중하며 스스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예(工藝)품을 만드는 그런 장인을 나도 만나고 싶다.
인연이 어디 따로 있던가? 윤오영이 그 노인에게 탁주라도 대접하러 찾아간 것처럼 나도 그 일을 계기로 해서, 상점이 가까운 집근처이기 때문에 슬리퍼를 신은 채 비스킷을 사들고 가서 같이 차도 마시고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10.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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