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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언니/한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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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0회 작성일 10-01-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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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언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 J라는 분이 있었다. 그분은 젊은 나이에 상처(喪妻)를 하고 자주 서울에 오르내리더니 그곳에서 좋은 아주머니 한 분을 모셔왔다. J는 성품이 깐깐한지라 주변 사람들도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서울에서 오신 새 부인을 위해 화장품을 세트로 구매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전 부인한테는 무척 엄했는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쑤군거렸다. J가 하루는 나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 마당 한쪽에는 꽃사슴, 꿩, 오골계 등이 있었고 방 한 칸에는 새 부인과 함께 다니면서 채취했다는 각종 동양란의 꽃향기가 가득했다. 늦게 만났지만 두 분이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서울 아주머니는 말수도 적은데다 생각 외로 수수하고 살림도 아주 깔끔하게 잘하는 것 같았다. 인삼농사도 지었고 꿀벌도 키웠다.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는 집이 그 집이었다. 서울댁은 내게 친언니처럼 잘 대해 주어 나는 서울언니라고 불렀다. 어쩌다 문 앞을 지나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들어오라고 하여 과일을 깎아주거나 밥을 먹고 가라며 퍽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올 때면 호박이며 상추, 가지 등을 따다 주기도 했었다. 나는 언니의 고마운 마음에 심부름거리를 찾아서 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은근히 신랑자랑을 했다. 언제 다녔는지 유명식당도 두루 가보고 여행도 많이 다녔단다. 언니가 갈치를 좋아한다고 한 마리에 5만 원짜리도 서슴없이 사다 주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일속에 파묻혀 사는 줄만 알았더니 모든 게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서울언니가 시골생활에 잘 적응하여 행복하게 살자 하늘이 시샘을 한 건지 아니면 행복은 원래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것인지, 무쇠 같던 남편이 갑자기 아프다며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하여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재발하여 끝내 건강을 찾지 못하고 서울언니 곁을 떠나고 말았다. 겨우 10년을 살고 말이다. 남편이 때론 아빠로, 남편으로, 자식의 몫까지 다 해주겠다고 했다는데 회갑도 못 넘기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으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을까. 해가 저물녘이면 남편이 “나 왔어!”하고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만 같다며 주방문 앞에 기대어 멍하니 서 있던 서울언니. 행복해 보이던 그 모습은 간데없고 애수에 젖은 듯 촉촉한 눈빛. 어느 때는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한길까지 들려와 듣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었다. 서울언니는 혼자 있기가 싫었던지 가끔씩 나를 불러댔다. 그럴 때면 힘들어하는 언니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밤늦도록 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퇴직하는 바람에 그곳의 집을 팔고 전주로 나오게 되었다. 어쩌다 안부 전화를 하면 언니는 한 번 놀러 오라고 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건지. 그곳에 한 번 간다고 하면서도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주중앙성당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서울언니를 만났다. 4년 만에 처음 만난 것이다. 서울언니는 한약을 지러 나왔다고 했다. 나는 잠깐 안부를 묻고 버스시간에 정신이 팔려 곧바로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동네는 버스가 90분 간격이라 한 번 차를 놓치면 다음 차를 타는 건 포기해야 했으니까. 저녁이 되자 언니가 마음에 걸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해를 구하려고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많이 섭섭했던 것 같았다. 그 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언니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대학병원에서 며칠 입원했다가 1주일 전에 돌아가셨단다. '아니, 이럴 수가?' 갑자기 가슴 속으로 찬바람이 불었다. 삶이란 이렇게 허무한 것인가? 그때 만났을 때 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다가 하루라도 쉬어가도록 했어야 하는데, 너무 옹졸하고 무심했던 내가 오늘따라 한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자주 연락하여 병원에 있을 때라도 언니 곁에서 좀 더 평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았을 걸. 언젠가 언니가 너무 괴로워할 때 내가 울면서 기도를 했더니 언니도 따라 울면서 마음이 좀 차분해진다고 했었는데. 생물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사람도 생물이기에 죽는다는 건 기정사실이지만 그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슬프다. 한 인간이 삶을 마감할 때의 허탈함, 그것은 죽은 사람이 아닌 옆에서 그 죽음을 지켜 본 사람의 몫이다. 한동안 가깝게 지냈던 서울언니의 죽음 소식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세상을 떠난 서울언니와의 인연을 회고하면서 뒤늦게라도 명복을 빌어드리고 싶다. 저승에서 편안하시라고 빌어주는 것, 그것을 위령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분을 위해서 두고두고 기도할 것이다. (200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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