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풍경 속으로/이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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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풍경 속으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행촌수필문학회 이금영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낙안읍성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낙안읍성은 누런 볏짚으로 용마름을 엮어 초가지붕을 새로 단장한 풍경이 정갈하면서 옛 풍취가 물씬 풍겼다. 성으로 이어진 정문, 낙풍루를 거처 우산을 받쳐 들고 성곽의 돌담길을 따라가 보았다. 이곳이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성곽의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텃밭을 일구고 화초도 가꾸는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낮은 돌담과 돌담사이에 경계를 이루고 그 안에 가지런히 정리된 장독대, 선조들의 옛 모습이 조화를 이루며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었다. 성곽으로 올라서서 걸으며 바라보는, 수령 300여 년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고만고만한 초가지붕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였다. 민속촌이라지만 그 안에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빨갛게 매달려있는 감이 무척 정겨워 보였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어릴 적 우리 집도 초가였다. 집체만한 노적가리의 추수가 끝나면 온 동네 힘센 장정들이모여 볏짚으로 날개를 엮어 지붕의 삭은 날개를 걷어내고 누런 새 날개로 지붕을 이었다. 그때 노랗게 새 옷을 입은 지붕들은 구경만 해도 참 재미가 있었고 예뻤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일하는 날은 무를 곁들인 갈치지짐의 구수한 맛이 오늘따라 그리움으로 묻어난다. 초가지붕은 기와집으로 바뀌고. 싸리문 옆에서 감이 주렁주렁 열렸던 감나무는 두 나무가 마주보고 있었는데 좁은 고샅길을 넓히느라 한 그루는 베어져 버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리 일행은 관광이냐, 점심식사냐 중 선택하라고 하여 우리가족은 밥은 굶고, 옥수수 하나와 참 다래로 점심을 때우며 읍성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손에 손을 잡고, 조선시대의 숨결이 살아 있는 초가지붕과 싸리문, 그 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줄듯 싶었다. 전통혼례식 장면과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는 모습, 마구간, 옛 생활 도구인 대장간의 풍경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아스라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번한 옛 모습들을 둘러보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뒤뜰 시냇가에서 흙 염소를 몰면서 물을 먹이고, 풀을 뜯기는 그 풍경이 나의 정든 고향이었다.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때 토성을 쌓아 남해안에서 쳐들어오는 왜구를 토벌한 것을 계기로, 인조 때 석성으로 개축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되었으나, 1983년 성과마을이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복원되었다 한다. 낙안읍성의 마을은 전통적인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체험도 할 수 있는 성과 초가마을이 소중히 보존된 문화유산이다. 우리 고장 전주한옥마을은 지붕이 기와인 한옥인데 비해, 낙안읍성 마을은 서민의 주거문화와 생활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초가여서 서민의 문화와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낙안읍성 마을에 거주했던 문학의 대가 운정(雲亭) 정일표(丁日杓) 선생은 낙안팔경을 이렇게 읊었다.
오봉명월(五峯明月)
낙안읍성 동녘에 우뚝 솟은 오봉산
꼭대기에 달 밝아 외로이 구르는 바퀴 같구나.
성벽 따라 솟은 장대(長臺)에 정월 대보름날 올라
봉오리 높낮이 따져 한 해 농사 점쳐 보세나.
관광버스는 빗길을 달려 일행을 순천만 갈대밭에 데려다 놓았다. 늦가을을 붙잡기라도 하듯,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그냥 서있기만 해도 갈대밭으로 밀려갔다. 많이 와보고 싶었던 갯벌속의 순천만 갈대밭이다. 순천만은 남해안 지역에 발달한 연안습지 중 우리나라 습지를 대표할만하며, 세계 5대 습지라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갯벌에 펼쳐지는 칠면초군락지와 사람이 어우러진 갈대밭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S자형 수로를 보려면 전망대를 올라야하는데 우리 일행은 버스에 승차할 시간이 촉박했다. 다음기회에 햇빛이 찬란한 일몰시간에 와 보리라. 순천만 갈대밭 풍경은 사랑과 낭만이 출렁였다. 바람에 흔들리며 수런거리는 갈대들은 드넓은 개펄에서 삶에 지친 고단한 어깨들을 바람에 실어 훌훌 털어버리라 하는 것 같았다. 광활한 갯벌에는 갯지렁이와 뽀글뽀글 올라오는 작고 빨간 게 등 개펄속의 생태계가 다양하고 풍부하여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를 비롯한 검은머리물떼새 등 국제 희귀조류가 이곳을 찾는 등 생물학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갈대밭 저 멀리에서 흑두루미들이 한두 마리씩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는 듯 모여들기 시작했다. 잔뜩 흐린 날씨 때문에 저녁놀을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두루미들이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듯 차츰 그 수가 불어나는데, 사람들은 흑두루미들의 진풍경을 보지 못했는지 갈대밭풍경에만 온통 정신을 팔고 있었다.
와~와! 수 만 마리의 흑두루미 떼의 군무가 시작되었다. 추수가 끝난 논에 앉았다 날아가기를 乙형, V형, 人형으로 선두가 바퀴면서 날았다. 두루미의 황홀한 춤사위와, 가을의 끝자락 정취 속에서 흑두루미의 군무와 풍경 속으로, 흠뻑 빠져 본 여정이었다.
(2009.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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