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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동선수의 인생드라마/송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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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40회 작성일 13-01-3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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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동선수의 인생드라마 -가슴 뛰는 삶, 김봉연 야구선수의 특강을 듣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송 일 섭 벌써 작년이다. 바람도 잠자던 어느 날, 전주평화도서관에서 김봉연 야구선수의 특강이 있었다. 꼬맹이부터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한 사람이 강당을 꽉 메웠다. 나는 야구를 싫어한다. 까마득한 옛날 야구장에 갔었다. 9회 말까지 점수가 나지 않고 공만 던지고 있으니 재미가 없었다. 뭔가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밋밋한 경기였다. 그러나 TV를 보면 수많은 관중이 야구장을 찾고 있다. 얼마 전 10구단을 유치하기 위해 불꽃 뛰는 경쟁을 벌였다. 야구는 인기 있는 운동경기다. 비호같이 뛰어가 안간힘을 다하여 공을 잡으려는 모습이나, 한 방에 관중석까지 날아오는 공은 시원하다. 한・일전과 같은 경기는 점수가 나지 않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왕년의 홈런왕 김봉연 선수의 강연은 뭔가 특별할 것 같았다. 드디어 강연이 시작되었다. 그의 강연은 투박한 운동선수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을 전율케 하는 시인의 말이어서 곧바로 매료되었다. 고향인 아침의 도시 전주에 오니 마음이 설렌다는 말로 인사를 하였다. 전주중앙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란다. 야구를 하는 형을 찾으러 교무실에 갔는데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야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무신 시절 선수들은 운동화를 신고 야구연습이 끝나면 으레 간식을 먹었다. 전주 북중 야구부에 입학하였다. 시험과 경기가 겹친 일이 있어서,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야구부를 폐지했다. 그것은 운동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 뒤 신동파 선생님을 만나 농구며 축구, 핸드볼, 육상 등을 해봤다. 중학교 졸업 때 고교야구가 인기가 있어서 야구를 하려고 군산상고로 진학했다. 그 시절 운동선수는 공부를 안 해도 되었다. 그러나 영어와 부기공부는 열심히 했다. 고교 2학년 때 투수를 했는데 전국봉황기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우리나라는 경제며 교육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야구만은 서울에서 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1970년대 군산상고 3학년 때의 일이다. 황금사자기에서 역전승하였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니 군산시민 12만여 명 중 6만여 명이 모여 환영해 주었다.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교 야구는 서울과 지방이 평준화된 것이다. 서울 소재의 대학이나 실업팀에서 몸값이 높아졌다. 그 당시 일본원정 경기 때문에 예비고사 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연세대에 입학하여 홈런왕을 독차지하였다. 주간지 표지 모델이 되고, TV출연요청이 쇄도하여 어린이 프로그램인 ‘호랑이 선생님’에도 출연하였다. 교사가 되려고 교직과목을 이수하였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경기도 가평에서 훈련을 받는 도중 육군본부로 불려갔다. 1975년 아시안게임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된 것이다. 복학할 때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값이 3백5십만 원이었는데, 실업팀에서 1천만 원을 받았다. 1977년에 알루미늄방망이가 처음 탄생했는데 6,7할을 쳤다. 알루미늄방망이는 멀리 잘 나가 맞추면 홈런이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장외로 넘긴 일이 있었다.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을 받았다. 그때는 백색전화와 청색전화가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백색전화를 놓고 살았다. 대학교 때 우승을 못해본 일이 없었다. 방망이가 정통으로 맞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 회전시켜야 멀리 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 6개 구단주를 모아놓고 프로야구를 발족시킨 것이 1981년 10월이다. 1988년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1989년 코치를 하였다. 코치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바보가 된다. 그 당시 포니2 상을 받았다. 운동하여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다. 1983년 친구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광주병원에 입원했었다. 이순자 영부인께서 병문안을 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병원 출입문을 닫았다고 한다. 프로야구 감독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점찍어줘야 감독을 할 수 있다. 야구의 꽃이 감독인데 나는 감독을 못했다. 야구연습을 3, 4시간 하는 동안 1천 개를 친다. 피나는 노력을 했다. 현 극동대학 총장을 만나 겸임교수가 되었다. 강단에 서니 학생들이 나를 모르더라, 그걸 보고 오금이 서렸다. 공부처럼 쉬운 게 없다. 끝내 이기려고 하는 근성이 프로 정신이다. 결론이 중요하다. 운동선수는 순박하다. 건강해야 사는데 재미가 있다. 건강식품을 믿지 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한 것이 건강이다. 힘이 부족하면 다친다. 운동 연습은 하루 6, 7시간 했다. 운동선수가 감기에 걸리면 일어나지 못한다. 자생력을 키우려면 운동밖에 없다. 땀을 흘려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운동의 대표는 걷는 일이다. 삶의 질을 하루하루 느꼈을 때 인생이 행복하다. 당뇨 인구가 7백만 시대다. 당뇨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이 5백만 명이란다. 먹어도 배가 고픈 것이 당뇨병의 특징이다. 하루에 3십 분 이상은 운동을 해야 한다. 최경주 골프선수는 6십억 원을 벌었다. 운동선수도 부를 쌓는다. 시간이 있을 때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쪼개라. 운동 안 하면 지방이 8천 배 늘어난다. 죽을 때까지 운동을 해야 한다. 삶의 질을 바꾸는데 운동이 최고다. 감독은 4%밖에 영향이 없다. 선수가 해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온다. 운동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른다. 슬럼프가 오면 노력을 더해야 한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기도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린 소녀는 하나님께 편지를 썼다. 우체부가 그 편지를 보고 난감하여 생각 끝에 백악관으로 보냈다. 보좌관은 그 소녀에게 5십 불을 송금했다. 소녀는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고 느꼈다. 세상인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다. 김봉연 선수가 열강을 마치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노력 덕분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남다른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몇 배의 피땀을 흘렸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김봉연 선수의 한마디 한마디는 나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201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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