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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의 명암/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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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4회 작성일 12-04-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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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의 명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나기영은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다. 중학교 동창생인데 친구라고 부르긴 좀 뭣하다. 기영이는 나보다 한 살 위이고 초등학교 1년 선배다. 내 주변엔 6·25전쟁 탓으로 취학 학령에 맞게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몇 안 되었다. 다섯 살 위인 동창생이 몇 명 있었다.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형편이었으니 그 성장과 사고의 차이는 얼마나 컸는지……. 기영이는 6학년 과정을 한 해 더 배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6학년 전체 학생 중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체격이 건장하고 인물이 빼어난 데다 못하는 것이 없었다. 붓글씨는 독보적이었는데 교무실과 교실에 걸어놓는 교훈, 급훈 등 대부분의 액자에는 기영이의 글씨가 올라갔다. 김민재는 나와 한 마을에 살던 동갑 친구다.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나보다는 1년 선배가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를 함께 다녀 다시 친구가 된 것이다. 민재네 집은 정미소를 운영하는 부유한 가정이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에 민재 아버지는 트럭을 가지고 있었고, 허우대는 우리 마을에서 제일이었다. 부인이 셋이나 되어 자녀들은 세 집에서 십여 명을 두었다. 보통 남자는 한 사람의 아내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는데, 민재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민재 집에는 무서운 어른이 한 분 계셨는데 할머니였다. 항상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목소리가 크셨다.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허리가 굽고 편찮으신지 바깥출입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 분이 바로 민재의 할아버지고 할머니의 남편이라는데 믿기지 않았다. 너무 대조적이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큰아들 집에서 모시고, 할머니는 막내아들인 민재 아버지가 모시고 살았다. 중학생이 되고나서 반장과 학생회장은 기영이가 독차지하였다. 웅변대회는 매년 6월 기영이를 위하여 개최되는 것 같았다. 시군대회에도 참가하여 상을 타 왔다. 여학생들은 기영이에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려 안달이었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다. 사회과목을 가르친 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가끔 사법고시로 출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유 선생님은 고시에 몇 번 도전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기영이가 사법고시에 합격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기영이는 판‧검사가 되려고 작정한 듯하였다. 기영이에게 닥친 첫 번째 난관은 고교입시였다. 도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C고에 응시하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기영이는 낙방하였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장학금을 준다는 야간고등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3년 뒤 일류대학 법학과를 지원했으나 실패하고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길로 고향에 내려와 사법고시 준비에 골몰하였다. 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아가씨가 고시 뒷바라지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녀는 물심양면으로 기영이를 도왔으나 끝내 사시에 합격하지 못했다. 내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을 때, 기영이가 나를 찾아왔다. 신수는 여전히 훤했고 말은 번드레하였다. 교사 자격증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강원도 어느 중학교에 강사로 나가는데 교사자격증만 있으면 정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어 나는 거절하였다. 그리곤 종무소식이었다. 기영의 족적을 더 이상 알 수 없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민재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일을 일일이 캐물을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 청년이 되어 서울에서 만났다. 민재는 서울 남산 아래 조그만 가게를 얻어 전기와 시계 수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소를 팔아 등록금을 챙기던 시절이었는데, 민재는 돈을 벌고 있어서 부러웠다. 언제 그런 기술을 배웠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공부와 기술은 다른 것인데 나는 착각을 한 것이다 민재는 원래 끼가 많던 친구라 객지생활에 잘 적응하였다. 돈이 있는 집의 외동딸을 만나 결혼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유산을 물려받아 신세가 폈다. 그전의 민재가 아니었다. 이재理財에 밝아 재산을 많이 늘렸다. 고향의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냈다는 소문도 들렸다. 사회의 우등생은 학교의 우등생과 다르다고 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고향에 가면 기영이의 빛나는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201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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