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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향녀/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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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1건 조회 585회 작성일 11-12-18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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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향녀 전주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환향녀(還鄕女)란 고향에 돌아온 여인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흔히 화냥년으로 변한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비교문학가 유점석 씨의 글에 따르면 조선시대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전후 북조선의 국경(평안, 함경)지방은 오랑캐(호족:胡族)들의 노략질이 빈번했다. 당시 끌려간 여성들이 갖은 고생 끝에 도망쳐 다시 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를 가리켜 환향녀라 불렀다한다. 그런데 갖은 고난 끝에 고향이나 시가(媤家)로 돌아 왔으나 남성들의 냉대를 받았단다. 이유인즉 여성으로서 지켜야할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들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품행이 단정하지 못했는데 이를 비아냥거려 화냥년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여성들을 환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천대하고 멸시했으니 기막힌 일이다. 나라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다니! 이것뿐이겠는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약점과 약소민족의 서러움이 아니겠는가? 수난이 있을 때마다 연약한 여성들이 당해야 했다. 아주 옛날은 제처 놓고 근세의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일제침략 등이 그렇다. 역사가들은 우리나라가 유사이래(有史以來) 천여 회의 크고 작은 외침을 겪었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일명 대동아전쟁: 2차 세계대전), 일본제국주의 앞잡이들은 우리의 자매(姉妹누이, 동생)들을 정신대(挺身隊)로 전선에 동원했다. 이들이 겪어야 했던 수치와 고통이 얼마나 컸으랴! 그녀들이 광복을 맞아 목숨을 건 고생 끝에 가까스로 살아서 귀국했건만 역시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더구나 전쟁위안부란 해괴한 이름까지 붙여서 말이다. 생존자들이 일본정부에 배상 및 사과를 받으려고 항쟁을 시작한지 수 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사과는커녕 눈썹 하나 끄덕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수요시위(水曜示威) 일천 회(2011.12.15.현재)를 맞아 오죽하면 주한일본대사관 앞 맞은편에 평화의 비, 그들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건립했다. 그런데 요즈음 영하의 날씨를 맞아 맨발 벗은 소녀상발등에 목도리를 둘러싸준 신문 기사를 보니 새삼 측은한(신발도 못 신고 끌려 다닌)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정부도 지난 한일국교정상화 배상으로 해결했다는 주장이지만 너무한 것이다. 국회도 너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느낌이 들 뿐이다. 이 문제는 거국적으로 단결하여 서둘러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는 환향녀가 화냥년이 된 것이나, 정신대가 불명예스런 위안부가 된 것은 무엇이 다르랴? 나와 같은 연배(年輩)로서 몇 명 안 되는 생존자가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두고 볼 일일까?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위안부할머니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루 빨리 이런 호칭이 사라지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2011. 12. 17.)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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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님의 댓글

마음은 작성일

왜 환국여(還國女) 라 얺고 환향녀라 했을까?
그나마 수치를 안고 고향밖에 찾아오질 못한건가 & 대국의 屬鄕 쯤 으로 비하 한 표현한건가--?
약소국 역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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