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당신에게/장지연
페이지 정보

본문
사랑하는 당신에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아스라이 깊어가는 밤, 낙엽 지는 애달픈 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어, 천정을 들썩이며 코를 고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머리엔 무서리가 내리고 눈가엔 잔주름이 훈장처럼 그려진 당신, 바람 잘날 없는 세월 속에서도 우리가족의 버팀목으로 사시느라 훈장을 받으셨나요?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아릿한 기억들이 부스럭거리며 다가옵니다.
유난히도 눈이 많던 그해 겨울, 말도 풍습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우리가 부부의 인연을 맺었죠. 이해할 수 없는 언어소통을 위해 가끔 사전이 필요하다며 빙그레 웃으시던 당신. 나는 얘기하기가 두려워 머뭇거릴 때도 더러 있었답니다.
집에서는 '살'이 아니고 '쌀, 쌀' 해보라고 가르치고, 시장에선 정구지를 달라고 하면 있는데도 없다고 하여 손으로 가리키면 '솔'이라고 했죠. 어느 날 이웃사람들이 '대수리' 잡으러 간다는 말에 '대수리'가 뭐냐고 했더니 '대가리'라며 머리를 툭툭 두드리다 형사와 같이 잡으러 갔다고 해서 한동안 '대수리'가 사람인 줄 알았지 뭐예요? '대수리'가 '다슬기'라는 것을 알 때까지 말이에요.
또한 풍습도 달랐지만 정말 힘들었던 건 반찬 만들기였어요. 경상도 음식과 전라도 음식은 비교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항상 “맛있다. 잘했어!” 하며 당신이 칭찬해줄 때 더 잘해야겠다며 열심히 배워서 조금씩 발전했나 봐요. 지금은 손자들이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짱’이라고 하는 걸 보면 모두 당신 덕입니다.
언젠가 햇빛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던 날, 자식들 공부도 끝났으니 이제 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하시던 당신, 늘 배움에 굶주렸던 나는 중국어강좌가 개설된 도서관으로 달려갔죠. 처음 대하는 중국어는 모든 단어에 성조가 있어 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음높이에 따라 그 뜻이 달라져 어려웠죠. 그때 큰아들 인호가 중국어학원에 등록을 해주어 양쪽을 오가며 배운 걸 녹음해서 들으며 하루 종일 중국어에 매달렸죠. 4년간 공부한 끝에 중국어학원 강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도 퀭한 눈을 껌벅이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지요.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문학과에 청강생으로 들어갔죠. 풋사과 향기가 가득한 캠퍼스에서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때면 나는 스무 살로 돌아갔어요. 처음으로 리포트를 작성하고 시험을 보면서 2학년 때 A+를 받았죠. 그리고 3학년 기말고사를 끝내고 학점이 인정되어 수료증을 받았을 때 당신이 더 좋아하셨죠? 모두가 당신 덕입니다. 내 인생에 이런 봄날이 있게 해주어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앞만 보며 달려온 내가 당신에게 너무 소홀했던가 봐요. 지난 1월 다리를 절룩거리더니 갑자기 걸을 수 없어 주저앉는 당신을 바라보며 눈앞이 캄캄했답니다. 전주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 119구급차로 서울 우리들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죠. MIR와 몇 가지 검사결과 척추관 협착증 및 퇴행성 척추증이라 하여 주사요법으로 시술하고 두어 시간 지난 뒤 지옥에서 천당에 온 느낌이라며 엉금엉금 일어났지요. 오늘 아침에도 막대기를 짚다 힘들어 엉덩이를 밀며 겨우 화장실을 갔는데, 이렇게 빨리 일어설 줄이야, 정말 기적이 일어났죠.
모두의 축하 속에 침대를 잡고 일어나 절룩거리며 걸음마를 배우는 당신. 입원 기간 중 나는 당신의 보호자로 자리가 바뀌었고,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하루하루 당신의 건강이 회복되었지요. 설을 사흘 앞둔 날 2주간의 치료를 끝내고 전주로 내려오면서 우린 마음을 모았죠. 이제 욕심을 내려놓고 건강만 챙기면서 알록달록 물드는 황혼 길을 두 손 꼭 잡고 걸어가자고 말이에요.
여보!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해요.
2011년 11월 6일
영원한 당신의 동반자가
- 이전글아버님과 뚝배기/한숙자 11.11.07
- 다음글보이스피싱 주의 사항 voicefishing 11.11.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