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을 구해준 휴대전화기/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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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을 구해준 휴대전화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11월 중순이면 가을이 깊어져 활엽수들이 낙엽을 털고 나목으로 변신하는 때다. 학생수련기관인 S야영장에서는 1년의 교육을 종료하는 이때쯤, 직원들에게 조촐한 회식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나는 이 자리에 외부 관련자로 초대를 받아 동료 몇 사람과 함께 참석하였다.
야영장 책임을 맡은 관리장은 몇 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선배였다. 오미자열매로 빚은 붉은 술과 토종 닭백숙은 잘 어울렸다. 한 잔, 두 잔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그간의 고생스런 이야기와 수련생들의 에피소드를 엮어 화제는 무르익었다. 내년에는 이렇게 해보자고 다짐도 하였다. 어찌 보면 평가회 자리 같았다.
뒤풀이 시간은 고스톱으로 이어졌다. A장학사의 독주에 모두들 잔뜩 긴장했다. A장학사는 고스톱의 타자다. 나는 그와 몇 번 겨루어 보았지만, 이내 손을 털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얼큰해진 기분을 좀 식히려고 그랬다. 걷다가 무심결에 '이 길로 집에 가자. 더 신세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가 들어오면 잡아타고 나가려니 쉽게 생각하였다.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하여 전봇대에다 소피를 보았다. 차가운 하늘에 별이 몇 개 빛났다. 하체를 흔들고 돌아서면서 방향을 잃었다. 자신 있게 나아간 길이 반대 방향이었다. 그날따라 길가의 가로등이 안 보였다. 가로등이 없는 곳인지도 몰랐다. 희끄무레 보이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사뭇 걸었다. 약간 경사진 길이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길이 있으면 간다. 모든 길은 집으로 통하는 것이다. 점차 술기운이 가시면서 찬 기운이 옷 속을 파고들었다. 택시는커녕 경운기나 인기척도 없었다. 공동묘지로 가는 길처럼 적막했다. 길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되돌아서면 더 멀어질 것 같았다. 계속 직진했다. 한참을 가다 가로수에 기대고 앉았다. 피곤하여 발이 떼어지질 않았다. 잠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설마 그러기야 할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때 생각이 미쳤다. '아! 그렇지. 휴대폰이 있지 않아?'
그 시절,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휴대폰이 워낙 고가인데다 불통지역이 많아 유용하게 쓰이지 않았다. 나는 산행을 많이 하였기에, 큰 맘 먹고 삼성 휴대폰을 구입했었다. 집으로 전화를 하니 신호음만 가고 받지를 않았다. 다른 곳은 전화번호를 알지 못하였다. 지금처럼 무슨 단축번호나, 전화번호 입력 기능이 없었다. 밧데리가 거의 닳았는지 소리가 신통치 않았다. 그저 막막한 가운데 시간만 흘렀다. 내일 새벽까지 견뎌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에이, 어찌 되겠지. 그런데 여기가 도대체 어디쯤이야?'
"삐리릭" 비몽사몽 중에 휴대 전화기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받았다.
"여보세요, 아, 김 00이시죠?"
"그런데요."
"거기가 어딥니까?"
"여기요? ―."
"아! 찾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얼마 후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재작년 수련원장으로 부임하여 환영회식이 있었는데, 윤 지도사가 내게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원장님, S야영장에서 길 잃으신 것 아세요?"
"왜 그걸 몰라, 핸드폰 때문에 살았잖아?"
나는 지금도 그 큼직한 애니콜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다.
(201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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