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배움의 길/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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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배움의 길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어째서 그랬는지 할아버지 때부터 단명하였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도 열세 살 때에 아버지상을 당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고, 고모와 삼촌들의 보살핌이 그리웠다. 대가족이 사는 집을 보면 부러웠다. 그렇게 자랐기에 양반들의 생활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하나 자세히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늘 향촌 답사하러 울산에 가면서 옆에 앉은 안(安) 선생님이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일제 강점기에 이리농림학교를 나온 90세 되신 어르신이다. 한학(漢學)에도 밝아 고전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곡성의 양반집에서 태어나 4대가 한 집에서 살면서 철저한 가르침을 받은 어른이다.
다섯 살 때란다. 집안 식구가 모여 아침을 먹었다. 증조할머니는 흰 쌀밥을 드리고 나머지 식구들은 잡곡과 시래기를 넣어 지은 밥을 주었다. 어린 마음에 쌀밥이 먹고 싶어, 어머니에게 눈짓을 하여 증조할머니 진지그릇을 가리켰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않고 할아버지 진지그릇을 보라고 눈짓했다. 할아버지 진지도 내 밥과 똑 같았다. 그래서 어른 모시는 법을 배우고 효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하인을 대할 때 사람대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학대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한 식구처럼 똑같이 먹고 입고 살았다 한다. 그분이 살던 마을에서는 한 가족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또 서민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단다. 자기 집에 자주 다니는 새우젓 장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입이 비뚤어지고 옷도 남루하여 대하기가 꺼려지는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젓 장수에게 식구들이 먹는 것과 똑 같은 밥상을 차려 대접했다. 그리고 새우젓을 사고서 보냈다. 이상하여 어머니에게 왜 천한 사람에게 상을 차려 대접하느냐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사람은 천하고 못생겼지만 그는 효자이니 대접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서민도 행실에 따라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그 뒤로 안 먹던 새우젓을 먹었다고 한다.
양반들이 평민과 천민을 사람대접하지 않았다면 국란이 일어났을 때 천민들이 먼저 일어나 주인을 해쳤을 게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임진왜란 때도, 양반들이 의병을 일으켜 싸울 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들이 나서서 함께 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양반들의 행실이 바르니, 자기 마을은 동학혁명 때나, 한국전쟁 때도,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단다.
옛날에는 여관이 없었다. 멀리 떠나는 사람은 어떻게 다녔을까. 주막이 있기도 했지만, 여비가 없는 사람은 곤란했을 게다. 그런데 양반집에는 사랑방이 있어 길을 가다 저물면 거기서 잤다. 양반 댁은 항상 식객이 떨어지지 않았다. 양반들은 그만큼 베풀며 살았다. 호남 우도 사람들은 과거보러 갈 때 금구의 장 씨 집안에서 묵고 가고, 좌도 사람들은 구례의 운조루 류 씨 집안에서 자고 떠났다.
또 우리나라는 임금도 백성들과 같이 살려고 했다. 일본이나 중국, 서양의 궁궐은 성을 높이 쌓아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궁궐은 담장을 낮게 쌓았다. 전쟁이 나면 같이 죽고 같이 살자는 뜻이다. 그렇게 백성들과 생사를 같이 하니까 5천년 역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각 고을에 남아있는 선정비 중, 학정을 베푼 원님의 비도 있다는데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거의 9할은 맞고 아부하려고 세운 것도 더러 있다고 하여, 선정비를 믿지 않았던 내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잘 못 세운 비는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아서 오히려 더러운 이름이 전해진단다.
근세에 서얼출신 선각자들과 갑신정변을 일으킨 신진세력이 양반제도를 무너뜨리려고 양반들의 패악을 과장하여 퍼뜨렸다. 또 식민지사관에 의해서도 우리나라 반상제도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내 왜곡시킨 결과라 했다.
사람들은 오해와 편견 때문에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잘못 알게 된 것은 바로잡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오늘도 나는 여러 가지를 깨우쳤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배울 것은 그치지 않는다. 가르침을 주신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 2011. 6.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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