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내 마음을 두고 온 명품도시/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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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내 마음을 두고 온 명품도시
김 학
강릉에서 하룻밤만 자고 그냥 떠난다는 것은 강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역사와 전통의 고장 강릉엔 얼마나 볼거리, 즐길 거리, 먹을거리가 많은데 하룻밤만 묵고 떠난단 말인가? 그런데 이번 제11회 수필의 날 행사에 참가한 수필가들은 고의는 아니지만 그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참 미안한 일이다.
이왕 대관령을 넘어 강릉까지 갔으면 적어도 3박4일 정도는 머물면서 강릉의 풍광에 젖어 보고, 강릉사람들과 정의 탑을 더 높이 쌓았어야 할 일이다. 또 강릉의 곡차(穀茶)와 먹을거리로 배를 채우면서 이승과 저승을 뛰어넘어 사임당과 율곡, 허균, 허난설헌 등 역사속의 강릉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일찍이 강릉을 찾은 풍류객들은 경포호(鏡浦湖)에서 임과 함께 술을 마실 때 다섯 개의 달을 찾아냈다던데,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달의 숫자가 그때와 똑 같은지도 살펴보았어야 할 일이다.
강원도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수필의 날 행사가 열린다는 통지를 받고나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 지 달포 남짓. 나만이 아니라 전주에서 강릉까지 리무진관광버스를 타고 갔던 행촌수필문학회 회원들도 그랬을 것이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참가한 남녀 수필가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소풍 전날 밤 잠을 설치는 초등학생 같은 심정이었다.
7월 15일, 그날은 바로 연암 박지원이 그의 저서《열하일기》중 <일신수필(馹迅隨筆)>을 쓴 날이다. 그리하여 그날을 수필의 날로 정했던 것이다. 해마다 7월 15일은 수필가들에겐 축제의 날이요, 만남의 날이며, 즐거운 잔칫날이다. 더구나 그날이면 이름이나 수필작품으로만 알던 선후배 수필가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친교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기다려지겠는가? 칠월칠석(七月七夕)날이면 까마귀와 까치들이 다리를 놓아주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듯이, 이번 수필의 날은 강릉시가 다리를 놓아주어서 전국의 수필가들이 만날 수 있었다.
강릉에 들어선 우리는 먼저 오죽헌(烏竹軒)을 찾았다. 서울에서 온 수필가들이 한 발 먼저 와 있었다. 오죽헌에 가면 외할머니 같은 사임당과 외삼촌 같은 율곡을 만날 수 있다. 지폐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옛날에 비해 잘 가꾸어져 있어서 볼거리가 참 많았다. 이웃에 오죽헌시립박물관까지 있으니 눈요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5만 원짜리 지폐에는 어머니 사임당이, 5천 원짜리 지폐에는 아들 율곡이 인쇄되어 있다. 이것은 모자가 지폐(紙幣)에 얼굴을 내민 세계 최초의 일이 아니던가? 이런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 강릉이니, 이 역시 강릉의 자랑이 아닐 수 없으리라. 두루두루 구경한 뒤 우리 일행은 서둘러 강릉시청으로 갔다.
강릉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도시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는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養兵說)을, 국어시간에는 허균의 홍길동전을 배웠고,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과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 이야기를 너무도 많이 들었기에 강릉이란 도시에 더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허균이 대관령을 넘어 전라도 부안까지 찾아와서 부안의 명기 이매창과 마음을 나누고 웅숭깊은 변산을 둘러본 뒤 부안에서《홍길동전》이란 고전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강릉을 더 가깝게 여기는 것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강릉은 문학의 향기가 진동하는 고장이다. 강릉이 낳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를 모자문인(母子文人)이라 한다면, 교산 허균과 난설헌 허초희는 오누이문인이다. 이들 오누이는 아버지 허엽과 그의 장남 허성 그리고 허봉과 더불어 허 씨 집안의 5대 문장가로도 일컬어진다. 글 잘 짓고 학문이 높은 이들 5대 문장가는 당연히 강릉의 자랑거리다. 특히 이들 남매를 기리고자 해마다 음력 3월 19일이면 허난설헌문화제를, 9월 둘째 주에는 교산 허균문화제를 열고 있다니 선배를 기릴 줄 아는 강릉사람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일찍이 매천 황현(梅泉 黃玹)이 허봉, 허초희, 허균을 일컬어 초당가문의 세 그루 보배로운 나무라고 칭송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닌 성싶다.
강릉은 효(孝)의 고장이다. 대한민국 어느 고장인들 효의 고장이 아니랴만 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윗마을 핸다리에는 최근에 사모정(思母亭)이 세워졌다. 이 마을 출신 원로 언론인이자 수필가 권혁승 씨가 사비로 세운 정자다. 권혁승 씨가 이 육모정 정자를 세운 것은 강릉을 효의 고장으로 만들고, 강릉이 중심이 되어 효사상(孝思想)을 세계로 확산시켜달라는 뜻이라던가? 그는 또 2010년 31명의 문인들로 백교문학회를 만들었다. 효사상을 주제로 한 제1회 백교문학상 작품을 전국적으로 공모하여 시와 수필분야에서 한 명씩을 뽑아 문화의 달 10월에 시상식까지 마쳤다. 이 백교문학상은 연례행사로 시상된다. 효사상과 애향심을 드높이려고 세운 사모정이 백교문학상과 더불어 효친사상(孝親思想)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효의 고장 강릉은 자연스레 사친문학(思親文學)의 요람이 되었다.
강릉은 바다의 고장이다. 경포호수와 이웃한 경포해수욕장은 여름이면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그뿐만 아니라 주문진해수욕장과 정동진해수욕장 등 강릉 관내에만 해수욕장이 무려 11개소나 있다. 내륙지방에서만 살아온 나 같은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게 바로 그 해수욕장이다. 일망무제의 푸른 동해바다는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탁 트인다.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강릉은 바다와 호수가 있어서 더 아름다운 도시다.
내가 이 경포해수욕장을 처음 찾았던 것은 1965년 가을. 대학시절 설악산으로 졸업여행을 가다가 이곳에서 하룻밤 쉬면서 인연을 맺었다. 또 그 이듬해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휴가병 이종일 일병을 강릉시내 그의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 경포대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긴 뒤 이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라디오에서는 파월 백마부대 용사들의 환송식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경포대해수욕장은 예나 지금이나 넓은 모래밭이 좋다. 그 백사장에 앉아서 파도소리와 먼 바다에서 달려오는 하얀 물보라를 바라보면 온갖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다.
제11회 수필의 날 행사가 끝난 뒤 강릉시청 17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캄캄한 동해바다를 굽어보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맛은 무척 낭만적이었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숙소는 선교장(船橋莊). 조선시대 사대부의 저택으로서 99칸이나 된다는 큰집이었다. 사랑채(열화당)와 안채, 동 별당과 서 별당, 정각(활래정), 행랑채 등 건물이 즐비하였다. 그날 밤에는 우리처럼 관광객들이 많이 머물고 있었다. 옛날 이 집을 찾는 식객들에게 무료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려면 부리는 사람도 많고 만석꾼쯤 되어야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옥이지만 방마다 에어컨과 냉장고,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이 두루 갖추어져 있어서 일류호텔 못지않았다. 이런 선교장에서 잠을 자다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옛날 강릉을 찾았을 때 이 선교장은 그냥 눈요기나 하고 지나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선교장에서 잠을 잔 것이다. 수필이 맺어준 인연이랄까. 내가 하룻밤 묵었던 이 방에서는 조선시대 어떤 선비들이 묵었을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한 뒤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과 허난설헌 생가 터를 찾았다. 연화부수형명당(蓮花浮水形明堂)이란 말이 그럴 듯하였다. 경포호 주변이어서 그런지 나이가 지긋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더 보기 좋았고, 그 소나무가 풍겨주는 솔향[松香]이 그윽하였다. 꽃철인 봄에 찾았더라면 더 좋았을 성싶다.
'천년이 넘는 한국 관광 1번지'라는 강릉시의 광고 문안은 매력적인 구호였다. 강릉은 잠깐 내 마음을 맡겨두고 올만한 명품도시였다. 일행을 태운 리무진관광버스는 박경리 토지문학관이 있는 원주를 향하여 씽씽 달리고 있었다.
(201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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