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선물/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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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선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주간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럭키 세븐이란 7을 행운의 숫자로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개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게도 일곱 번째 행운의 선물이 찾아왔다. 바로 손자를 얻은 것이다.
나는 1남 3녀를 두어 모두 짝을 지어주었다. 내가 외아들로 태어나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외아들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 낳는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아들 하나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셨지만 나 하나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늦게 태어난 것이다. 나는 두 번째에 얻은 아들에게 외롭지 않게 숫자를 더하다 보니 넷이라는 숫자가 되었다. 가족계획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에 이웃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큰딸이 시집을 가더니 아들을 낳기 시작하면서 딸들은 아들만 낳는 것이었다. 큰딸이 아들 둘, 둘째딸도 아들 둘, 제주祭主인 아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막내딸이 이번에 아들을 낳았으니 일곱째다. 그중 손녀딸은 하나밖에 없다. 내 대에서는 귀하던 자손이 자식들 대에서는 풍성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만약에 남의 집에 보낸 딸들이 딸만 낳는다든지 자식 낳기가 힘들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주님이나 조상님께 감사드릴 일이다. 아니 우리 집 삼신할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8월 4일이 예정일이었다. 초산인데 부산에 아무 연고가 없고, 뱃속의 아이가 빠르게 자란다는 의사의 말에 걱정이 되었는지, 막내딸이 한 달 전부터 집에 와 있었다. 그런데 예정일까지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다른 딸들은 열흘에서 한 달까지도 조산을 해서 걱정이었는데 이 녀석은 제 어미 뱃속에서만 태평하게 놀고만 있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이틀 전에 내가 방향을 제시했다. 판단은 본인에게 맡기고,
“은진아, 네 몸이 건강하고 네 뱃속에 든 녀석이 잘 놀고 있으니 출산에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예정일까지 기다렸다가 소식이 없으면 바로 다음날 병원에 입원하도록 하자. 그때에도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면 어떻겠니?”
딸은 피식 웃기만하고 무어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 남편과 상의도 해야겠지' 하면서 기다렸다. 그랬더니 오늘 오전 10시 예약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갔다. 10시 45분쯤 전화벨이 울렸다. 산모는 준비가 되었으니 촉진제를 사용하기로 했다는 아내의 전화였다. 점심을 거의 먹어가는 시간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딸이 분만실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침 휴가차 집에 온 아들과 훗날 제주가 될 손자와 병원에 도착하고 약 20여분이나 지났을까? 우렁찬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의 일곱 번째 행운의 선물이 태어난 것이다. 산모와 손자도 건강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30여분 뒤에 산모와 아기의 뒤처리를 마쳤는지 간호사가 손자를 안고 신생아실로 가려고나왔다. 제 애비 어미를 닮았는지 동글동글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미소도 지어주었다.
‘짜식, 괜찮게 생겼는데…….’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막내딸이 대기실로 옮겼다기에 들어갔더니 환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오늘 따라 더 예뻐 보여서,
“막내딸, 수고했네. 고생 많았지?”
“응, 아빠.”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 내용이 내포되어 있었다. 간호사가 옆에 있다가 하는 말이
“은진이가 소리 없이 울어서 마음이 짠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저 깊은 곳에 있는 눈물이 울컥 솟구쳐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렇지만 내 눈가에는 그새 눈물이 솟아 있었다.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려서 소리도 못 냈을 거야.’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종합병원이라 문제가 있는 임산부들만 진료실을 들락거릴 뿐, 자연분만 임산부는 딸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막내딸의 출산소식은 잽싸게 제 남편에게, 제 언니들에게, 제 이모들에게 전해졌다. 영상통화를 한다는 둥, 서울에서 바로 내려오고 있다는 둥, 제 큰 이모는 산후조리용 보약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가져온다는 둥 야단이었다. 정말로 행복한 날이었다.
홀로 자라면서 외로웠던 애비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난 2011 전북문인 대동제 때 용타스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지금 이대로, 그냥 있어라.’ 내 행복을 깨뜨릴 자 없겠지? 모두에게 감사할 일이다. 많은 분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에게 첫인사로 보여준 티 없이 맑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언제까지나 보여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또 제 부모에게 감사하면서 럭키하게 자라기를 빈다.
(201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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