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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피서길/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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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38회 작성일 11-08-1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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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樂堂의 피서길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나는 교직생활 동안 여러 차례 3학년 졸업반담임을 했었다. 힘들 때마다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주는 동료들 덕에 어려움을 극복하며 무사히 정년퇴임을 할 수 있었다. 그 고마운 동료 5명을 이끌어‘악당樂堂’이라는 이름으로 ‘즐거운 터’를 상징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우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요즘에는 퇴직 후 소일거리를 만들어 가며 한층 더 가까워진 친구들이다. 오늘은 그 모임의 행사로 1박 2일간의 피서여행을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태풍‘무이파’의 영향으로 어제부터 계속해서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일행들과 함께 군산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거칠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속에서 흥겨운 여담을 나누며 안개가 자욱이 끼어있을 선유도를 그려 보기도 했다.‘*보장지步藏之와 좌장지坐藏之’이야기로 한참 해학들의 웃음꽃이 필 무렵,‘따르릉!’전화벨이 울렸다. 폭우로 도로가 유실되고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피서는 물 건너갔으니 오지 말라는 선유도 민박집의 친절한 안내전화였다. 예상은 했지만 모처럼의 나들이인데, 인터넷 예약금만 태풍에 날리고 아쉬움에 젖었다. 하지만 “악동惡童들이 한데 모였는데 누가 앞길을 막아! 이왕 만났으니 다른 곳이라도 가자.” 우리는 긴급히 진로를 변경했다. 아리울이 굼실거리는 새만금방조제로 차를 몰았다. 하늘에서는 시커먼 구름이 떼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강물로 변한 것일까, 불붙은 빗발의 심지는 꺼지지 않고 줄기차게 뿌렸다. 보이는 것은 쭉 뻗은 샛노란 차선뿐이었다. 바다와 하늘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린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을 뿐, 오가는 차량도 없는 백야의 독주獨走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의 리듬과 함께, 격포를 지나 모항 해변의 둘레길을 달렸다.‘바다가 보이는 추억의 카페’에서 *양촌리 커피로 모처럼 만에 쌓인 입심들을 한껏 털어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물을 어떻게 머리에 이고 다닐까. 궁금증을 갖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검정 망토를 걸친 먹구름이 몹시 찌푸린 얼굴로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좀 풀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기가 막혀서 라디오를 켰다.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우리의 주행선지인 고창 심원마을이 오늘의 *곤돌라(gondola)였다. 구시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물(비?)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양동이로 퍼붓는 것 같은 물 폭탄을 폭포수로 받아내며 산등성이마다 물기둥을 뿜고 있었다. 거기에다 역마살이 잔득 낀 물길에, 논들은 온통 물바다를 이루고 비닐하우스와 각종 창고는 물론 주택까지 물에 잠기다보니‘심원마을’이 섬이 되어 아우성이었다. 물난리에 놀란 함성들이 여기가 선유도인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며칠 전 재해방송 긴급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눈을 의심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장면들이 지금 코앞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온갖 몸짓이 돌변하는 수해의 현장은 넋을 잃게 했다. 홍수의 똬리를 틀고 물에 잠긴 도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운전하다가 구시포 못미처 어느 식당에서 풍천장어로 점심을 먹고 해수찜질방에서 여독을 풀었다. 귀갓길이다. 번갯불을 따라 우르릉 쾅쾅, 무서운 굉음으로 차바퀴도 운전대도 휘청거리는데 가까스로 정읍 휴게소에 다다르니,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마저 우중충한 표정들이었다. 심난한 마음을 아이스크림으로 달래고 차창 밖 와이퍼들의 트위스트 춤 틈새로, 얼룩지는 시야를 훔치며 전주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는 웬일인가. 남쪽 하늘의 구름이 흩어져 밝은 하늘이 해맑은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만경강 상류인 송천동 전주천 냇물이 강물처럼 불어나 제방키에 가까워져서 둔치너머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차에서 내릴 때마다 펼쳐들었던 우산이 이제는 홀가분하다며 꽁무니를 내렸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내린 폭우는 숱한 농민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루의 종점에서 후줄근하게 젖은 옷을 챙기면서 갖가지 상념에 잠겼다.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온 생의 무지無知가, 인간들이 저지른 대재앙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Retour a la nature)'고 한 프랑스 낭만주의 선구자인 루소의 말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이 경구는 오늘의 우리에게 들려주는 경종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오늘 함께한 친구들의 즐거운 모습에서 나는 따뜻한 인간미를 읽으며 안타까운 심정을 다소나마 위로받았다. 비록 연일 쏟아진 물세례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악당’의 피서였지만, 하늘이 선유도행을 말려 주었기에 무사히 하루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밤의 여로에 올랐다. 주 * 보장지步藏之와 좌장지坐藏之 : 천하 난봉꾼으로 소문난 이항복이 어머니의 꾸짖음으로 마음을 바로잡고 이율곡 선생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면서 율곡 선생과의 첫 대면 때의 있었던 일화다. * 양촌리 커피 : 일반 커피 점에서 보통 파는 커피로 mbc 드라마‘전원 일기’에서 따온 어휘다. * 곤돌라(gondola) : 베니스의 명물인 길고 좁은 배. 길이 9m, 폭 1.5m가량인데, 상앗대로 저어가며 유람선과 나룻배로 사용한다. (2011.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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