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차문/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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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차문(弔車文)
-차야 잘 가거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집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셋집을 살아도 차는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가구 수보다 차량 수가 더 많은 것을 보면 2대 이상 가진 집도 많은가 보다. 20년 전만해도 차를 가진 사람이 적었다. 여유 있는 사람이나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점점 차를 가진 사람이 많아지자 나도 사고 싶었다. 교장이 차가 없어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마침 큰아들이 추석에 다니러 왔다가 차를 사주어 타게 되었다.
16년 동안 타고 다녀서 정이 듬뿍 들었다. 조금 멀리 가는 데는 항상 동행이었다. 형제나 자녀랑 늘 이렇게 붙어 다닐 수 있을까. 내 자녀들도 모두 멀리 떨어져 있으니 큰 행사가 있거나 명절이나 되어야 만나는 데 차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아내와 여행을 할 때도 같이 갔고, 고향을 방문할 적에는 틀림없이 함께 갔었다. 강원도 설악산으로, 전라남도 해남 땅끝으로, 딸네 집으로 나다녔다.
차는 말을 잘 들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멈췄다. 왼쪽으로 가자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자면 오른쪽으로 갔다. 시간에 쫓기면 빨리 가고, 천천히 가자면 느림보가 되었다. 추울 때는 훈김이 나와 차안을 따뜻하게 하고, 더우면 찬바람이 나와 땀을 식혔다. 어두우면 길을 밝혀주고, 위험할 때는 소리도 질렀다. 어찌 그리도 말을 잘 듣는지 충실한 나의 도우미였다.
차가 없었더라면 내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을 게다. 조상의 묘를 자주 찾아가 잡풀을 뽑을 수 있었던 것도 차 때문이었다. 만약 차가 없었다면 버스를 타고 가서 한참 걸어야 하니 어떻게 자주 갈 수 있었을까. 고향 사람들이 풀이 수북한 산소를 보고 욕을 했을 것이다. 천만 다행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차가 있어서 가능했다. 손자손녀가 온다고 하면 역으로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귀여운 아이들을 얼싸안고 좋아한 것은 모두 승용차 덕이다. 손녀들을 데리고 한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가기도 하고, 맛있는 전주 음식을 사줄 때도 차가 실어다 주었다. 손녀들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산소를 찾기도 하고, 둘째딸네 식구들과 아름다운 보성 차밭을 구경한 것도 차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차를 세 번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출근길에 어떤 여인이 들이받아 왼쪽 앞 범퍼가 부서졌고, 두 번째는 명절 때 큰딸을 시집에 데려다 주고 오다 이동교를 건너서 신호를 위반한 다른 차가 왼쪽을 받았다. 상대가 잘못하여 일어난 사고였다. 몸을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세 번째는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좌회전을 하려는 찰라 택시가 달려와 스쳤다. 전방 주시를 잘못한 내 탓이었다. 아까운 차를 세 번이나 다치게 하여 마음이 아팠다.
부딪쳐 멍들고 세월이 흐르자 고장이 잦았다. 길을 잘 가다가 갑자기 서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서 고치기도 여러 차례였다. 낡은 부속을 바꾸고 손질을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때가 많았다. 속도를 가리키는 바늘이 잘 돌지 않고, 달리는 소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사람도 병들면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듯이, 자동차도 치료를 자주 해야 했다. 카센터신세를 지면서도 오래오래 나와 수명을 같이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타고 다니기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사위가 제 차를 준다고 해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은 더 타도 되는데 아쉬웠다. 오랫동안 정이 듬뿍 든 차라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피붙이가 세상을 떠나면 이런 기분일까. 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하면 이런 마음일까.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폐차장 차가 데려가기 좋은 곳으로 몰고 가서 기다렸다. 전주서부폐차장 견인차가 와서 차량 등록증을 가지고 사망신고를 하러 떠났다. 견인차에 끌려가는 차를 바라보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16년이나 고락을 같이한 승용차가 끌려가니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누구를 원망하랴, 내가 보낸 것인데……. 나는 무정한 사람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타던 승용차를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이왕 끌려갔으니 남은 몸체나마 제철소로 들어가 새로운 쇠로 탄생하여 다시 차가 되기 바란다. 그리하여 다시 나와 만났으면 좋겠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게 세상 이치라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다.
( 2011. 8.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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