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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조물주/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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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9회 작성일 11-06-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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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조물주 김 학 나는 날마다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내는 아침마다 내 몸무게를 재어 달력에 기록한다. 살이 조금이라도 빠진 날엔 기분이 좋지만 어제보다 더 무거워지면 기분이 언짢다. 하루 한 끼 정도는 김치죽, 콩나물죽, 아욱죽 아니면 무밥과 콩나물밥 등 보릿고개 시절에 먹었던 음식을 먹어도 몸무게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날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수밖에. 서른한 살 때 내 몸무게는 68킬로그램으로서 비교적 날씬했었다. 그런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무려 86킬로그램을 오르내린다. 약 달포 전 한 달쯤 술을 마시지 않고 음식을 조절했더니 83킬로그램까지 내려갔었다. 그러나 다시 술을 입에 대면서 몸무게는 또 오름세로 돌아섰다. 마치 증권시세처럼 내 몸무게는 날마다 춤을 춘다. 담배를 끊듯 술을 끊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담배야 혼자 피는 것이니 끊어도 대인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술은 다르다. 정다운 사람들과 만나서 주거니 받거니 술 한 잔 마시는 재미가 얼마나 좋던가? 이쯤 되면 조물주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주만물을 창조하느라 고생하신 조물주께서 실수인지 아니면 고의인지 '살'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히 처리하신 것 같다. 간(肝)과 같은 중요한 장기조차 사람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들면서 왜 '살'은 주고받을 수 없게 만들었느냐 그거다. 아내는 내 몸무게의 절반인 43킬로그램이다. 그러니 아내는 살이 찌고 싶을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아내에게 선뜻 내 살을 10킬로그램쯤 떼어주면 아내는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부부애(夫婦愛)가 깊어져 내가 날마다 세끼 밥을 차려달라고 해도 '삼식이놈'이라고 욕을 하지도 않을 텐데……. 조물주는 내가 아내에게 그렇게 선심을 쓸 기회마저 막아버렸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의 요리솜씨가 좋아서 내가 이렇게 살이 쪘다면서 얼렁뚱땅 넘길 수밖에 도리가 없다. 가난한 고학생이 혈액원에 가서 피를 팔고 그 돈으로 배를 채우며 공부를 하듯, 나처럼 살찐 사람들도 살을 팔 수 있다면 용돈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살을 주고받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분명 조물주의 실수다. 아니, 조물주도 기술적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살만 주고받게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일까? 영국의 소설가 셰익스피어는 발 빠르게 《베니스의 상인》이란 희곡을 썼다. 베니스에 사는 유태인 샤일록은 기독교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자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한테서 3천 다카트의 돈을 빌려서 친구 밧사니오에게 꾸어주었다. 샤일록은 이자 대신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하였다. 밧사니오는 그 돈을 갖고 베르몬트에 사는 포샤를 찾아가서 구혼을 하였다. 막대한 재산과 미덕을 갖춘 포샤에게는 방방곡곡에서 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상자 고르기' 시험을 치러 신랑감으로 뽑힌 밧사니오는 드디어 결혼반지를 받는다. 그때 베니스에서 안토니오의 배가 전부 난파당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밧사니오를 먼저 베니스로 보낸 뒤 포샤와 네릿사는 법학박사와 서기로 변장하고 급히 베니스로 달려간다. 젊은 박사 발다지로 재판장에 등장한 포샤는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는 그대의 것이다. 당 법정이 이를 허락하고, 국법이 그것을 시행한다." 고 판결을 내린다. 그 순간 샤일록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그러나 포샤는 뒤이어, "단, 이 계약서에는 한 방울의 피도 허용되지 않았다. 기독교도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베니스의 법률에 따라 그대의 토지와 재산은 모조리 국고에 몰수한다." 명 판결을 내린 포샤는 밧사니오에게서 결혼반지를 빼앗아 베르몬트로 돌아간다. 나중에 베르몬트로 찾아온 밧사니오를 맞아 포샤는 결혼반지 문제로 놀려주고 나서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그때 안토니오의 상선들이 무사히 귀항했다는 기쁜 소식도 날아든다. 이것이 이른바 《베니스의 상인》이란 작품의 줄거리다. 살코기 재판[人肉 裁判]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와 친구 밧사니오와의 우정이 그 소재다. 그러나 그 외에도 물질과 정신, 사랑과 미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며, 인간에게 부여되는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법률적 해석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요즘엔 살찌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채소에 비해 고기가 푸대접을 받는다. 그런데도 쇠고기와 돼지고기 값은 여전히 내리지 않는다. 고기 중에는 크기로 값이 매겨지는가 하면 무게로 값이 정해지기도 한다. 소와 돼지고기는 무게로 값을 매긴다. 때때로 나는 소와 돼지가 부러울 때가 있다. 사람도 소나 돼지처럼 무게로 값이 결정된다면 86킬로그램인 내가 43킬로그램인 아내보다 훨씬 더 비쌀 테고, 또 그만큼 사람대접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날마다 살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될 텐데……. (2011. 6. 15.)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등단/《수필가, 고맙다》등 수필집 11권, 수필평론집《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011-9641-3388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http://blog.daum.net/crane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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