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의 모성애/정성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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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모성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성려
“엄마, 빨리 나와 보세요. 얼른요.”
퇴근해서 돌아오는 딸아이가 대문 앞에서 차를 세워 놓은 채 큰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뛰어 나갔다. 딸아이가 운전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대문을 들어오다가 대문에 차가 부딪쳐 겁을 먹고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 앞에 버려진 고양이새끼를 발견한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새끼고양이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좋아서 부르는 소리였다.
동물 중에서 개와 고양이는 사람들과 제일 친숙한 동물이다. 나도 강아지와 고양이는 좋아한다. 애완견은 지금도 키우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친정에서는 가을에 추수를 하면 곡식이 많기 때문에 쥐가 많아서 고양이를 키웠다. 고양이도 예뻐하는 줄 알고 나를 졸졸 잘 따랐다. 집에 고양이가 있으면 쥐가 얼씬거리지 않았다. “야옹!” 고양이 소리만 들려도 쥐는 오지 않았다. 고양이와 상극인 쥐는 고양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농촌에 살다보니 가끔 도둑고양이들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무서운 쥐를 볼 수가 없다.
얼른 새끼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누가 버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린 새끼고양이였다. 또 앞을 보지 못했다. 처음엔 ‘너무 어려서 아직 눈을 뜨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눈에 염증이 있어 눈 주변이 진물로 범벅이었다. 난감했다. 누가 우리 집 앞에 내다버렸을까? 하찮은 동물이지만 다른 곳에 버리자니 불쌍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 쩔쩔매고 있었다. 집으로 데려와 키우자니 앞을 못 보는 것을 어찌 키운단 말인가. ‘차라리 다리가 부러졌더라면 치료해서 키우면 괜찮을 것을’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딸아이는 물과 우유를 먹인다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새끼고양이가 어미젖이 아니어서 그런지 우유는 먹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었다. 어찌한단 말인가. 딸아이한테 집으로는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다. 동물도 정이 들면 헤어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고양이도 아니고 눈먼 고양이를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그런데 딸아이는 불쌍하다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처마 밑에 수건을 깔아주고 잠을 재운다고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딸아이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먼 고양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죽을까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자다가 깨어서도 나가 보았다. 어미를 잃었으니 어미를 찾는 소리를 할 텐데 소리는 전혀 내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나가보니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살아있었다. 물과 우유를 주었는데 아예 입도 대지 않았다. 죽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고양이의 운명에 맡기자.’ 그렇게 마음먹고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미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새끼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이상해서 얼른 나가보니 어미고양이가 새끼고양이를 입으로 물고 가는 것이 아닌가. 아무 소리도 않고 있던 눈먼 새끼고양이가 어미 소리를 듣고 반가워 소리를 낸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정말 놀라웠다. 어미고양이가 밤새도록 새끼를 찾아다니며 얼마나 헤맸을까? 정상적이지도 않은 눈먼 새끼를 잃고 밤새 찾아 헤맸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텔레비전에서 부모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매정한 부모가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저절로 혀를 찼다. 힘들어서 자식을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철없는 청소년들이 사랑에 빠져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저질러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 몰인정하게 한 생명을 버렸다고도 했다. 어떤 아빠는 아기가 운다고 내던져 죽게 하고, 또 어떤 엄마는 게임에 빠져 아기에게 우유를 주지 않아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뉴스도 보았다.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저지르고서야 잘못을 뉘우쳤을까?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얼굴을 모자 아니면 옷으로 가리고 TV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 보도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상에는 동물의 모성애보다도 못한 부모가 없지 않다. 하찮은 고양이도 눈먼 새끼를 버리지 못하고 밤새도록 찾아 헤매지 않던가. 동물의 모성애도 못난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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