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피아골계곡과 빨치산기념관/강우택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피아골계곡과 빨치산기념관/강우택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37회 작성일 11-05-26 05:17

본문

피아골계곡과 빨치산기념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강우택 어느 해 가을, 친구와 함께 지리산의 피아골계곡을 찾은 적이 있다. 때마침 빨갛게 물든 단풍이 계곡의 파란 물과 어울려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참 걷다 보니 무슨 팻말이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빨치산기념관'이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동굴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는 사람 모양의 조각품들이 세워져 있었고, 손에는 총들이 쥐어져 있었다. 얼핏 보아 지난날의 빨치산을 형상화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조각품들은 군데군데 부서지고 까맣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서 있었다. 볼품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이 아름다운 계곡에 전쟁의 유령과도 같은 기념관을 만들어 놓은 까닭이 무엇일까? 일본의 작가 '히로세다카시'는 이스라엘을 여행하다가 이스라엘 여인의 손목에 찍힌 나치강제수용소 수인번호를 우연히 보고, '왜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명작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에 이 기념관을 세운 것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지난 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으라고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작가 '이태'의 소설 '남부군'이란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전쟁 중 패주하는 인민군의 무리 속에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섞여 있었다. 그 소녀들은 마치 가을 소풍이나 온 것처럼 재잘거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어린 소녀들은 곧 들이닥칠 군경토벌대에 의해서 희생되어 이곳 산야의 어디에서 백골이 되어 파묻힐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분명 그날 운수가 사나워 길을 잘못 찾아든 것뿐이었다. 그 소녀들이 살아 있다면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우리와 함께 이 계곡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날 전쟁이란 구실 아래 마을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마구 죽였던 저들을 캄캄한 동굴 안에 가두어 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 생각하였으나 기념관에 대한 수수께끼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녀들의 나이 무렵일 때 나는 남쪽의 한 항구도시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학교를 오가는 골목길에서 이따금 대문이나 담벼락에 빨간 페인트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집들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런 집들을 가리켜 빨갱이 집이라고 불렀다. 그런 집들은 대부분 초토화되어 폐가나 다름없었다. 얼마 뒤 이 땅에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고, 그 뒤 그런 집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19세기 초 마르크스나 키엘케고르 등의 사상은 옳든 그르든 20세기의 혁명적인 이데올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 사상이 20세기를 산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들 발치산과 같은 공산당원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이데올로기를 위해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은 옳은 일일까? 우리는 지난날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때문에 반목하고 피를 흘러야만 했던 쓰라린 상처를 갖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그가 처하고 있는 환경과 다른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삶은 그 어떤 이념 체계를 통하여 비로소 그 어떤 의미를 찾게 된다. 마르크스는 그 자본론에서 우리 노동자계급은 압제와 빈곤과 착취에 억눌려 살아 왔으므로 기본질서에 맞서 조직을 만들어 싸우는 게 우리의 이상이요 사상이라고 한 바 있다. 그 사상처럼 전쟁 전에 저들만 압제와 빈곤에 시달렸단 말인가? 저들은 폭력 수단만이 진정한 인민혁명이며, 반권위주의의 계급투쟁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지난날 그들이 저질렀던 죄악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저들을 민족적 아량으로 용서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음 이 계곡을 다시 찾을 때에는 꼭 내 손자들을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 들이 저 나쁜 아저씨들과 이 계곡에서 싸워 내쫓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일러주어야겠다. 아직도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이 나라에 괴물 같은 저 기념관 따위는 다시 세워지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