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택배/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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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의 택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갑작스런 택배를 받았다. 보낸 사람의 주소도 성명도 없고 핸드폰 전화번호만 적혀있었다. 궁금하여 전화를 했다.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잘 못 기록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포장 테이프에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리로 전화를 해 보았다. 제주도에 여행을 온 손님이 부쳤다고 했다.
택배를 보낼 때는 받는 사람에게 미리 알리고 보내는 것이 상례다. 우리 아들딸들이 보낼 때도 틀림없이 전화부터 했었다. 이상했다. 누가 보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이라는 게 번쩍 떠올랐다. 어느 제자가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매년 선물을 보내는 노무사사무실 원장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물품이 달랐다. 선물용 공산품을 보내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냉동생선이다. 번번이 주소와 성명을 틀림없이 표기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없다. 그러니 그 사람은 아니다. 또 충남 성환에 사는 제자가 생각났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큰 상자로 보내주어 이웃과 나누어 먹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혹시 그 귀염둥이일까. 헤헤하고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몇 주일 전에 마이산 벚꽃을 구경하러 왔다가 가는 길에 전화를 하며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다음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 나를 좋아했다는 제자가 보냈을까? 요즘은 60대 중반의 할머니라 손자들을 키우느라 바쁠 텐데 택배를 보낼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선물을 보낼 성격이 아니었다. 아니면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제자일까. 아니다. 자주 만나는데 직접 전하지 택배로 보내겠는가. 얼마 전에 서예용 필묵을 선물로 받았는데 또 보내겠는가 싶었다.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사이 아내가 스티로폴 포장을 풀었다. 생선인데 먹기 좋게 손질하여 냉동한 것이다. 고급스러운 선물이었다. 이런 선물을 보내고 연락도 안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나는 교직에서 43년 반 동안 복무했다. 고향이고 모교인 김제난산초등학교에서 20년이나 교사로 있었다. 오래 있다 보니 6학년 담임을 7번이나 맡았었다. 6학년을 담임해야 선생님으로 대접 받는 게 보통이다. 동기동창회 때는 초청을 받아 여러 번 참석한 일이 있다. 고향이고 생활 근거지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느 마을 누구하면 즉시 떠올랐다.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은 학생들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처신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곧 소문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부족하나마 고향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한 통의 전화로 의문이 풀렸다. 전주에 사는 김 과장이 보낸 것이었다.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스승의 날을 맞아 내 생각이 나서 보낸 것이란다. 옥돔이니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라는 당부까지 했다.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선생에게 이런 값진 선물을 보내다니……. 더구나 졸업한 지 50년도 훌쩍 넘었는데 지금도 나를 생각해 주니 참으로 고마울 뿐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옛날부터 선물은 있었다. 마음의 표시로 정성껏 보내는 것이 예의였다. 값비싼 것만 좋은 선물은 아니었다. 서로를 존경하고 감사의 표시로 주고받았다. 명절 때 달걀 한 꾸러미를 보내고, 생일 때 미역 한 가닥을 전하는 것은 마음이고 정성이다. 받는 사람이 부담 되지 않는 정(情)의 교류였다.
그런데 요즘은 선물이 뇌물이 되기도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전하는 돈 뭉치도 있고, 사업자가 관청에 전하는 미끼도 있다. 보도를 보면 그런 것 받아먹고 목이 달아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목에 걸릴 가시일 줄 뻔히 알면서 그렇게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싶다.
나도 스승의 날인 내일 스승님을 모시고 점심이라도 대접해야겠다. 나는 오늘 제자에게서 한 수 배웠다.
( 2011. 5.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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