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꾼/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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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과 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수필은 작가의 품격이 드러나는 진솔한 표현을 써야 한다고 했다. 글 자체만으로는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주 좋은 글들이 많다. 그런데 막상 그 글을 쓴 작가를 만나보면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전문가의 수필일수록 더욱 그렇다.
수필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기에 나는 몇 군데 수필 강의를 들으러 다닌 일이 있었다. 강사마다 특징 있는 다양한 강의를 했다. 대학교수도 있었고 교수는 아니지만 수필전문가도 있었다. 강의 내용을 들으면서 전문가에게서 배우는 것이니 믿고 따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의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강의를 듣는 느낌도 사뭇 달랐다.
습작삼아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강사의 지도하는 방향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글의 주제는 하나인데 글속에는 두 개의 소주제가 들어 있었다. 또한 남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어떤 때는 글이 장황하게 늘어지면서 무슨 해설문인가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써놓은 글들을 꺼내 읽어 보니 별로인 것이 많았다.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한 글인지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글을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감이 잡혔다. 강사가 대학교수나 전문가라고 해서 또는 직위나 명예가 높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었다. 글 씀씀이의 깨우침 이전에 앞서는 것은 인성이었다. 그럴싸하게 입발림하는 것이 아닌 진솔한 표현이 담긴 참 인간의 배움이 중요했다.
우리는 흔히 글을 쓰는 사람을 ‘문인’이라 하고 장사하는 사람을 ‘장사꾼’이라고 부른다. 이 ‘人과 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인人’은 ‘사람을 예스럽게 한문으로 나타낸 말’이라 했다. 그리고 ‘꾼’은 일종의 ‘속어’로서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혹은 즐기는 일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나와 있었다.
전에 수강을 했던 모 강사의 글은 정말 훌륭했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글을 쓰는 전문가는 표현기법이 능수능란하다. 그런 분들은 직접적인 체험을 하지 않고도 간접적인 방법과 생각만으로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수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강의를 듣다 보면 강사의 인품을 알게 된다.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함이 글로 담겨졌을 때 독자는 감동을 받는다. 이것이 문인의 글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이것은 단순한 글꾼의 장난 글이 된다. 겉포장만 그럴듯할 뿐 사람과 글이 따로 노는 수필인 것이다. 여기에서 수필 한 토막을 인용한다.
“좋은 날 아침, 맨 얼굴로 산책길에 나섰다. …중략… 평범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새삼스럽게 되돌아보아졌다. …후략….”
- <수필의 얼굴> 시작부분에서
글에서 분명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산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말과 글에서는 그렇지를 못했다. 수필의 대명사는 체험이다. 그 체험을 통해서 쓰는 진실한 글만이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사람들의 칭찬거리와 장점을 찾아 주면서 긍정적인 삶과 함께 좋은 인성과 덕성이 깃든 품성이 아쉬웠다.
우리 조상들은 글공부를 하는 사람을 ‘선비’라 했고 상인들을 ‘상민’이라 하여 신분을 달리 구분했다. 즉 문인은 ‘양반’이요, 상인은 한 품격 낮은 ‘천민’으로 여겼다. ‘人과 꾼’ 역시 다를 바 없다. 이런 ‘글꾼’이 쓰는 글은 비록 잘 쓴 글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위선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수필을 공부했다. 여러 달 노력해보니 할 만 하기에 이를 토대로 글도 써 보았다.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나는 두 번의 삶-한 번은 실제로 살아온 삶이요, 다른 하나는 뒤돌아보는 삶-을 통해서 ‘참’을 그리는 수필을 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꾼’이란 어휘는 ‘人’에 비해 품격이 낮은 말이다. ‘쟁이’나 ‘질’이란 표현과 같은 급에 해당하는 속어다. 글을 쓰는 분야가 아닐지라도 이와 같은 비유는 세상살이 마디마디에서 적용된다. 같은 뜻이긴 하지만 이왕이면 ‘人’속에서 글도 쓰며 살아가야 하려니 싶다.
(2011.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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