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성인봉 정상에 오르니/이종희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성인봉 정상에 오르니/이종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470회 작성일 11-05-25 05:43

본문

성인봉 정상에 오르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주간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천혜天惠의 섬 울릉도. 5월 20일 새벽 4시 30분 전주 ㅂ산악회가 주관하는 울릉도, 독도 섬 산행에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 정동진역에 도착했다. 본래 10시에 묵호항에서 승선할 계획이었으나 전날 풍랑으로 배가 출항하지 못했다. 그래서 울릉도에 묶여 있던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증편 운항으로 12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에서 준비해온 점심식사를 마치고 승선했다. 출항할 때는 잔잔하던 바다가 1시간쯤 지났을까, 너울성 파도가 쳐 배가 흔들렸다. 나는 새벽잠도 설치고 멀미를 할 것 같아 잠을 청했다. 한참 단잠에 빠졌는데 소란스러워 잠에서 깨니 어느덧 도동항에 다다르고 있었다. 숙소를 배정받고 몇몇 회원들과 함께 도동등대 둘레길을 거닐었다. 육지와는 달리 이름 모를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서로 이름을 물어 보았으나 모두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섬은 구멍이 뚫린 현무암과 모래, 흙, 자갈 등이 섞인 조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30여분쯤 걸었을까, 신아대 군락지를 돌아 등대에 도착했다.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저동항이 보였다. 좌측에는 촛대바위가 우뚝 서 저동항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 주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 동해의 푸른 바다를 감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일 아침 산행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6시 30분에 11명은 산악대장의 뒤를 따라 산행에 나섰다. 나머지 회원들은 회장의 안내로 독도관광을 떠났다. 나는 성인봉 산행을 위해 매주 2회씩 모악산 등산을 해왔다. 등산은 대원사 입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산과 달리 시작부터 가파르기가 절벽 같고 시멘트로 포장되어서 무척 힘들었다. 아마 우리 어머니께서는 43세의 나이에 나를 낳으실 때 이보다 더 힘드셨을 것을 생각하니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위해 쌀 포대를 머리에 이고 익산시내의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셨을 어머니는 얼마나 고개가 아프셨을까. 한 푼이라도 더 받아 자식의 학비를 마련하려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쌀 주인을 찾아다닌 어머니,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용돈 한 번 넉넉하게 드리지 못한 일이 너무 후회스럽고 죄스럽다. 300m마다 구조지점 표지판이 길을 안내해 주었다.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남은 거리를 계산하며 피로를 달랬다.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섬고로쇠나무, 섬조릿대, 솔송나무, 섬단풍나무 등 희귀수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원시림 등산로는 잘 닦여져 있었다. 시멘트길500여m를 지나니까 흙길이었다. 딱딱했던 시멘트길보다 훨씬 푹신푹신했다. 평평한 길인가 싶으면 경사길이 교차되는 동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외아들로 자라면서 어릴 적에는 귀여움도 많이 받았지만 인생길을 가르쳐 준 안내자가 없어 고생도 많이 했다. 한때는 서울에 올라가 무엇인가 해보려고 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던 청년시절은 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다짐을 하게 된 계기였다. ‘내 자식들에게는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자식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비의 역할을 다해야겠다.’ 나는 자식들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싶었다. 두어 시간쯤 걸었을까? 일행이 잠시 쉬었다 가자고 제안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숯덩이라는 별명을 가진 회원이 막걸리 잔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컵으로 3분의 1쯤 따라주는 막걸리 맛이 꿀맛이었다. 여자회원은 곶감을 또 다른 회원은 참외를 깎아주며 권하였다. 나도 어젯밤 빵집에서 사온 생과자를 권했더니 어디서 사왔느냐며 맛있게 먹었다. 자식들을 결혼시키며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한 기억이 떠올랐다. 남보다 많다는 네 자식들을 큰딸만 전주에서 혼사를 치르고 나머지 셋은 서울에서 치렀다. 벌써 손자가 5명, 손녀가 1명이다. 그리고 막내딸도 8월초에는 아들 손자를 안겨줄 예정이다. 정말로 사랑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는 자식들이다. 다시 출발하여 원시림 숲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원시림에서 뿜어내는 맑은 향내가 코를 자극하여 내 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나무계단과 흙길 걷기를 거듭하다보니 어느덧 성인봉聖人峯 정상에 다다랐다. 크지 않은 바위에 '성인봉'이라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성스러운 모습이라 성인봉이라 불리는 이곳은 해발 986.7m이다. 표지판 둘레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전망대로 향하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나리분지가 널따랗게 펼쳐져 있었다. 섬 나리가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나리분지라고 했다고 한다. 회원 한 사람이 버너에 불을 붙이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역시 산악인은 달랐다. 따끈한 커피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향이며 맛이 끝내주었다. 40년 교직을 마치던 지난해 8월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있었기에 내가 교직에 봉직할 수 있었고, 교직에 몸담았기에 흠 없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모를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후회 없는 교직생활이 자랑스럽다. 졸작이지만 교직생활을 정리하여 260쪽짜리 퇴임집도 출간하였다. 내용은 물론이고 표지까지도 내 혼이 밴 작품이기에 의미가 깊다. 성인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끝이 없을 정도로 나무계단이 길었다. 어림잡아 1,000여 계단은 되는 것 같았다. 계곡과 나란히 걷는 좌측 계곡엔 아직도 4월의 잔설이 남아 있어 등산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숯덩이회원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잔설로 내려가더니 눈을 한 움큼 뭉쳐서, “눈이다! 눈 받아라.” 하며 던지는 것이었다. 눈이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옆에는 성인수라는 약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바가지로 받아 마셨다. 정말 시원했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나리분지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을 많이 만났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나무계단을 벗어나니 편안한 길이었다. 이 길은 평탄하고 잘 닦여져 있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나의 남은 삶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삶을 위해 일주일을 요일별로 일정을 세워 행하고 있다. 섹소폰, 수필공부, 서예, 성당생활이 그것이다. 조금 힘들기는 해도 재미가 있다. 그동안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고 자식들 가르치느라 못한 것들을 배우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서예가와 수필가의 칭호도 얻고 싶다. 또 지인들에게 멋진 섹소폰을 연주해 주고 싶다. 그러면서 마시는 소주 맛은 색다를 것 같다. 산행을 마치고 나리동 늘 푸른 산장에서 산채비빔밥에 더덕부침 그리고 씨껍데기 술맛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점심식사 후 울릉도 택시를 타고 육로관광을 하였다. 바닷가에 기기묘묘한 섬과 풍경들이 베트남의 하롱베이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 마치라는 신호였다. 일행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삼겹살과 소주로 피로를 달랬다. 여행은 책을 읽는 것이고, 등산은 인생을 음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울릉도 성인봉 산행은 내 인생을 음미해본 좋은 산행이었다. 독도관광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다음기회로 미룰 수밖에. 앞으로 남은 인생을 뜻있고 보람차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011. 5. 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