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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짜 순천관광(1)/이윤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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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2회 작성일 11-04-2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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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짜 순천관광(1)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행촌수필문학회 이윤상 우수가 지나고도 10여일이 되니 혹한, 폭풍, 눈 폭탄 등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산골짜기의 얼음도, 봄기운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2월의 마지막 날, 새벽부터 전주에는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촉촉이 내렸다. 겨울잠에 취해서 곤히 잠들었던 동물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고 꿈틀거린다. 전주천의 버들강아지도 기지개를 켜고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전주역에서 하행선 첫 번째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7시 50분에 간지러운 봄비를 맞으며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남원까지 길고 짧은 터널 22개를 통과하고, 곡성, 구례구, 압록, 순천까지 5개의 터널을 지나서 9시 20분쯤 순천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순천역 광장 서쪽 관광안내소로 가니, 바로 앞의 순천시내투어버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관광가이드가 나와서 환영인사를 했다. 학년말 방학 때라 서울에서 손자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았다. 버스 출발시각에 잘 맞출지 초조했는데, 20분이나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순천시청이 운영하는 관광버스라서 우리부부는 경로우대로 30% 할인까지 받았다. 종일 관광버스를 타는데도, 1인당 4천 원으로 시내 택시 한 번 타는 정도로 값이었다. 순천투어 제1코스는 드라마 촬영장이었다. 예비군부대가 주둔했다가 떠난 자리를 방치해 오다가 드라마 세트를 건립하여 2006년에 개장한 오픈 세트장은 sbs의 "사랑과 야망", mbc의 "에덴의 동쪽" 등 유명한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으로 변신하여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세트장은 3개의 불럭으로 나누어 영구보존할 수 있게 건축되었다. 하나는 1960년대 초, 소도시 순천읍내의 재래시장 모습과,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순천 옥천냇가와 읍내거리, 번화가, 한식당 등을 정확한 고증을 거쳐 재현함으로써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오픈 세트장이 되었다. 둘은 1960년대 서울 변두리 서민들의 삶의 현장, 사진관, 다방, 시장골목을 재현해 놓았다. 셋은 서울의 달동네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돌아가서 서울의 산동네, 달동네를 돌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1962년 서울에 갔을 때, 한강변의 한남동 달동네나, 서대문의 홍제동 산동네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문화관광해설사의 상냥하고 맛깔스런 해설이 관광객들의 귀와 눈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다. 전주에서도 순천의 세트장을 벤치마킹하여 ‘한옥마을에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시설을 확충하고 주차장도 넓히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코스인 유서 깊은 송광사로 향하였다. 제2코스는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 탐방이었다. 송광사는 조계산(884m)도립공원 안에 있다.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며, 계곡에는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만수봉과 모후산이 송광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부터 800년 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고 불교의 전통을 빛내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벌였던 도장이다. 지눌, 진각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승맥(僧脈)을 계승한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3대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하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1951년 공비만행으로 주요 건물이 불에 타버렸다. 1984년~88년까지 8차례 중창으로 대웅전 등 33동이 복원되었다. 송광사 입구에는 8차례 중창할 때마다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최근에는 이곳의 주지로 계셨던 법정 스님의 글이 새겨진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해탈교를 지나서 사찰 안으로 들어가니, 16국사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고려 “고종제서”등 국보 3점이 보존되어 있고,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대반열반경소, 16국사 진영, 경질, 경패, 묘법연화경찬술, 금동요령, 등 보물 16점, 쌍향수 등 국가 문화재 33점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 잡아 웅장한 기상을 나타내며, 각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소리, 낭랑한 독경소리가 관광객들의 발길을 따라 다니는 듯했다.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조계산 속의 곳곳에는 깊은 계곡의 물소리가 적막을 깨고 있으며 크고 작은 8개의 사찰이 있다. 계곡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사철 흐르고, 울창한 노송들이 들어선 송광사엔 천년동안 수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부처님의 자비와 감로법수를 맛보기 위하여 찾아왔던 사찰이다. 순천시 승주읍, 송광면 일대에 이르는 조계산은 1979년 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승보사찰 송광사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간에 쫓겨서 더 샅샅이 사찰을 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점심식사를 30분 안에 마치고 휴식할 틈도 없이 곧바로 제3코스인 낙안읍성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알짜 순천관광(2)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행촌수필문학회 이윤상 남도여행길에 다른 지역을 관광하고 돌아오는 길에 낙안읍성 민속마을 입구만 몇 번 다녀왔었다. 하지만 읍성내부를 샅샅이 돌아보면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삼한시대 마한 땅, 백제 때 파지성, 고려 때 낙안군 고을 터요, 조선시대 성을 쌓고 군 행정을 보던 동헌(東軒), 객사, 임경업 군수 사적비, 낙안장터, 초가집들이 원형대로 복원된 민속마을은 성(城)과 마을이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사적 제30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해공 김길빈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방어에 나섰던 곳이다. 300년 후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엽 장군이 33세 때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石城)으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임경업 군수는 선정을 베풀어 37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에는 이 고장 군수를 비롯한 기관장과. 유림, 사적보존회에서 임경업 장군 공적비 앞 사당에서 추모제를 지낸다. 나는 2년 전 마침 그곳에 갔을 때 추모제 현장을 보고, 군수가 얼마나 선정을 베풀었으면 370여년이 지난 후에까지 주민들이 추모제를 지낼까 생각하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지금도 성안에는 120세대가 초가에서 실제로 살고 있다. 낙안읍성은 농민들이 살아 숨 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이다. 따라서 민속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서 가치가 충분했다. 조선시대에 건축한 객사나 동헌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이 고장이 전란을 겪었어도 소멸되지 않고 낙토안민(樂土安民)의 고장이란 전통을 자랑할 만했다. 다른 지역의 성곽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 자연석을 사람의 힘으로 높이4m, 너비 3~4m로 성곽 총길이 1,410m를 쌓았으니 얼마나 거창한 역사였겠는가. 동내, 서내, 남내, 등 3개 마을 4만 1천 평에 달하는 생활터전을 감싸 안은 듯 네모 형으로 견고하게 성을 축조하여 400년이 다 되었는데도, 지금까지 끊긴 데가 없이 잘 보존된 것을 보면 이곳 조상들의 축성기술이 뛰어났음을 말해주고 있다. 해설자의 말을 들으니, 그 당시에 양반계층과 서민층이 성안에 함께 살면 서민들이 억압받을 수 있으니, 성 밖에서는 양반층이 기와집을 짓고 살았고, 성 안에서는 생활수준이 비슷한 서민층만 초가집을 짓고 오순도순 평화롭게 생활해 왔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낙토안민(樂土安民) 즉 기름진 농토에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사는 곳이 되어 오늘날까지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 용인 민속촌과는 확연히 다른 미풍양속을 간직한 민속마을로서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데 손색이 없었다. 다른 어느 관광지보다 주차장도 넓게 잘 다듬어져 있고, 재래시장 골목길도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다. 더 머물고 싶어도 일정에 맞추어서 다음 제4코스 순천만 갈대숲을 향해 출발하였다. 제4코스는 순천만 생태관광이었다. 우리나라의 생태수도, 순천! 제1의 생태관광지, 순천만의 노을과 별빛과 갈대숲 속에서 가족과 연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세계 제5대 연안습지, 2006년 한국관광공사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선정한 수천만 생태공원은 그야말로 천혜의 습지를 활용하여, 습지안의 농토를 사들이고, 광활한 습지에 갈대를 심고 번식시켜서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전국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순천시에서 8km떨어져있고, 행정구역은 순천시 동사동과 해룡면, 변량면으로서, 39.8km의 해안선에 둘러싸인 곳이다. 순천만은 21.6km의 갯벌, 5.4km의 갈대밭 등 27km 하구 염습지와 갯벌로 구성된 만이다. 순천의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지점으로부터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 전개되는 갈대군락은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으로 가을이면 갈대꽃이 피고, 칠면조가 붉은 빛으로 뽐내며, 흰색 철새가 날아오르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순천만은 오염이 적어 잘 발달한 갯벌과 염습지, 갈대군락이 그대로 보존돼있어 질 좋은 수산물이 풍부하다. 또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하여,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란부리 백로 등 국제적 희귀조 11종과 한국조류 200여종이 월동하고 서식하는 곳이다. 희귀 조류가 많은 지역이어서 탐조를 위한 자연학습장과 국제적 학술연구의 장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각광을 받을 것이다. 순천만 갈대숲을 돌아보고 나오니, 석양노을이 우리의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5시에 주차장을 출발하여 5시20분 순천역 광장에 우리를 내려주니 5시 30분 상행선 열차에 탈 수 있었다.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오늘 하루 일정을 반추해 보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20분이었다. 오늘은 그야말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 알짜 순천관광여행이었다. 나는 지금 참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설이나 추석명절을 앞두고 전주역 대합실에는 노인들이 열차표를 예매하려고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순천관광을 하면서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틀 전에 인터넷으로 전주 순천 간 무궁화호 왕복열차표를 예매했는데, 신기하게도 내 컴퓨터 프린터로 기차표를 출력하여 사용하니, 그렇게 빠르고 편리할 수가 없었다. 공과금 납부나, 축의금, 송금, 이체, 은행업무도 집에서 홈뱅킹으로 처리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얼마나 편리한가.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세상을 살면서도 국가사회에 대한 감사생활을 못하고 불평불만이나 일삼는 사람도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2년 전에는 여수투어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순천투어를 하였다. (2011년 2월 28일 순천투어를 다녀와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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