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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스타킹/곽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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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13회 작성일 11-04-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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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스타킹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곽예순 많은 봄꽃들이 눈을 뜨고 새부리처럼 올라오던 새싹들은 어느새 나뭇잎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나도 오늘은 치마를 입고 좀 봄 기분을 내야겠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일찍 온 문우님들이 나에게 선생님차림이라고 하셨다. 항상 편한 바지를 즐겨 입다가 오늘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쩌다 치마를 입으면 조심스럽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의자에서 일어나다 스타킹에 그만 구멍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가방 속에 한 켤레가 있어 안심이었다. 오늘따라 강의시간이 왜 이리 긴지 모르겠다. 검정 스타킹을 신고 올이 나가면 나는 작은 아버지를 떠 올릴 때가 있다. 우리 아버지는 4형제이셨는데 올해 팔순이신 작은아버지만 김제에서 혼자 사신다. 내가 스타킹을 신고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집에 가는 길에 만경에서 종묘사를 하시던 작은아버지 집에 들렀었다. 빨간색 하이힐에 갈색 스타킹을 신은 나를 보고 하시던 말씀이 오늘 문득 생각났다. “너는 촌스럽게 스타킹 색이 그게 뭐냐? 살색이면 살색, 검정색이면 검정색이지.” 그 말씀을 들은 뒤부터 나는 지금까지 검정 스타킹만을 신는다. 작년 초여름 어느 토요일, 작은아버지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50대 초반에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아마 이십 칠팔년이란 세월이 흐른 듯했다. 조카딸에게 검정 스타킹을 신도록 만든 작은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김제로 갔다. 어떻게 변하셨을까? 아파트 5층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모습에서 가버린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멋지셨다. 은회색 머리와 흰 피부 그리고 분홍색 티셔츠가 잘 어울렸다. 심포 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 너머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지나 망해사를 보니 코흘리개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작은아버지도 옛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의 심포 항은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과 바지락, 꽃게 등을 바구니에 담아 즉석에서 팔기도 했었다. 자식사랑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회를 직접 만들어 상을 차릴 것도 없이 부엌에서 우리를 불러 먹이곤 하셨다. 그 정겨웠던 추억을 만들어 준 곳은 간데없고 새만금공사로 인하여 횟집과 노래방이 곳곳에 들어 서 있었다. 딸자식은 다 소용없다고 했던가. 회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여수 우리 집에 오시면 아나고와 낙지를 사 드렸다. 맛있게 잡수시던 그때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목이 메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했지만 흐뭇해하시는 작은아버지를 보니 기뻤다. 슬하에 아들만 4형제를 두신 작은아버지는 자식들도 가르칠 만큼 가르쳐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잘 살고 있다. 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덜 외로우실까?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기 싫다며 혼자 사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작은 아버지는 한 번은 상처로, 또 한 번은 이혼으로 어려운 노년을 맞고 계신다. “서양속담에 흰 눈이 지붕을 덮었다고 집안의 벽난로가 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게 우리 부모님세대다. 오로지 자식들만 잘되면 노후는 호강할 줄 알았던 그 기대가 어긋나 이제는 외롭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이 아닐까? 젊어서는 동동걸음으로 뛰어다녀도 하루가 부족하기만 했었다. 그 시절 조금만 늦어도 찾는 식구들이 있어 귀찮다고 큰 소리도 질렀건만 지금은 외로움이란 놈이 부모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작은아버지가 면사무소에 근무하실 때는 자전거 뒤에 빨간 홍시, 환타, 요쿠르트와 할머니 간식거리를 꼭 가져오셨다. 그랬던 작은아버지에게서 나는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찾는다. 참 많이도 닮으셨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버지 덕이었다. 마흔 살이 넘어서야 아버지에게 고백을 했던 나는 철이 늦게 든 딸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작년 11월, 다시 작은 아버지를 뵈러 갔었다. 손수 커피를 석 잔 만들어 오셨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7층으로 승강기가 있어 다행이었다. 검정 스타킹 얘기를 하자 웃으셨다. 요즈음 옷은 겉옷인지 속옷인지 구분을 못하겠다고 하셨다. 속에 입은 옷은 겉옷인데 허리 아래로 내려오니 모양새가 안 좋다면서 나를 보고는 절대로 그렇게 입지 말라고 하셨다. 작은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우리 7남매의 머리를 깎아 주셨다. 마루에 앉혀 놓고 보자기를 두른 다음 예쁘게 깎아주셨다. 가위에 머리카락을 뜯길 때마다 내가 제일 많이 짜증을 부렸다고 하셨다. 그런 내가 이렇게 효도를 할 줄 몰랐다고도 말씀하셨다. 가끔 작은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은 어쩌면 생전에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지 못했던 반성인지도 모른다. 혼자 사시니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많아 원기회복에도 좋고 원활한 신진대사를 돕는 장어구이를 사드렸다. 며칠 전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셨다고 했다. 하루의 시작을 새벽예배로 여시는 작은아버지는 새벽마다 어떤 기도를 하실까? 차 뒷자리 주머니에 오만 원권을 살짝 넣어 주시며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하셨던 작은아버지! "작은 아버지, 이제는 조카딸도 환갑을 넘기니 검정 스타킹에 치마차림보다는 바지가 더 편하답니다.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사셔야 자주 만나 뵐 수 있지 않겠어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20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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