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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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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14회 작성일 11-04-04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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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修學旅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일기는 마음의 거울이요, 생의 발자취다.” 먼지 쌓인 서재를 정리하다 반세기를 훨씬 넘긴 고등학교 시절의 일기장을 만났다. 유명한 이리 조광노트사 제본인 얄따란 日記帳 제16호였다. 또박또박 옮겨놓은 내 인생의 발자국이요, 삶의 흔적이었다. 참으로 감회가 깊다. 지금은 테마학습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소풍이나 원족 아니면 수학여행修學旅行이라 하였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수학여행은 그 의미가 크다 단기 4288년 11월 5일 토요일 (천후 : 청명) 어렵사리 여비를 마련한 우리 반 학생들은 두 대의 동아여객 버스에 분승하여 꿈에 그리던 경주를 찾아 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손발이 시려옴에도 우리들의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교정을 떠난 버스는 전주를 거쳐 굽이굽이 가파른 산을 기어올라 숨을 몰아쉬면서 진안 곰티재를 넘었다. 마이산을 옆에 끼고 솟금산의 애틋한 전설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찡했다. 시조 시인으로 황진이 서방이라고 했던 구름재 박병순 담임선생님의 문화해설은 가는 곳마다 흥미로웠다. 창밖으로 안겨오는 풍경은 너무나도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높은 산을 오르다 지친 버스는 시원한 냇물이 그리웠는지 천천天川계곡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듯하였다. 맑고 푸른 하늘이 내려와 꿈길에 찾아든 은하수를 연상케 하였다, 무서운 호랑이와 싸웠다는 60명 고개를 넘을 때는 공포에 사로잡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수려한 산수를 마음에 안고 어둠 발에야 합천군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海印寺에 도착했다. 층암절벽과 울창한 수목들이 유서 깊은 정취를 담뿍 안겨주는 듯하였다. 종일토록 달려오면서 부릉 부르릉 헐떡이던 버스도 조용히 머물고 있다. 해인사의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밤이었다. 안내자를 따라 들어간 방은 한마디로 큰 강당이었다. 이윽고 기다란 밥상에 두세 가지 반찬으로 저녁 식사를 때웠다. 나는 운동장 같은 방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냇물소리에 취해 툇마루로 나왔다. 서편하늘에 유난히도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소리 없이 노래하고, 붓 없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하는 상념에 잠겼다. 날이 밝아오자 해인사 경내를 관람하였다. 웅장한 대웅전과 고려시대의 유물인 8만대장경을 구경하였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보물은 앞으로도 만년 이상 보존되리라 하였다. 선조들의 얼이 스며있는 이 8만대장경은 우리의 국보요,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해인사를 떠나 대구로 향했다. 차창너머로 안겨오는 과수원 길을 먼지를 날리면서 힘차게 달렸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구미를 당겼다. 대구는 정말 능금의 도시다. 도로에는 푸라타너스가 사열하듯 우리를 반겨주었다. 대구는 남한에서 서울, 부산 다음으로 큰 도시라한다. 문화도시라서인지 시내가 화사하고 사람들이 활달해 보였다. 오늘도 해가 질 무렵에야 경주에 도착하였다. 불국사까지는 어두운 밤길이었다. 환한 자동차 불빛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 주는 듯하였다.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밤은 너무나도 짧았다. 잠간 눈을 감았는가 하는 사이에 새벽 4시가 되었다. 모두가 토함산 해맞이에 들떠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길은 몹시 싸늘했다. 길이 좁아 차가 오르지 못한다기에 등산로를 찾아 올라가게 되었다. 이윽고 토함산 등성이에 올랐다. 야호! 하는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때였다. 동편하늘 수평선 위로 오렌지 빛에 싸인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붉게 타는 태양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 추억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었다. 잠시 후 동양에서 최고 예술품이라고 하는 석굴암(石窟庵)에 도착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佛國寺)와 함께 창건한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이다. 석굴 안에는 방금 솟아오르는 햇빛을 받은 황금불상이 발을 개고 앉아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입구에는 사천왕이 지켜 서있고 내부에는 문수보살과 관음보살 등이 서 있다. 당시 뛰어난 건축미와 석공들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 석굴암의 축조과정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찬란했던 문화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낮에는 불국사와 경주시내에 있는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가슴이 뛴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 학창시절의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리고 영원토록 향기롭다. 꽃처럼 곱게 피어나는 추억을 되새기며 회억에 잠긴 채 그날의 일기를 더듬어 보았다. (2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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