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속의 관계/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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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속의 관계(關係)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사람은 알 수 없는 어떤 가로세로의 인연으로 태어나 두 가문과 관계를 맺게 된다. 관계란 사전에는 “① 둘 이상이 걸림, ② 남녀가 정을 통함, ③ 어떤 사물에 상관함.” 이라 했다. 자기를 중심으로 가로세로의 인적, 물적, 시대적, 환경적으로 주변의 삼라만상(森羅萬象), 종적, 횡적(從的, 橫的)으로 얽힌 위치라 하고 싶다. 누구든 필연이건 우연이건 선택적인 하나의 관계라 할까?
알 수 없는 어떠한 인연으로 세계 인구 수십억 가운데 나는 하필이면 한국의 정 씨(鄭 氏)) 가문의 가족공동체 일원으로 태어났을까? 남달리 일찍이 일본까지 가서 살면서 일본난리(2차 대전 본토공습)를 치렀고, 광복 뒤에는 한국난리(한국전쟁)를 겪어야 했다. 부모형제인 가족관계로 시작한 인생살이가 시국에 밀려 살다보니 인생역정이 크게 변했다.
어려움과 고생을 안고 산 덕으로 지금세대와는 달리 인생설계도 못했다. 중등교육을 두 차례의 전쟁으로 휴학과 복학에 삭발을 반복했다. 당시 그들의 민족적 차별로 인문계를 포기하고 실업계인 철도학교에 진학했다. 광복으로 뜻하지 않았던 농업학교를 거쳐 처음과는 거리가 먼 사범교육을 받게 되었다. 사주팔자에 타고난 직업인지 늦게나마 교직에 종사할 수 있었고 크게 기여(寄與)는 못했지만 국민훈장도 받을 수 있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모자란 능력을 든다면 말씨(언변)라 하겠다. 다시 말해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탓이다. 의견충돌로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 속된 말로 따발총 공격을 못하고 제압당하니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스스로 느끼고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후회한 때가 적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나는 말주변이 없을까?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라는데 나름대로 고민하고 분석도 해보았다.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종적관계인 시대와 횡적관계인 생활환경에 두고 싶다. 나름대로 극복하며 일모작 인생살이를 교육에 종사할 수 있었다. 그간 뼈저리게 느껴 재직하는 동안 말하기 지도에 나름대로 노력도 해보았지만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언어발달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아기에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으로 엄마, 형, 세 식구가 단출하고 외롭게 살 수밖에 없었던 가정환경에 그 원인이 있었다. 초등교육 역시 일학년 때는 일본식민지 지배로 조선어 말살정책이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보통학교 1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으나 낯선 타향에서 초등교육을 마쳤다. 아동기에 또래 친구들과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 표현력(말하기)을 기르지 못했다고나 할까?
언어습득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한국(당시는 조선)말을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광복 직후 귀국해 한 때 언어적 혼란을 겪었다. 라디오방송을 들으면 일본말 같기도 하고 조선말 같기도 했었다.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타고난 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말 주변(언변)인데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타고난 팔자려니 했었다.
학창시절을 지나 군복무와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역시 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 주변이 좋으면 직장생활에 있어서도 동료, 상하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렵고 힘든 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니던가? 으레 아랫사람은 노력해서 잘 보여야 동료와 윗분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더욱 기관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는 거느리는 직원들을 잘 만나야 기관운영이 수월하다.
대인관계란, 결국 말에 의한 설득력이다. 돈독하고 좋은 관계면 경우에 따라 덕도 볼 수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날개가 될 수도 있다. 동료 및 상하관계가 좋아야 하지만 늘 좋을 수는 없는 것이 역시 세상사다. 각자의 입지가 달라지고 이해관계가 변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능력과 인간성에 달렸다지만 불리하면 상대의 약점을 활용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의도적으로 평소 부정적인 면을 밝혀 기록으로 남겨 보존한다는 사실을 공직자는 유념해야 한다.
공직생활이라는 게 여의(如意)치 못하다는 것은 주지(周知)의 사실, 각종 사건사고와 건강문제로 뜻하지 않게 중도하차가 부지기수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직으로 알고 착실히 근무한 까닭인가? 큰 잘못 없이 주변의 도움으로 무난히 정년을 채웠다는 사실, 인연속의 관계설정이 무난했음이 입증되니 퍽이나 다행으로 여긴다.
최근 정관계(政官界)의 여러 게이트사건을 보노라면 어떤 인연이었던 관계설정과 선택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한때 참으로 좋은 인연으로 서로 좋다고 오간 것이 결과적으로 악연(惡緣)이 될 줄이야? 좋은 인연은 좋은 결실을 얻고 바람직하지 못한 인연은 영어(囹圄)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세상사를 실감했다.
이제 백수가 되어 여러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하나둘 무너져 멀어져만 가니 아쉬울 따름이다. 퇴직한지 어언 20년을 바라본다. 다행히 마지막 인생길에 좋은 인연으로 수필과 관계를 맺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환생(還生)론에 따르면 이승이 끝이 아니란다. 이승의 삶이 다음 세상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2011. 3. 26.)
※영어(囹圄): 죄수를 가두는 곳, 감옥.
※신언서판(身言書判): 신-건강, 몸매. 언-말씨, 웅변. 서-작문, 쓰기. 판-지식, 판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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